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차선 터서 양방향 질주' 위험천만한 자전거 도로

차선폭 줄여 전용도로화, 자칫 대형사고 위험…교통체증 대안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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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열풍'이 거세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3일 창원에서 열린 자전거 축전에서 직접 페달을 밟으며 자전거를 친환경 녹색 성장의 키워드로 삼겠다고 천명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자전거 산업 육성을 주장하자 관련 주식까지 연일 급등하는 등 과열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자전거를 안전한 교통수단으로서 정착시키려는 노력 없이 그럴듯한 이벤트성 계획만 쏟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안전을 무시한 탁상공론으로 서울시의 ‘자전거 전용도로’ 사업이 시작부터 삐걱거리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1개 차로 전용도로화, 자전거 쌍방향 질주 '위험천만'

지난 3월 서울시는 도심으로 자전거 출퇴근이 가능하도록 기존 도로의 1개 차로를 없애거나 차선폭을 줄이는 ‘도로 다이어트' 방식으로 2012년까지 207㎞의 자전거전용도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기존 자전거 도로가 인도와 혼재돼 있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일자 차선을 떼어내 전용도로를 만들겠다는 정책을 세운 것이다.

그런데 서울시의 사업 계획에 반대 방향의 자전거까지 한쪽 도로에 몰아넣는 위험한 도로 모델이 포함돼 있어 물의를 빚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한쪽 차선에만 전용도로를 만들어 양방향 자전거를 같이 운행하는 모델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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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경찰 측에서 교통사고 위험성이 높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차량들이 쌩쌩 달리는 대로변에서 자전거가 차와 반대방향으로 운행한다면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경찰 측 입장이다.

경찰청 교통기획 담당자는 “양 방향 자전거를 한쪽에 몰아넣으면 마주 오는 자전거끼리 충돌이 자주 발생할 수 있고, 그 충격으로 자전거가 차로 쪽으로 튕겨져 나가면 아찔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역주행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해외에서도 이 같은 형태의 자전거 도로는 찾아볼 수 없다”며 “혼잡한 서울 도심 도로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전용 도로 모델이 알려지자 '자출족(자전거로 출근하는 사람들)'들도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4년째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있는 오종렬 씨는 계획대로 도로가 만들어진다면 “자출족들에게는 목숨을 내거는 위험천만한 주행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 씨는 “자전거도 차량의 일종인데 다른 차들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말이 되냐”면서 “정면충돌이 위험한 것은 누구나 아는 만큼 차량과 엇갈리는 역주행은 피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안전 문제가 불거지자 시에서는 최근 천호대로 자전거 전용도로를 한 방향으로 만들기로 하는 등 뒤늦게 도로 건설 계획을 수정하기도 했다. 사고 위험성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잠실 송파구 등 일부구간에서는 여전히 이 모델을 추진하고 있다.

◈이벤트성 정책 치중 말고 인프라 구축에 힘써야

이처럼 사전 조율 없이 무리하게 정책을 추진하다보니 자전거 전용도로는 초반부터 심의를 제때 통과하지 못해 난항을 겪고 있다.

시에서 내놓은 건설계획 대부분은 서울지방경찰청 교통규제심의위원회에 재심이 걸린 상태이다.

혼잡한 도심 도로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자전거 전용도로를 할당하려다 경찰 측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안전문제’ 뿐 아니라 도로가 좁아지면서 생기는 ‘교통체증’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도 없는 상태다.

'도로 다이어트'로 1개 차로가 없어지는 구간은 현재보다 차량 통행속도가 시속 3∼5㎞ 정도 느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지만 시에서는 자전거가 활성화되면 차량 이용이 줄어들어 오히려 교통 체증이 해소될 것이라는 안일한 낙관론만 펼치고 있다.

이에 대해 각종 정책을 세울 때 ‘자전거’에 방점이 찍혀있다 보니 정작 ‘시민’들의 안전과 편의를 간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허억 차장은 “자전거는 무작정 좋다는 식으로 홍보할 것이 아니라 사고의 위험성 등 부작용도 알리고 함께 점검해 가야 한다”면서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자전거가 다른 교통수단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환경 조성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벤트성 자전거 정책을 쏟아 놓기 전에 현실에 정착 가능한 자전거 정책을 세워야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사단법인 ‘자전거21’ 박선경 연구개발팀장은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도로부터 만들면서 자전거 실수요자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사고 위험성만 커지고 있다”면서 “지금이라도 경찰 측과의 충분한 협의를 거쳐 도로 점검을 실시하는 등 최선의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팀장은 또 “자전거의 법적 지위를 격상시키기 위해서 도로교통법을 손보는 등 제도정비를 해야 하고, 무엇보다 자전거를 정식 교통수단으로 인식하도록 교육 등을 통해 문화적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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