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 시절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권인숙 성고문사건, 김근태 고문사건 등 공권력의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가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김근태 고문사건 등으로 알려진 고문의 상징 ‘이근안’ 씨. 경기도 경찰청 대공전문 수사관이었던 그는 야당 인사와 학생 운동가들을 가혹하게 고문한 것으로 악명을 떨쳤다.
‘고문기술자’라는 별명답게 다양한 고문 방법을 고안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새끼발가락에 전깃줄을 감아 전류를 흘려보내는 고문과 얼굴에 수건을 뒤집어씌워 샤워기를 들이대 숨을 못 쉬게 하는 물고문 등은 그의 주특기였다.
이번 고문 파문의 주요수법이었던 이른바 ‘날개꺾기’도 그가 자주 사용하던 고문 수법이었다. 결국 그는 공개수배 뒤 1999년 자수해 7년형을 살았다.
1986년 발생한 권인숙 성고문사건 역시 80년대 폭력적 공권력의 극단을 보여주는 ‘막장’ 사건이었다. 당시 부천서 조사계 문귀동 형사는 수갑이 채워져 저항할 수 없는 상태의 여성을 자신의 성기로 추행하면서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고문을 자행했다.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도 폭력적 공권력에 대한 상징으로 꼽힌다.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 끝에 사망했지만 경찰은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어처구니 없는 조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90년대 들어서면서 고문 행위에 대한 논란이 가끔 붉어지기는 했지만 이후 자취를 감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수사기관에는 CCTV가 설치되는 등 피의자 인권보호를 위한 노력들이 계속됐다.
하지만 이번 인권위 조사결과에 따르면, 고문과 폭행은 CCTV의 사각지대에서 상습적으로 이뤄져 온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더하고 있다. 야만 시대의 풍경이 2010년 재현된 셈이다.
이에 대해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정부의 공권력 강화 때문에 고문이 재발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 교수는 “최근 촛불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경찰 폭력이 거세졌다”며 “이게 일선 경찰들에게 잘못된 신호로 전달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고문이 형사 사건에서 벌어졌다고 하지만 정치적인 사건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면서 “고문이 자행됐다면 관련자를 제대로 처벌해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정권 차원의 범죄가 될 것"이라며 확실한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또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가장 전형적인 국가폭력이고, 국가범죄인 고문이 다시 일어났다는 것은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 없는 충격이라고 말했다.
오 사무국장은 “인권위의 결정문을 보면, 고문이 구체적이고 치밀하게 조직적으로 자행된 것으로 보인다”며 “전면적인 고문실태가 조사돼야 하고 이 조사 과정에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함께 참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