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간부 딸 살해' 정원섭 씨, 36년 만에 무죄 판결

법원, "조사과정서 가혹행위 등 중대한 하자 있었다"

정원섭
"오늘의 승리는 저 한사람의 승리가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승리입니다"


28일 오후 2시 30분 춘천지방법원 1호 법정 앞.

1972년 9월 27일 춘천시 우두동 논둑에서 경찰 간부의 딸인 9살 여자 어린이를 성폭행한 뒤 살해한 혐의로 붙잡혀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15년간 옥살이를 했던 정원섭(73) 씨.

36년 만에 무죄가 선고되자 눈시울을 붉히며 흥분된 심정을 쏟아냈다.

1987년 모범수로 가석방됐지만 '파렴치한 살인범'으로 낙인 찍혀 살아온 세월을 위로하듯 정 씨와 가족, 친구들은 입을 굳게 다문채 서로의 어깨를 다독였다.

수사과정에서의 가혹행위와 증거조작 등을 주장하며 억울함을 풀기 위해 1999년 11월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으나 기각돼 다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문을 두드렸던 정 씨.

지난해 12월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을 '춘천 강간 살인 조작의혹 사건'으로 규정하고 국가에 재심 등 후속 조치를 권고했다.

그는 1심 법원인 춘천지법에 두 번째 재심을 청구했고, 재조사를 거쳐 재심을 결정한 법원은 조사 과정에서 가혹행위 등 사건 수사절차상 중대한 하자가 있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정 씨는 무죄 선고 직후 누구를 떠올렸을까.

"그거야 두말할 필요없죠. 나보다 더 고생한 사람있죠. 바로 아내입니다" "감옥살이 15년 동안 2남 2녀 자식들과 함께 이웃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면서도 옆에서 힘을 준 집사람에게 고마운 마음 뿐입니다"

자신을 수사했던 당시 경찰 등 사법기관에 대한 소회에는 앙금이 남았다.

그러나 정 씨는 긴 호흡을 한 뒤 성경 구절을 인용해 "요셉은 자신을 죽이려고 했고, 이집트 종으로 판 형들을 원망하지 않았다"며 "당시 춘천경찰서 수사과 직원들을 용서할 수 있도록, 그리고 용서해 달라고 기도한다"고 말을 맺었다.

사건 당시 10살이었던 큰 아들 정재호(46) 씨는 "아버지의 억울한 옥살이와 함께 주위의 따가운 시선에 마음 졸이던 지난 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며 "이제야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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