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간내 사망" 예상깨고 계속 자가호흡 생존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23일 오전 10시 22분 김 할머니의 인공 호흡기를 제거했다. 가족들은 임종예배까지 드렸다.
하지만 김 할머니는 수시간 내에 사망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자가 호흡을 하면서 아직 생존해있다. 혈압도 비교적 안정적이며 콩팥 등 다른 장기도 모두 정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문에 대법원의 존엄사 판결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21일 대법원은 "환자의 신체상태에 비춰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 명백한 경우에는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짧은 시간 내 사망'을 존엄사 인정의 한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때문에 세브란스 병원측은 당시 법원의 판단이 너무 성급했던 것이 입증됐다며 다시 반박하고 나섰다.
◈ 세브란스 병원 "상당기간 생존 가능성도 있다"
박창일 연세의료원장은 "(김 할머니가) 대법원 판결의 근거가 됐던 1단계인 사망임박 단계는 아니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면서 "현재 김 할머니의 상태는 자체적인 기준으로 2단계로 보고 있지만 자발 호흡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3단계로까지 갈 수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세브란스 병원측은 죽음에 이르는 환자의 상태를 ▲ 회생 불가능한 사망 임박 단계인 1단계 ▲ 인공 호흡이 필요한 2단계 ▲ 자발 호흡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3단계로 구분해 단계가 올라갈수록 존엄사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1단계의 경우 자기 결정권 없이도 가족의 동의와 의료진 판단으로 존엄사를 결정할 수 있지만 2단계부터는 자기 결정권이 필요하며 특히 자발적 호흡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3단계의 경우에는 존엄사 자체에 사회적, 법률적 합의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할머니가 2단계가 아닌 3단계, 즉 지속적인 식물인간 상태로 분류될 경우 존엄사 시행이 다소 성급했다는 주장이다.
◈ 종교계 "법원이 오판"
김 할머니가 계속 생존해있다는 소식을 접한 종교계 등에서도 반대의 목소리를 더욱 높이고 있다.
이상원 성산생명윤리연구소장(총신대 기독교윤리학과 교수)는 "회복될 가능성이 없이 죽음을 향해 필연적으로 나아가는 상태를 비가협적 사망의 상태라고 하는데 이번 환자의 상태를 미뤄보면 명백한 법원의 오판"이라고 주장했다.
김 할머니의 경우에는 "연명치료를 중단했는데 호흡이 계속됐기 때문에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이 아니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생물학적 신체가 작동하고 있으면 영혼도 들어와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며 "특히나 환자의 상태로 미뤄보아 1심에서부터 법원의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이재란 사무관은 "이번 일을 계기로 존엄사를 법제화 할때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를 포함시킬 것이냐 말 것이냐, 포함시킨다면 어느 수준까지냐의 판단을 보다 신중하게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법원 "존엄사 판결 취지는 자연사를 유도하자는 것, 장기간 생존 가능성도 이미 검토"
반면 법원에서는 생명 연장 가능성을 모두 검토한 뒤에 판결을 내렸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존엄사 인정 판결을 내렸던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CBS와의 전화통화에서 "연명 장치를 제거한 뒤 곧바로 숨지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을 판결 단계에서 이미 검토했다"면서 대법원 판결로 호흡기를 제거하고도 9년을 더 산 미국의 카렌 퀸란 사례를 들었다.
이 판사는 "판결 취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달라"면서 "연명 장치를 떼어내 곧바로 죽도록 두는게 아니라 자연사를 유도하라는 것이 판결 취지"라고 강조했다.
이동직 카톨릭대 생명대학원 신부는 "인공 호흡기의 제거가 곧바로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면서 "자연사와 존엄사 논의를 안락사로 확대 해석하면서 생긴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병원측이 법원의 존엄사 판단에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환자가 생명을 장기간 연장할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존엄사 집행의 적절성을 둘러싼 논란이 한층 가열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