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으로 14일 세상을 떠난 이영훈 작곡가의 필생 꿈은 그를 대표하는 노래 ''광화문 연가''를 뮤지컬로 만드는 일이었다.
고인은 직접 대본을 완성할 정도로 뮤지컬에 애정을 쏟았다. 지난해부터는 영화감독과 뮤지컬 제작자 등으로 팀을 꾸려 제작에 박차를 가해 왔다.
뮤지컬은 고인이 "내 감성의 출발"이라고 말해왔던 광화문과 덕수궁을 무대로 한 불우한 남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다. ''광화문 연가''를 비롯해 ''애수'', ''그녀의 웃음소리 뿐'' 등 고인의 노래들로 이뤄진 독특한 형식의 뮤지컬로 아바의 노래들로 이뤄진 ''맘마미아''와 비슷하다.
생전 이 작곡가는 뮤지컬을 두고 "남은 일생을 건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대중음악을 주로 작곡했지만 무대예술 음악을 전공한 고인은 연극 음악을 만들기도 했다. 때문에 뮤지컬은 고인이 이뤄놓은 다양한 음악을 아우르는 작업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결국 뮤지컬을 무대에 올리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고인의 유작은 2006년과 2007년 한 장씩 발매된 ''옛사랑''. 히트곡 26곡을 가수 22명이 나눠 부른 음반으로 이문세가 부른 원곡을 다른 가수들이 새로운 색깔로 표현해 내 호평받았다.
고인은 ''옛사랑'' 음반에 총 11억 원의 제작비를 쏟아부었다. 수록곡 모두 자신의 곡이었는데도 한 편의 영화 제작비와 맞먹는 금액이 들어간 이유는 척박한 음반시장에서도 음악적 가치와 자존심을 놓치기 싫은 마음에서였다. 흔한 컴퓨터 작업 대신 모든 악기를 실연으로 이룬 고집스러운 음반이 ''옛사랑''이다.
''옛사랑''의 두 번 째 음반이 나왔던 지난해 5월 만난 고인은 "죽어나가는 CD 시장에 활로가 열리고 온라인 음원 시장만 보는 일부 제작자에게 경각심도 일으켜 현재 음악시장의 문제를 하나씩 짚어내는 작은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며 바람을 조심스럽게 드러냈다.
고인은 또 1985년부터 10년 넘게 이문세와 각별한 인연을 나눴다. 그 사이 작곡한 노래를 모두 이문세가 부르면서 8장의 정규 음반과 4장의 라이브 음반을 함께 만들었다. 이 음반들로 고인은 1,000만 장 판매라는 대기록을 보유하게 됐다.
이문세의 곡만 쓴 것에 대해 고인은 자부심과 아쉬움을 함께 갖고 있는 듯했다.
지난해 고인은 "다른 이들보다 음악적으로 좀 넉넉한 편이라 실력 있는 후배 가수에게 노래를 주고 싶다"면서 "지금까지는 이문세 씨만 제 노래를 불렀는데 앞으로는 여러 가수에게 새로운 노래를 주고 다양한 음악을 선보이고 싶다"고도 했다.
이 뜻은 가수 박소연을 통해 이뤘다. 지난해 말 출시된 박소연의 데뷔 앨범 ''별과 바람의 노래''는 이영훈 작곡가가 프로듀서를 맡은 마지막 음반이다. 고인이 만든 타이틀곡 ''공원 길''의 배경 역시 덕수궁이다.
고인은 최근 몇 년동안 아들이 유학 중인 호주 시드니에서 아내와 지냈다. 고인은 만날 때면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높다던 아들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건강이 악화되면서 지난해부터는 아내와 서울로 거처를 옮겨 치료를 받았던 고인은 결국 병을 이기지 못하고 음악만을 남긴 채 세상을 등졌다.
빈소는 서울삼성병원에 마련됐고 발인은 18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