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십년째 아무도 안 찾아와" 설이 서러운 쪽방촌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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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설이 찾아왔지만 갈 곳도 없고 누구하나 찾아오는 사람 없이 쪽방촌에서 쓸쓸히 혼자 지내야 하는 독거노인들에게는 명절이 오히려 서럽기만 하다.

설을 하루 앞둔 13일 서울 갈월동의 한 쪽방촌. 독거노인과 장애인 등 60여 명이 오밀조밀 모여 사는 이곳에서 56년째 설을 맞이한다는 김이순(91) 할머니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6.25 때 피란을 온 터라 그리운 가족들이 모두 이북에 있기 때문. 함께 피란을 온 남편은 40여 년 전 중풍으로 쓰러져 세상을 떴고, 딸은 시집을 간 뒤로 좀체 얼굴을 비치지 않는다.

"설인데 딱히 갈 곳도, 찾아올 사람도 없어. 고향이 함경북도 함흥인데 명절 때만 되면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이 생각 나. 너무 보고 싶어"

3평 남짓한 비좁은 공간이 김 할머니에게 텅텅 빈 것처럼 넓게만 느껴지는 이유다. 이따금씩 종교단체 등에서 떡국과 쌀을 놓고 갔지만 정작 함께 먹을 사람이 없어 사람의 손길이 더욱 그립기만 하다.


그럼에도 아무 것도 바랄 게 없다던 김 할머니의 눈가에 갑자기 눈물이 맺혔다. 아버지에게 생전 잘 해드리지 못한 것이 서럽단다.

"내 나이 서른 한 살 때 아버지가 새 장가를 가셨어. 그 때 아버지가 '국수 먹고 가라'고 했는데 끝내 안 갔지. 그게 너무 후회되고 죄송스러워"

가슴 아픈 추억을 간직한 채 김 할머니는 이날도 홀로 외로운 설을 맞이하고 있다.

바로 옆 쪽방에 거주하는 강순열(78) 할머니도 사람의 정이 그립긴 마찬가지. 전북 김제읍이 고향인 강 할머니는 마흔 다섯의 나이에 상경해 쪽방촌에 둥지를 틀었다.

강 할머니는 줄곧 이곳에 살면서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한다. 가락시장에서 나물을 팔거나 파출부를 나가면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삶을 간신히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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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말을 더듬는 언어장애를 앓아 혼기를 놓친 탓에 남편은 물론 자녀 한 명 없다. 열 남매 중 막내딸이었던 강 할머니의 형제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다.

"김제에 머물 적에는 시루에 떡을 찌고 콩도 볶으면서 즐겁게 설을 쇘지.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없어. 그나마 있는 조카들 보러 가기도 이제는 눈치가 보여"

게다가 지난 2007년부터 다가오는 명절이 전혀 달갑지가 않다. 허리 수술에 따른 후유증으로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장애 2급 판정을 받은 강 할머니는 휠체어 없이 단 한걸음도 움직일 수 없다.

매달 병원에 가기 위해 바깥출입을 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늘 방에서만 지낸다는 강 할머니는 지나다니는 사람이라도 구경하기 위해 꼭 방문을 열어놓는다.

"다리라도 멀쩡했으면 설에 집에만 있지 않고 바깥 구경이라도 할 텐데. 이제는 옴짝달싹 못하니...내 처지가 참 서러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인근 모델하우스 화재가 번져 화마가 쪽방촌을 할퀴고 지나가면서 상황은 더 열악해졌다. 공동화장실과 부엌의 지붕이 녹아내려 물이 새는데도 피해 복구가 전혀 이뤄지지 않으면서 쪽방촌 사람들의 설은 더 서럽기만 하다.

엄병천 동자동사랑방 대표는 "명절 때마다 종교단체나 자선단체에서 쌀을 배달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주거 문제의 해결이 더 시급하다"면서 "화재에 따른 피해보상이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하고, 구청을 비롯한 지역 사회에서 이곳 주민들의 생계를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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