잘 나가던 모범택시, 차별성 사라지고 벌이도 '곤두박질'

5년만에 3천600여대→1천800여대로 절반 감소…"먹고 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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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새벽, 서울 서초구의 한 대형호텔 옆 통행로에서 모범택시 운전기사 강모(67)씨와 이모(56)씨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이들이 자리다툼 문제로 택시 승강장 옆 7.5m 높이의 난간에서 몸싸움을 벌이다 함께 추락해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호텔 앞에 택시를 세워두고 순서대로 손님을 태우는 모범택시 기사들의 다툼이 최근 손님이 줄어들면서 격해지다가 이런 비극으로 치달은 것.

평소 이들의 다툼을 지켜봤다는 동료 모범택시 기사 김모(61)씨는 "먹고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다 벌어진 비극적인 일"이라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김씨는 "손님이 줄어들다보니 새벽에 호텔에서 공항으로 이동하는 손님이라도 잡기 위해 모범택시 기사들이 새벽 1~2시쯤 미리 나와 줄을 서는 게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렇게 일찍 나와 사실상의 노숙생활을 하다보니 졸음과 추위를 참지 못해 택시를 대놓고 자리를 비워 생기는 다툼이 빈번하다고 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넥타이에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검은색 고급 세단을 모는 모범택시 기사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일반택시 기사로 10여년을 무사고 운행해야만 모범택시 기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자부심도 상당하다고 했다.


또한 하루 10시간을 운행한다고 했을 때 일반택시로 7~8시간을 운행해야 벌 수 있는 수익을 모범택시로 3~4시간만 일하면 벌 수 있어 몸도 편하고 취객 등 '진상 손님'도 없어 스트레스도 덜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차량 가격만 1억원 가까이 들만큼 초기 투자비용이 높음에도 모범택시 기사일은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상황이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모범택시에만 있었던 콜 호출 시스템이나 신용카드 결제 등이 일반 택시에도 보편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차별성이 사라졌고 거기에 요금까지 비싸니 손님이 눈에 띄게 사라졌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LPG 가격까지 올라서 콜비에 신용카드 수수료, 차량 할부대금 등까지 합하면 한달에 200~300만원을 벌어도 절반이 빠져나가 허덕이고 있다"고 김씨는 하소연했다.

서울 중구 소공동의 한 호텔에서 만난 모범택시 기사 19년 경력의 윤모(60)씨가 말하는 사정도 열악하긴 마찬가지.

특히 부근의 호텔들은 로비 앞에 택시를 줄줄이 세우고 대기하는 행위를 금지해 자구책으로 동료들끼리 순번을 정해가며 자리가 비면 사비를 털어 산 무전기로 순서를 통보해 주고 있다.

윤씨와 동료들은 자신의 순번이 돌아올 때까지 빌딩숲 사이 길목에서 주차단속을 피해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뛰며 하릴 없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윤씨는 "그렇게 3~4시간을 기다리다 4천500원짜리 기본요금 손님이 걸리면 밥값도 못 벌어간다"고 말했다.

윤씨는 "그나마 나는 92년 모범택시가 처음 생길 때부터 운행해 요령도 생기고 일본어도 배워서 바이어 등 단골손님이 있어 괜찮지만 뒤늦게 뛰어든 동료들은 버티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으로 모범택시에서 일반택시로 전환하는 기사들도 줄을 잇고 있다.

서울개인택시조합 박종갑 전무는 "서울시 기준으로 1992년 5천대로 시작한 모범택시가 2005년 3천600여대, 올해에는 1천800여대로 줄었다"면서 "작년에만 500여대가 서울시청에 일반택시로 전환신청을 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인천공항철도가 개통되는 등 더 값싸고 빠른 운송수단이 늘어나면서 모범택시 기사들의 설자리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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