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들을 보기 위해 관객들이 방청석을 채워갈 무렵 그는 무대에 선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모른다. 제대로 보지도, 귀 기울여 주지도 않는다. 그래도 그는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한다. 하지만 ‘쟤 누구야’ 하던 사람들도 차츰 그의 말에 관심을 기울인다. 관객의 반응에 힘이 나지만 시간은 너무 짧다. 관객들과 친해질 무렵이면 그는 무대를 내려와야 한다. 스타가 등장해야 하니까. 그들의 등장에 그의 존재는 곧바로 잊혀 진다. 하지만 괜찮다. 그게 할 일이니까. 알아주는 이 없지만 미래의 주인공을 꿈꾸는, 그래서 배고프지만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이런 그를… 사람들은 ‘바람잡이’라고 부른다.
‘개그맨’은 공부 잘해야 되는 줄 알아
SBS ‘김정은의 초콜릿’과 ‘신동엽의 300’에서 사전 MC를 맡고 있는 문종호.
그는 녹화 시작 전이나 녹화 중간 잠깐 짬이 나는 시간을 이용해 관객들과 대화하고 웃기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바람잡이’라고 부른다. 사전 MC라는 정식 명칭이 있지만 그 역시 ‘바람잡이’라는 호칭이 아직 더 익숙하다고 한다.
이제까지 그는 TV에 나온 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그는 무대에 서는 그 자체가 좋다고 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호응하면 전율을 느끼기도 한다고.
“어릴 때 ‘유머 1번지’를 보며 개그맨의 꿈을 키웠고 서경석, 이윤석 선배의 보며 개그맨이 돼야겠다고 확신했어요. 그런데 그 분들이 명문대 출신이잖아요. 그래서 공부를 잘 해야만 개그맨이 되는 줄 알고 학창시절엔 공부만 했죠. 그리고 일단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나야 부모님께도 하고 싶은 것 하겠다고 강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건대 법학과에 진학한 문종호. 하지만 ‘법학도’의 길은 뒷전이었다. 그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곧바로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대학로 ‘컬트 삼총사’ 밑에 문하생 개념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나름대로 대본도 짜보고 몇 개 코너도 해봤지만 공개 코미디는 도통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코너는 주목받지 못하고 곧바로 막을 내렸다.
당시 동고동락 하던 안상태, 박휘순, 김재우 등이 대학로 무대를 발판으로 인기 개그맨이 됐지만 그는 서서히 뒤쳐져 갔다.
그의 어머니가 ‘그만 접고 장사하자’고 만류하는데도 그는 왠지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고 한다.
김정은의 배려심, 항상 고마워
그러던 그에게 기회가 왔다. 대학로 무대에서 ‘바람잡이’를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본 ‘웃찾사’ PD가 사전 MC를 구한다는 ‘초콜릿’ 팀에 연락을 한 것이다.
“‘초콜릿’팀에서 연락이 오자 무조건 열심히 하겠다, 잘 할 수 있으니 기회를 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초콜릿’과 인연을 맺게 됐고 1년 반 동안 녹화장에서 ‘바람잡이’로 일했죠. 80회를 달려오는 동안 정작 TV 화면에 비춰진 건 다섯 번이지만 행복한 순간들이었어요. 짜여진 대본에 충실해야 하는 공개 코미디는 잘 못했지만, ‘바람잡이’는 몸에 잘 맞는 옷처럼 편하더라고요. 제가 보여줄 수 있는 부분도 많았고요”
특히 공개 코미디에서 쓴 맛을 본 문종호가 ‘초콜릿’에서 단 맛을 보게 된 일등 공신으로 MC 김정은과 스태프들을 손꼽았다.
“톱스타임에도 항상 잘 챙겨주세요. 농담도 주고받고 방송 중에 ‘문종호씨에요’라며 소개도 해주셔서 전파도 탔죠. 한 번은 곰의 탈을 쓰고 녹화를 했는데 탈을 벗기고 이야기 하자고 배려해 주시기도 했어요. 방송에 나오지 말아야 할 사람이 나와야 하니 미안하고 고마워요. 스태프들도 항상 ‘종호야, 넌 언제 바빠져서 더 이상 바람잡이 못하겠다’고 얘기 할래‘라고 해주세요”
이 때문에 그는 가장 먼저 무대에 올라와 가장 늦게 내려가도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바람잡이’라는 점을 명백히 가슴에 새기고 무대에 오르기 때문에 주목받지 못해도 아쉽지는 않다고.
하지만 그는 젊은층 위주의 ‘초콜릿’과는 달리 ‘300’은 중장년층도 많이 계서서 좀 더 엄숙하고 호응도가 낮아 어렵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인터뷰 ②’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