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순서로 법률상 사각지대에 놓여 외면받는 성인 실종에 대한 문제점을 짚어본다.
평범한 40대 회사원이 사라졌다. 경찰은 단지 성인이라는 이유로 '실종'을 자의에 의한 '가출'로 여기고 초동 수사를 미뤘지만 4년째 그의 행방은 묘연하다. 지난 2005년 6월 울산 남구에서 동료 직원들과 술을 마시다 실종된 나기봉(당시 46살) 씨의 이야기다.
나기봉 씨의 부인 심명숙(50) 씨는 "아직까지 서류상에 남편이 '가출'로 접수돼 있다"며 "실종된 당시에도 경찰은 성인이니 연락이 올 것이라면서 초동 수사를 대강해 중요한 단서를 모두 놓쳤다"고 한탄했다.
14살 미만의 아동이나 모든 여성, 장애인 실종 가족에게 지급되는 의료비 지원 혜택도 나기봉 씨 가족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심 씨는 "남편을 찾아다니며 지병이 악화돼 고생하고 있지만 성인 남성은 해당사항이 없어 정부로부터 단 한푼도 지원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3년 전 수의대 졸업을 앞두고 갑자기 사라진 막내딸 이윤희(당시 29살) 씨를 찾고 있는 아버지 이동세(71) 씨는 "경찰이 가출이라고 가족들을 안심시키고 초동수사를 하지 않아 지금까지도 범인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력한 용의자가 딸의 원룸을 물청소하도록 내버려 두는 등 경찰이 안일하게 대처하다 물증을 놓쳤다"는 것이 이 씨의 주장이다.
지난달 22일 부산에서 실종돼 한달만에 바닷가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고 이용우(17) 군도 누나가 인터넷에 사연을 올려 사회적으로 이슈화되기 전까지는 단순 가출로 처리돼 경찰 수사의 진척이 없었다.
◈성인이면 무조건 가출처리, 아동만 보장하는 법제개편 시급
인지 능력이 있는 성인이 이유없이 사라졌다면 오히려 각종 흉악 범죄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낙동강 변에서 40대로 추정되는 한 남성이 몸에 돌이 묶인 채 시체로 발견되는 등 성인에게도 납치나 살인의 위험은 언제든지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성인 대부분을 단순 가출로 처리하는 것이 현실이다.
경찰 실종 전담 관계자는 "14살 미만 아동, 일부 여성을 제외하고 성인은 범죄와 연관성이 없을 경우에 가출로 보고 수사에 착수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경찰 수사 뿐 아니라 법률상으로도 성인 실종인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지난 2006년부터 시행된 '실종아동법'은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 14살 미만 아동과 일부 장애인에 한정돼 성인 실종 가족의 경우 의료적인 혜택이나 지원을 받지 못한다.
이에 실종 아동법을 모든 여성과 실종 당시 65살 이상의 노인으로까지 확대, 추진하는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에 계류 중이다.
법안을 발의한 한나라당 김소남 의원은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치매 노인이나 여성, 14살 이상 미성년자의 경우에도 해마다 실종 신고가 늘고 있지만 법률적으로 방치돼 법안 개정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시민의모임 나주봉 회장은 "실종인 가족들의 고통은 아동나 성인 모두 같다"며 "나이에 상관없이 실종인에 대한 빠른 대처로 피해를 줄이고 관련법 개정을 통해 지원 영역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