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불법주차중 ''지구대 앞 도로는 순찰차 주차장''

파출소의 지구대 통폐합이 원인…일선 지구대원들 "시민들 비난에 우리도 답답"

교통 소통을 도와야 할 경찰 차량이 오히려 도로 곳곳에 불법 주차돼 있지만 묵인되고 있는 것으로 CBS취재 결과 드러났다. 주차용지도 확보하지 못한 채 이뤄진 파출소 통폐합이 그 원인이었다.

▲ 지구대 앞 도로는 ''경찰용''(?)

"주차할 곳이 없어요. 직원들이 차 가져온다는 건 상상도 못하죠. 물론 우리도 이게 잘못된 일이란 건 알지만 딱히 현실적인 대책이 없는 상황입니다"(서울 서부경찰서 소속 한 지구대 경찰관)

지난 2월 18일 서울 은평경찰서 소속 A 지구대.

이 지구대 소속 순찰차들이 건널목 한편을 가린 채 무단 주차돼 있다. 건널목을 지나는 시민들은 주차된 차를 위험천만하게 돌아 발걸음을 재촉했다.

같은 날 서부경찰서 소속 B 지구대 앞에는 순찰차 4대가 편도 2차선 도로 중 한 차선에 줄줄이 늘어서 있어 차량 흐름을 방해하고 있었다. 차량이 넉 대나 되다 보니 아예 차선 하나가 경찰차로 점거된 듯한 모습이다.

물론 모두 불법이다.

A지구대 소속 경찰관은 "지구대 앞에 마련된 고작 2대 분량의 주차 공간도 민원인들을 위해 비워두어야 한다"라며 "어쩔 수 없이 경찰차를 인근 차선에 세워두고 있다"고 털어놨다.

▲ 시민들, "일반 차량이면 가만 놔뒀겠느냐"

이러한 불법 주차행태는 일상적으로 이뤄지지만 경찰 차량이라는 이유로 묵인되고만 있어, 시민들의 비난은 끊이지 않는다.

A지구대 앞에서 만난 한 시민은 "인도에 차를 절반 정도 (경찰)차를 세워두는 경우가 많아 지나가려면 차도로 내려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일반 차량이었으면 그대로 ''딱지''를 끊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한 시민은 "차선과 인도와 할 것 없이 경찰차들이 주차되어 있으니 외관상으로 무척 좋지 않다"라며 "주차장을 좀 넓혀서 지정된 곳에만 주차하면 좋겠다"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경찰지구대 앞 순찰차 불법주차 동영상]

심지어 교통사고 조사를 위해 경찰차량과 함께 주차했다가 시민의 차량만 ''딱지''가 떼인 일도 있었다.

김 모(43)씨는 지난해 9월 교통사고 처리차 경찰차와 함께 동행해 서대문구 신촌의 한 치안센터를 찾았다. 경찰차와 나란히 치안센터 앞에 자신의 차량을 주차했던 김 씨는 잠시 뒤 황당한 일을 겪었다. 자신의 차량에만 주차위반 ''딱지''가 붙어 있었던 것.

"같이 세워둔 경찰차는 대체 뭐냐"라며 강하게 항의하는 김 씨에게 돌아온 말은 "경위서를 작성해 구청에 제출하라"라는 원론적인 대답뿐이었다.

▲ 경찰차, 임무 수행 시에만 ''긴급자동차''로 인정 받는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일선 지구대 경찰관들은 "경찰차량은 긴급자동차로 인정받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다"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는 다르다.

도로교통법 시행령 2조 16호는 긴급자동차에 대한 구체적인 범위를 정의하고 있다. 이 조항은 범죄수사나 교통단속, 기타 긴급한 경찰임무수행에 한해 경찰 차량을 긴급자동차로 규정한다. 따라서 임무 수행 중이 아닌 일상적인 경찰서 앞 주차는 법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명백한 ''불법''인 셈이다.

▲ 건물은 파출소 그대로, 차량과 인원만 몇 배씩 늘어나

주차공간 문제는 지난 2003년 10월 시행된 지역경찰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최기문 경찰청장은 경찰인력을 증원시키지 않고도 현재 인력만으로 최대의 효용을 얻어내겠다며 일선 파출소들을 몇 개로 묶어 지구대로 만드는 지역경찰제를 시작했다.

그 결과 광역화된 지구대가 신속한 초동대처와 광범위한 치안 업무를 볼 수 있게 된 반면, 정작 지구대는 기존 파출소 건물을 그대로 사용했다. 차량과 인원은 몇 배로 늘었는데 건물은 기존 좁은 파출소 건물을 사용하는 문제가 발생한 것.

늘어난 경찰차량과 경찰관 개인차량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지구대 주차장이 포화상태가 된 것이다.

▲ 지구대원들 "차라리 이런 사실이 알려졌으면…"

일선 경찰관들도 이같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B 지구대 소속의 한 경찰관은 "경찰이라고 해서 견인조치의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라고 말하면서도 "뚜렷한 대책이 없는 상태에서 우리만을 비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불평을 늘어놨다.

아예 이런 사실이 시민 민원을 통해서 해소되길 기대하는 경찰관도 있었다.

C 지구대 소속의 한 경찰관은 "국가에서 좀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서 건물을 지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불법주차를 하고 싶은 경찰이 어디있겠냐"라고 말했다.

이 경찰관은 또 "민원인들이 이런 사실을 (인터넷 등에) 띄워 줘야 (지구대) 현장 환경이 열악하다는 사실이 알려질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부작용에 대한 고려 없이 외형적 통폐합에 그친 지역경찰제.

일선 현장에서 범죄와 싸우는 수많은 경찰관들을 ''불법 주차''로 내모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지구대 재건축이나 주차공간 확보 등 상급 기관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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