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경이 아니고 경찰입니다"…검·경도 '여성시대'

절반의 여성이 '이루는 가꾸는 이끄는' 세상 인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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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장애인이자 청각장애자로 여성 참정권 운동을 펼쳤던 헬렌 켈러는 말했다. "고개 숙이지 마십시오. 세상을 똑바로 정면으로 바라보십시오."

소위 '남성들의 세계'에서 타이틀을 거머쥔 두 여성은 말했다. "세상의 절반이 여성이다. 절반의 여성이 도전하지 못할 일은 없다"고.

경찰과 검찰에서 활약하고 있는 6기동대장 유경숙(41) 경정과 수원지검 최초 특수부 여검사 조영희(36) 검사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대세인 세상을 똑바로 바라봐 줄 것"을 요구했다.

◈경기경찰청 6기동대장 유경숙(41) 경정

"나는 여성이 아니라 사람이고, 여경이 아니라 경찰입니다"

100명의 여성으로 이루어진 경기경찰청 6기동대. 경기청 최초의 여성 기동대를 유경숙(41) 경정이 이끌고 있다.

유 대장은 어렸을 적 골목을 휘어잡던 '골목대장'이었다. "약한 친구가 괴롭힘 당하는 걸 보지 못했던 정의감에 불탄 아이" 였던 유 대장은 초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여성'이라는 벽을 경험했다.

"딱지치기, 구슬 따먹기는 제가 동네 남자애들 다 이겼어요. 하지만 남자애들이 마지막에 하는 말이 '서서 오줌도 못 누는 여자애'였죠. 그때 '내가 여자라서 무시를 당하는구나' 처음 느꼈어요. 동네 남자친구들을 이기기 위해 목욕탕에서 서서 오줌 누는 연습하다가 주위 분들한테 뒤통수를 많이 맞기도 했어요."

유 대장의 돌발행동(?)은 자신을 여성에 한정짓지 않았던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유 대장은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이 여자니까 이렇게 해야 한다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며 "그 덕분에 여성이라기보다는 '나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더 강했다"고 말했다.

◈ "여성 피해자에 여경이 균형 잡힌 시각 제공할 것"

유 대장은 1993년 11월 경찰 배지를 달고 95년 강력반 생활을 시작했다.

주변의 우려도 있었지만 꾸준한 운동과 체력 단련으로 자기 관리를 이어왔다.

"아무래도 남자들보다 근력은 부족하죠. 그래서 달리기나 운동을 더 열심히 했어요. 부족하면 채우면 되는 거니까요."

유 대장은 '험하고 거친 경찰 업무를 여자가 할 수 있겠냐'는 주위의 시선에 대해 "세상의 반이 여성인데 그 존재를 등한시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유 대장은 이어 "특히 경찰의 경우 피해자가 여성일 때 남성들한테만 사건을 맡겼을 때보다 여성이 개입해 교통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수원지검 특수부 조영희(36) 검사

"수원지검 최초 특수부 여검사, 제가 잘해야 후배들까지 이어져요."

감색 스트라이프 정장에 자주색 니트를 받쳐 입은 조영희(36) 검사가 서류 더미 속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연수원 시절, 검찰 조직의 끈끈한 동료애가 인상 깊어 검사직을 선택했다는 조 검사는 "검찰청에 들어와서 자신의 적성을 더 발견했다"며 쑥스럽게 말했다.

조 검사는 수원지검이 생긴 이래 첫 특수부 여검사다. 지난해 6월 특수부로 발령받은 그는 "여성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 오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여자 검사가 절반 정도 되는데 특수부 같은 인지 부서는 여검사가 극히 드물어요. 일단 진출을 해야 여자 후배들이 계속 이어질텐데, 처음부터 막혀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를 특수부에 보내서 한번 써보자 결단이 내려진 거죠."

첫 여검사이니만큼 관심도 집중됐다. 주위에서는 의구심과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조 검사 자신도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조 검사는 "제가 여기서 잘 살아남아야 능력 있는 여자후배들이 쭉쭉 올라오기 때문에 부담감과 책임감이 있다"면서도 "재능은 없지만 열심히 하는 것은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다"며 겸손하게 웃었다.

◈ "친근한 대화에 어려운 자백도 술술…여성 검사가 필요한 이유"

조 검사는 검사 경력 6년차이지만 집에서는 두 아이의 엄마다. 조 검사는 "여성 검사라서 힘든 점은 없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성'의 정체성은 수사 과정에서 더 빛을 발한다.

조 검사는 "고소인이나 참고인이 저를 편하게 생각해서 터놓고 이야기하곤 한다"며 "어려운 사건도 쉽게 인간적으로 접근해 쉽게 자백진술을 끌어낸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에게는 촌철살인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제가 체구가 작고 여성이다 보니 피고인 중에 저를 얕잡아 보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요. 그럴때 일수록 기에 눌리지 않고 진술의 허점을 파헤쳐서 또박또박 잘못을 짚어주면 조사가 끝날 때쯤에는 태도가 달라져 있죠.(웃음)"

◈"공판 중심주의 시대, 여검사 활약 기대"

조 검사는 "강압적 수사로 자백을 받아내는 관행에서 벗어나는 데 여검사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공판 중심주의로 바뀌는 추세에서 이전의 강압적 수사와 자백 위주의 조사로는 변화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

조 검사는 "죄의 허점을 파헤쳐서 유죄를 받아내는 것이 검사의 역할인데 그런 점에서 여검사들이 세밀함으로 진술의 문제점을 꼼꼼히 체크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불량한 태도로 조사에 임하는 피고인도 소리 한 번 지르지 않고 몇 시간 안에 성실한 태도로 바꾸는 '조용한 카리스마'의 조 검사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많아진 이상 여자 검사의 증가도 자연스러운 현상 중 하나"라고 못 박았다.

"현대 사회에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대세잖아요. 검찰 조직 내부적으로도 그렇고 사회 전체적으로도 여성이 상대적으로 일과 가정 두 가지 부분에 충실하다보니 청렴하고 원칙에 가깝다고 할 수 있죠. 말 그대로 FM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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