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끼리 일식집 하자더니…" 합동분향소 눈물바다

용산
용산 참사 희생자들의 공식 합동 분향소가 21일 오후 8시에야 서울 한남동 순천향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하늘길이라도 좋은 곳에서 보내자"는 유가족들의 요구로 장례식장 4층 VIP실을 빌렸지만 이들은 아직 시신을 인계받지 못했다면서 떠나간 가족의 이름을 부르면서 오열했고, 합동 분향소는 이내 눈물바다로 변했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부상자들이 있는 병실을 잠시 들렸지만 희생자들이 있는 장례식장은 돌아보지 않은채 수분만에 병원을 빠져 나갔다.

끔찍한 참사에 분노를 삭히지 못한 이들 유가족들은 마지막까지 기구했던 희생자들의 삶을 곱씹으며 슬픔에 잠겼다.

◈ "2년전 강제 철거당했는데 또 재개발이라니"

고 윤용헌씨(51)는 2년전 서대문에서 100평남짓의 큰 음식점을 운영했지만 이 일대 재개발로 강제 철거당한 뒤 가세가 급속히 기울었다.

윤씨의 두 아들은 이날 아침까지도 사고 사실을 모르다 뉴스 자막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접하고는, 병원으로 달려와 오열하기 시작했다.

철거뒤 단칸방에 네식구가 살면서도, 다시 한번 일어서기 위해 용산에서 몇평 남짓한 작은 밥집을 운영하던 윤씨네 가족.

하지만 용산에 또다시 재개발 바람이 들이닥치면서 두번째 철거를 당하는 신세가 되자 윤씨는 세상에 분노했다. 윤씨의 매제 김모(45)씨는 "평소에 열심히 생계를 꾸리면서도, 어려운 사람들 지나치지 않고 묵묵하게 도와줬다"며 윤씨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 "온 가족끼리 일식집 차리기로 했는데..."

참사가 난 건물 바로 맞은편에서 만 4년째 복어집을 운영했던 고 양회성(56)씨.

30년간 일식집에서 베테랑 요리사로 일하다 자신의 가게를 운영해보겠다고 용산에 빚을 내 복어집을 차렸지만 재개발로 위기가 닥쳤다.

부인 김영덕씨는 "1년 전부터 용역직원들이 쇠파이프를 들고 들이닥쳐 장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면서 "돈 없어서 미안하다며 조금만 더 고생하자고 했는데..."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양씨 큰 아들은 "나도 동생도 요리사 경력이 있어서, 가족끼리 모여 단란하게 일식집을 차리는 게 꿈"이었다며 슬픔에 말을 잇지 못했다.

결국 작은 가게를 차려보자던 소박한 양씨네 가족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 눈앞에서 시아버지 죽음 지켜본 며느리

사고 당일날 아침. "우리 아버지가 저 안에 있다, 들어가게 해달라"며 참사 현장 주변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한 며느리는 끝내 시아버지 이상림(70)씨의 죽음을 확인해야 했다.

이 주변에서만 30년간 장사를 하던 이들 가족에게 용산은 삶의 터전 그 자체였다.

최근 가게를 개조해 호프집을 열면서 생계를 꾸려가던 중에 시련이 닥치기 시작했다.

남편과 시아버지의 생사 위기를 눈 앞에서 지켜봐야 했던 며느리는 결국 삶의 터전과 함께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던 시아버지를 잃었다.

부상을 당했던 아들 이충연(45)씨는 "돈 문제뿐 아니라 오랫동안 살아왔던 터전을 아버지와 지키고 싶었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재개발로 인해 삶의 터전과 함께 사랑하는 가족들까지 한꺼번에 잃게된 이들 유가족들은 저마다 가슴 저린 사연을 품고 슬픔에 잠긴 채 장례절차를 준비했다.

21일 오후 늦게서야 시신이 확인된 한대성씨의 가족들은 뒤늦게 병원으로 달려오기도 했다.

경찰의 과잉진압과 석연치 않은 사태수습, 늑장 신원확인에 유족들의 가슴은 다시한번 멍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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