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조사를 받던 A(29·여)씨는 취직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A씨의 사정을 들은 담당 형사는 조용히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나무젓가락 이용, 성금함 돈 훔쳐
A씨가 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한 대형병원에 들어간 시각은 지난 27일 오후 8시쯤.
A씨는 로비에 마련된 성금 모금함에서 나무젓가락을 이용해 현금 2만원을 훔쳤다 경찰에 붙잡혔고 경찰은 절도 혐의로 A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여기까지는 금액도 경미한, 말 그대로 단순 절도사건.
하지만 경찰 조사를 받던 도중 A씨의 기구한 인생 편력이 알려지자 상황은 달라졌다.
▲''휴대전화가 없어 취업이 안돼요'' 한 마디, 경찰 심금 울려
A씨가 경찰에 털어놓은 사연은 기구했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에 살고 있던 A씨는 고등학교를 다니던 10대 후반 갑자기 아버지를 잃고 만다. 방황의 끝은 결국 가출. 이후 A 씨는 연고도 없는 서울로 무작정 올라왔다.
고시원과 찜질방, 쉼터 등을 전전하기를 10여 년. 필요한 돈은 때가 되면 아르바이트를 통해 마련했다.
이러는 사이 10대 후반의 A씨는 어느덧 20대 후반의 나이로 직장도 집도 없이 떠도는 처지가 됐다. 직장을 갖고 싶었지만 주거지도 불분명하고 휴대전화조차 없던 20대 여성에게 일자리를 줄 곳은 없었다.
그래도 A씨는 10여 년 동안의 ''떠돌이''생활에도 전과 한 번 없는 착실한 삶을 살아왔다.
▲한 순간의 실수로 인생이 망가지길 원치 않아
A씨의 딱한 사연을 들은 서울 수서경찰서 폭력팀 백기종 경위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마침 강남고속터미널에서 큰 식당을 운영하는 지인이 있던 터. 특별한 수입이 없는 절도 피의자에게 경찰이 직접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보기 드문 일이 벌어진 것이다.
식당 주인 역시 ''당장 면접을 보러 오겠다''라며 백 형사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백 경위는 "자기도 그만한 나이의 딸이 있는데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라며 직장을 알선해준 이유를 담담히 설명했다.
순간의 욕심으로 자칫 돌이킬 수 없는 범죄자의 낙인이 찍힐 뻔했던 A씨.
하지만 A씨는 자신을 벌하려던 경찰에게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받았던 어떤 선물보다도 더 큰 따뜻한 마음을 선물 받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