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 작가 “'시대의 피해자' 아버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노컷인터뷰] MBC ‘민들레가족’ 집필하는 김정수 작가

xx
김정수 작가는 한국 드라마사의 산증인과도 같은 인물이다. 지난 1979년 MBC TV 개국 10주년 드라마 공모전에서 ‘제 3교실-구석진자리’가 당선되며 작가로 데뷔한지 어언 30년. 한국 농촌드라마의 대표작 ‘전원일기’를 비롯, ‘엄마의 바다’, ‘그대 그리고 나’, ‘그 여자네 집’, ‘한강수타령’, ‘누나’, ‘행복합니다’ 등 주옥같은 작품들이 그의 손을 통해 탄생됐다. 배우 복도 많아 고소영, 故최진실, 김남주, 김혜수, 송윤아 등 당대 톱스타들이 김작가의 작품에 출연했다.

김정수 작가 작품의 특징은 휴머니즘에 입각한 가족주의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정도에서 엇나간 이는 있어도 악역은 드물다. 김정수 작가는 “가족을 잘 모르기 때문에 가족극을 많이 쓰는 것 같다”며 웃어보였다.

“가족극이 나라의 대소사를 논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작은 씨앗이 점차 열매를 맺듯 저 역시 가족 사이의 사소한 갈등을 통해 사회문제를 다루고 싶었어요. 과거 제가 썼던 ‘전원일기’가 농촌문제, 빈부격차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담은 바 있죠. 요즘 인기리에 방송 중인 ‘지붕뚫고 하이킥’이란 작품의 팬이 됐는데 이 작품도 작은 에피소드로 큰 이슈를 담아내는 능력이 뛰어난 것 같아요.”

김정수 작가는 오는 30일 첫 방송되는 MBC 새 주말드라마 ‘민들레가족’을 통해 다시 한 번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내비친다. ‘민들레가족’은 실직가장을 중심으로 한 세자매의 이야기를 담담히 그려낸 작품. 제목인 ‘민들레 가족’은 소박하고 생명력 강한 꽃 민들레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질긴 잡초같은 생명력을 지녔으면 하는 바람에서 지었다고 한다.

김정수 작가는 “가장들이 ‘민들레가족’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드러냈다.

“이번 작품의 화두는 ‘아버지’입니다. 우리 나이 또래, 남성들 중 명예퇴직을 하시는 분이 많잖아요. 또 얼마 전 모 대기업 임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도 있었고요. 우리나라 산업개발의 역군인 이분들이 유통기한이 많이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폐기처분돼서 버려지고 소외받는 현상을 그리며 ‘피해자’인 아버지들의 삶을 보여주고 싶어요.”


ss
실직 가장의 이야기도 그렇지만 김작가의 작품 속에는 유독 서민경제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다. 김작가는 “가난을 겪은 세대 중 드라마를 쓰는 마지막 세대라서 그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우리 세대가 궁핍을 이야기하는 마지막 세대인 것 같아요. 제가 1949년생인데 그 때만 해도 가난으로 붕괴되는 집안이 많았어요. 제 고향 여수에서는 가난 때문에 일가족이 복내장을 끓여 자살한 경우도 있어어요. 하루 세 끼를 해결하고 쌀 한가마니를 들여놓는 게 큰일인 시대를 거치다 보니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는 것 같아요.”

김작가는 ‘추노’,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 등 후배 작가들의 작품도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열심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즐겨보는 작품은 곧 경쟁작이 되는 문영남 작가의 ‘수상한 삼형제’라고. 하지만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막장 드라마에 대한 생각을 묻자 다소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동업자의 입장에서 막장드라마에 대해 말하기가 쉽지 않아요. 하지만 그 분들도 좋아서 쓴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그 작가들은 저보다 영리한 사람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죽었다 깨어나도 요즘 유행하는 막장드라마처럼은 못 쓸 것 같아요.”

젊은 세대를 겨냥한 작품들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잔잔한 가족극을 지향하는 것이 다소 진부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래도 20대부터 80대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니 타깃이 넓어 좋지 않겠냐”라며 여유있는 모습을 보였다.

김정수 작가와 인터뷰를 하며 ‘전원일기’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다. 1980년 10월 첫 방송을 시작한 ‘전원일기’는 2002년 종영할 때까지 무려 22년간 안방을 지킨 장수 드라마. 김작가도 “‘전원일기’를 내 프라이드로 여긴다”라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자꾸 ‘전원일기’ 이야기를 자주 꺼내는 건 제 자신이 ‘전원일기’를 자랑스럽게 여겨서 그런 것 같아요. 실제 ‘전원일기’ 속 최불암 씨 캐릭터가 제 시아버지와 닮았어요. 제가 맏며느리라 시아버지 사랑을 무척 많이 받았거든요. 저는 박순철 씨가 연기한 말썽많은 둘째 아들과 성격이 흡사해요.”

30년 전 처음으로 드라마를 썼을 때는 원고지에 완성된 문장만으로 채워 넣었다고 한다. 행여 비문이나 표준어가 아닌 말을 썼을까봐 토씨하나도 재검토했다고. 김작가는 “요즘 젊은 친구들 대본을 보면 지문에 사적인 말도 쓰고 표준어가 아닌 말도 많이 쓰더라”라며 “우리 때와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아마도 TV 드라마라는 장르 자체가 가벼워졌기 때문에 생긴 경향인 것 같아요. 제가 처음 작가로 데뷔했을 때가 32살, 무척 어린 나이였는데도 어디 나가면 꼬박꼬박 ‘작가선생님’이란 호칭을 붙여줬죠. 작가들의 자긍심이 무척 강한 시대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작가들에게 ‘언니’란 호칭도 스스럼없이 붙이더라고요. 또 30년 전에는 작가들의 원고료가 큰 이슈가 안됐어요. 그 때만 해도 드러내놓고 돈 얘기를 하지 않았으니까. 단막극 수준도 웬만한 문학작품 못지 않았죠. 그 좋은 시절에 일을 한 저는 행운아인 것 같아요. 지금은 드라마가 상품이 됐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워요. 덕분에 그래서 밥먹고 살지만요.(웃음)

ss

추천기사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