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치지 말자. 어두컴컴한 골목길 사이에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4분 남짓 스크린에 이어진 뒤 하정우를 제압한 김윤석이 전봇대를 잡고 가쁜 숨을 몰아 쉬는 장면. 그러다가 김윤석이 꾸역꾸역 헛구역질을 하는 바로 그 장면.
순식간 지나가는 이 장면처럼 김윤석의 연기가 전해주는 쌉싸래한 맛은 영화 ''추격자(나홍진 감독·비단길 제작)'' 곳곳에 숨어 있다. 이는 ''추격자''의 매력이자 김윤석의 더 큰 매력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약속한 바로 전날 밤 김윤석은 개봉에 앞서 열린 VIP시사회를 마치고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고 했다. ''죽인다''거나 ''오랜만에 센 영화 나왔다''는 주변의 호응을 한 몸에 받은 김윤석이 한 턱 냈다. 때문에 김윤석의 눈은 충혈돼 있었고 얼굴에는 붓기가 올라 있었다.
"배우의 얼굴치곤…(하하). 그런데 이런 분위기가 영화와 더 어울린다."
서울의 밤거리를 쉬지 않고 뛰고 멈춤 없이 욕지거리를 내뱉고 그도 모자라 쉴 새 없이 주먹을 날리는 전직 형사이자 현직 ''포주'' 엄중호는 ''추격자'' 속 김윤석의 모습이다. 출장안마소 여자들이 한둘씩 없어지자 속이 타는 엄중호는 전화번호가 4885로 끝나는 남자가 여자를 팔아버렸다고 생각해 뒤를 쫓기 시작한다.
"중호는 법 안에서 가장 밑바닥을 사는 남자"
출발부터 예사롭지 않은 영화에서 김윤석은 ''추격자''란 제목 값을 톡톡히 치렀다. 연쇄살인범 지영민(하정우)을 끝없이 홀로 뒤쫓으면서 벌이는 싸움은 몸으로도 말로도 거침이 없다.
"중호는 흔히 말해 ''좋은 놈''은 아니다. 법 안에서 가장 밑바닥 일을 한다. 도덕과 윤리를 갖고 놀 줄 아는 남자다. 상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말투도 마찬가지다."
김윤석은 중호의 캐릭터가 관객에게 드러나는 대목으로 사라진 여자 미진(서영희)의 어린 딸과 편의점에 앉아 나누는 대화를 꼽았다. 아빠의 행방을 묻는 중호의 말에 ''브라질 수도 리우데자네이루에 일하러 갔다''고 아이가 답하는 장면이다.
"도가 넘치면 자칫 신파로 흐를 수 있어 상당히 조심스럽게 접근했다"는 김윤석은 "중호와 아이가 사적으로 조금씩 접근하는 부분이다"라고 설명하며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도 덧붙였다.
극단 연우와 학전을 거치면서 연극 무대에 올라 탄탄한 실력을 쌓은 김윤석은 영화로 뒤늦게 눈을 돌린 배우다. 드라마 ''부활''로 얼굴을 알렸고 ''인생이여 고마워요'', ''있을 때 잘해'' 등으로 안방극장을 누볐다.
그 사이 스크린 도전도 멈추지 않았다. 폭압적인 아버지로 등장한 ''천하장사 마돈나''를 거쳐 김윤석의 진가가 드러난 작품은 ''타짜''. 화투의 신 아귀로 등장한 김윤석은 단번에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이어진 작품이 ''추격자''다. 이 영화는 김윤석의 첫 주연작이기도 하다.
"아귀는 세상에 관심을 끄고 쓸데없는 긴장감을 단 1%도 안 준다. 반면 중호는 아귀보다 더 자기 중심적이고 조직 안에서도 우두머리가 되려는 사회적인 남자다. 주변과 엮이는 설정인데다 주인공이기 때문에 다른 배우들과의 밸런스가 중요했다. 방법은 대화밖에 없었다."
현장에서는 나홍진 감독과 배우들의 끊임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아니다 싶으면'' 어김없이 몇 시간이고 촬영을 멈추고 대화를 나눴던 그들은 때문에 활자로만 읽은 대사를 더 깊은 감정과 표정으로 표현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대화를 통해 이뤄놓은 설정을 한 번에 와르르 무너뜨린 나 감독의 ''습성''은 김윤석의 기를 질리게도 했다.
결말까지 열어 놓고 촬영했던 영화를 마치고 나서 김윤석은 "어쩌면 나홍진 감독, 하정우까지 우리 셋은 서로 많이 사랑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사랑''이란 단어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자 김윤석은 손사래 치면서 "그 말은 취소다"고 말했지만 함께 작업하며 쌓은 서로를 향한 신뢰는 유독 두터워 보였다.
가정에서는 6살, 3살 아이 둔 자상한 아빠
''추격자''는 등장하는 90%가 밤 장면이고 이 중 60%에서는 비가 내릴 정도로 촬영은 악조건 속에서 이뤄졌다. 비좁은 골목길을 달리는 주인공들을 쫓는 카메라까지 숨이 차 보이는 건 ''추격자''가 주는 짜릿함이다. 무려 38시간 동안 촬영을 계속한 장면이 있을 정도로 매 신마다 배우들은 땀 범벅이다.
아무래도 이 작품으로 김윤석은 다른 위치에 설 것 같다. 성급한 예측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관객 반응을 기다리는 김윤석은 이 짜릿함을 즐기는 중이다. 설렘과 기대가 교차하는 요즘, 그가 내는 욕심은 무엇일까.
"''추격자''로 손해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돈을 떠나 배우로서 말이다. 볼 가치가 있는 영화로 평가받길 바란다."
"아직도 중호에게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김윤석은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중호의 모습을 담아둘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일단 집 현관에 들어서면서부터 얼굴을 달라진다고 했다. 6살과 3살 자녀를 둔 김윤석은 촬영이 없는 날은 물론이고 촬영하는 날에도 비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아이들과 함께 보내려고 애쓴다.
가장 큰 행복은 아이들과 떠난 여행. 바다든 산이든 시간 날 때마다 아이들 손을 잡고 찾아다니는 자상한 아빠가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김윤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