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게 맞아줬더라면… " 생모 살해한 흉악범의 고백

유년시절 가출한 어머니와 계부, 27년만에 찾아가 잇따라 살해한 뒤 자수

9일 오후 서울강서경찰서 강력1팀 사무실, 친어머니와 의붓아버지를 숨지게 한 존속살해범을 인터뷰하기 위해 달려든 기자들 앞에 점퍼차림에 왜소한 체격의 이모(34)씨가 앉아있었다.

어머니를 죽인 흉악범에게서 별 말을 듣기 어려울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그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기자들의 물음에 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을 이어 나갔다.

흉악범의 이야기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고민이 됐지만 그는 어린 시절의 아린 기억들을 하나씩 끄집어냈다.

30년 전 유년 시절 그는 매우 외로웠다고 한다.

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 며칠씩 집을 나가 있었고, 어머니도 자주 집을 비웠다.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 밤이면, 어머니는 낯선 아저씨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부부싸움이 잦아진 것도 그 때 부터였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없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 대해 "자식을 버리고 도망갔다"며 욕을 했다.

그가 7살 때, 동생이 5살 때의 일이다.

그 뒤로 아버지는 술에 취해 있는 날이 많았고, 두 아들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날도 늘어갔다.

그가 12살이 될 무렵, 아버지는 농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아버지가 농약을 마셔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던 날의 기억을 30년이 다 된 지금까지 잊지 못한다고 했다.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형제는 누군가의 손에 끌려 '소년의 집'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도 잊은 채 더 이상 맞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기뻐할 만큼 그는 어렸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면서 고아원 안에서도 구타가 이어졌고, 구타를 견디다 못해 17살이 되던 해 동생과 함께 고아원을 나와 가방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15년이 흘렀다.

피붙이라고는 2살 어린 남동생뿐이었던 그에게 사회는 녹록하지 않았고, 머리가 커지면서 그의 불행은 자신을 버린 어머니라는 사실을 되새겼다.

주민등록등본을 떼서 어머니의 행방을 찾아보려 했지만 거기에는 자신과 남동생의 이름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던 최근 어느 날, 의료보험피부양자 신청을 위해 동사무소에서 가족관계증명서를 떼면서 어머니의 주소를 알게 됐다.

자신의 삶을 진흙탕 속으로 몰아넣은 어머니가 얼마나 잘 사는지 궁금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지난 달 인터넷쇼핑몰에서 흉기를 구입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지난 8일 오후 1시쯤 그는 서울 강서구의 한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어머니를 찾아갔다.


그의 품에는 이미 흉기가 숨겨져 있었다.

"누구세요?" "접니다. 이00"

어머니는 선뜻 문을 열었지만 반기거나 감격한 표정은 아니었다.

자신을 버리고 아저씨와 함께 집을 나간 어머니였지만, 지금은 홀로 산다고 했다.

생전 처음 어머니와 술을 함께 마시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7살 당시의 아팠던 기억을 꺼내는 아들에게 사죄의 눈물을 보이는 대신 어머니는 "나는 그런 적이 없다.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누가 시켜서 여기에 왔느냐"며 싸늘하게 대했다.

어머니는 급기야 아들을 떠밀었고, 아들은 어머니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그 다음 미리 받아 놓은 의붓아버지의 연락처를 가지고 그는 경기도 양주시로 이동해 의붓아버지마저 흉기로 찔렀다.

이날 밤 이 씨는 자신의 집 근처 경찰서로 돌아가 자수했다.

경찰조사에서 이씨는 "어머니와 의붓아버지가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주고, 진심으로 사과했다면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어린시절 충격적인 기억 때문에 생긴 여성에 대한 증오심으로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여성을 만난 적이 없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친어머니 최모(55.여)씨와 의붓아버지 노모(52)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이모(34)씨를 상대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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