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한 유진박은 8세에 미국 줄리어드 예비학교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해, 10세 때 웨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 13세에는 링컨센터에서 협연 무대를 가질 정도로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미국 명문대인 줄리어드 음대를 졸업한 후에는 귀국해 1997년과 1998년에 연이어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국내에서 이름을 알렸고, 그동안 클래식한 바이올린에 익숙했던 대중은 재즈와 팝, 록으로 재해석한 유진박의 역동적인 전자 바이올린 리듬에 단박에 마음과 귀를 빼았겼다.
그는 1999년에 예술의전당에서 단독 공연을 진행할 정도로 단시간에 국내에서 인정받는 연주자가 됐고, 사람들은 그가 바네사메이처럼 세계적인 전자 바이올리니스트로 우뚝 서기를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진박은 하루아침에 잠잠해졌고, 사람들은 그를 차츰 잊어갔다.
하지만 그는 더이상 수많은 관객에게 둘러싸여 있지 않았고, 초라한 무대에서 호응 없는 관객들을 이끄는 연주자일 뿐이었다.
이 행사장에서 유진박을 봤다는 한 네티즌은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진짜 유진박이 이런 촌구석까지 와서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공연을 하겠느냐고 이야기하더라. 무대 앞에는 뛰어나오는 사람도 그를 지켜주는 경호원도 없는 쓸쓸한 자리였다”며 글과 함께 사진으로 그의 근황을 전했다.
이러한 글과 영상을 본 네티즌들은 “천재를 어떻게 이렇게 만들어 놓을 수 있느냐”고 분개했고, 다른 네티즌은 “내가 봐도 이 정돈데 가족들 마음은 어떻겠나. 예전 모습을 되찾아서 컴백하기를 기다리겠다”고 응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