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준상 “배우에게 마흔 살은 또다른 시작이죠”

[노컷인터뷰] 뮤지컬 ‘즐거운 인생’ 주연 배우 유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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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환율은 급등하고 주가는 폭락하는 시대, 회사에서는 감원, 감봉설이 나돌고 집에서는 무능한 가장이라는 가족들의 눈치에 남성들은 큰소리 한 번 제대로 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지난 21일 첫 공연을 올린 뮤지컬 ‘즐거운 인생’(연출 오만석 제작 뮤지컬 컴패니)은 이러한 시대상황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작품. 무대 위에는 웃을 일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우울한 인생군상들이 나열된다.

유쾌하고 코믹한 이미지의 탤런트 유준상은 이 작품에서 헤어진 여자를 잊지 못하는 서른일곱 노총각 음악교사 범진 역을 연기한다. 그가 맡은 범진은 애인도 친구도 없어 혼자 거울을 보면서 끼니를 해결하고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바라보며 자기 자신에게 전화를 거는 인물. 설상가상 여자친구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범진이는 한마디로 즐겁지 않은 인생을 사는 우울한 캐릭터죠. 하지만 어떻게든 희망을 갖고 삶을 살아가요. ‘즐거운 인생’이라는 제목은 그렇게 아등바등 살려고 애쓰는 모습을 빗댄 은유적 표현이에요.”

유준상은 자신의 첫 무대였던 22일 공연에서(21일에는 더블 캐스팅 된 배우 임춘길이 공연했다) 이 시대 남성들의 자화상을 실감나게 연기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이끌어 냈다. “무대에서 보니 눈시울을 훔치는 관객들도 몇몇 보이던데요. (웃음) 저도 연습에 몰입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곤 했어요. 생각해보세요. 사회는 어수선하고 언론에서는 연일 경제위기라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보도돼요. 유명인들은 잇따라 목숨을 끊었죠. 우리 작품은 어찌 보면 상투적인 이야기지만 2008년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점에서 관객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낸 것 같아요.”

◆오만석, 후배지만 뛰어난 연출가

‘즐거운 인생’은 영화 ‘왕의 남자’의 원작 연극 ‘이’를 연출한 김태웅 씨가 지난 2005년 한 차례 무대에 올린 작품으로 탤런트 오만석이 이를 뮤지컬로 각색했다. 즉 ‘즐거운 인생’은 오만석의 연출데뷔작인 셈.

유준상은 작품 출연에 있어 연출가 오만석에 대한 신뢰감이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대본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오만석 연출에 대한 믿음이 컸지요. 연출가의 가장 큰 자질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포장이 아니라 작품 전체를 파악해 표현하고 싶은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일이거든요. 보통 배우들은 이러한 작품 분석력을 갖기가 쉽지 않은데 우리 오연출은 그런 면이 상당히 뛰어났어요. 지금 오연출과 작업은 무척 만족스러워요.”

유준상은 새까만 후배 오만석을 꼬박꼬박 ‘오연출’이라고 부른다. 현장에서는 아예 ‘연출님’이라고 부르며 존칭을 한다고 한다.


“사회에서 연출자와 배우로 만났을 때는 그에 걸맞게 대우해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저보다 나이가 어린 친구들이 더 많은데 나이가 어리다고 반말을 하거나 친구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제가 이렇게 기강을 잡으니 만석이도 연출가로서의 지위가 서 우리팀 전체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연출은 우리팀의 선장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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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배우에게 있어 40살이란?

춤과 노래, 연기가 결합된 뮤지컬은 연극, 영화, TV드라마보다도 더 강인한 체력을 요구한다. 하루 두 차례, 2시간 남짓 쉬지 않고 무대 위를 뛰어다니다 보면 진이 빠지기 때문이다.

1969년 생인 유준상은 올해 우리 나이로 40살이다. 혹 체력적으로 뮤지컬 무대에 서는 게 어렵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그는 “힘들다”고 맞장구를 치면서도 뮤지컬의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힘들죠. 저도 나이가 나이니 만큼....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웹서핑을 하면 허리 아프고 어깨 아프고 눈도 침침해지는 것 같은데 그런 것보다는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게 저에겐 더 맞아요. ”

유준상은 체력관리를 위해 아내이자 동료 탤런트 홍은희가 정성껏 준비한 배즙, 포도즙 등을 복용한다. 하지만 그에 앞서 더욱 중요한 것은 맑은 정신과 마음가짐,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라고 강조한다.

“한 작품을 공연하면 공연 초반 일지와 후반부 일지의 내용이 달라져요. 제가 인간적으로 성숙해져 감을 느낀다고 할까? 그래서 이렇게 무대 위에 설 수 있는 게 참 감사해요.”

적어도 70세까지는 뮤지컬 무대 위에 서고 싶다는 유준상에게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 스타’처럼 “배우에게 있어 40살은?”이라는 질문을 던졌더니 “또다른 시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20대는 뭘 모르고 뛰어들었다면 30대는 그야말로 물불 안가리고 닥치는 대로 일한 시기였죠. 40살은 또다른 시작인 것 같아요. 이제까지 얼마 안되는 경험을 통해 조금씩 알게 된 것을 가지고 조금씩 뭔가를 이루는 시기죠. 아마 이런 자양분들이 모여지면 50대에는 좋은 연기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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