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박연차 수사'가 진행될 수록 수사의 한복판에 자리하게 된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더 이상 ‘서민적인 모습'으로 살 수 없었다는 판단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진실이 어쨌든지 그는 여전히 ‘할아버지’ ‘동네 주민’ 등 서민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이런 그의 모습은 지지자들이 지어준 여러 가지 애칭을 통해 읽을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지지자 모임인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노사모)'들 사이에서 ‘노짱’이라고 불렸다. ‘짱’은 소위 '대장' ‘최고’라는 뜻을 가진 젊은이들 사이의 은어였다.
서민적인 소탈한 모습은 퇴임 이후 지난해 1월 고향인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로 낙향한 이후 더욱 부각됐다.
봉하마을을 찾은 관광객과 담소를 나누거나 사진을 찍는 등 철저히 자연인으로 살았다. 여기서 그는 ‘노간지’ '운전기사’라는 또다른 서민냄새 풍기는 별명을 얻었다.
노 전 대통령은 점퍼 차림으로 마을 상점에 앉아 담배를 무는 모습 등을 연출하면서 ‘노간지’로 불렸는데, 이는 ‘폼난다’라는 뜻을 가진 일본어 ‘간지’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을 딴 신종 합성어다.
그는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자전거에 달린 수레에 두 명의 손녀를 태운 채 마을 주변의 한갓진 길을 힘차게 달리는 사진을 공개해 ‘운전기사’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이런 애칭은 그와 일반 국민간의 스스럼 없는 거리감을 방증했다.
전국이 애도의 물결에 휩싸인 지금, 영면하기 전날 "본인이 죽었을 때 혈육을 제외하고 그 사람을 위해 울어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하다"는 친구의 말에 “맞다. 자네는 그렇게 살아라”라며 맞장구 친 노 전 대통령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