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한곡 한곡 자신의 분신 같은 노래들을 담은 새 음반 <물수건>을 발매,6 년이란 긴 공백을 깨고 활동 재개에 나섰습니다.
라구요, 넌 할 수 있어, 명태, 와그라노 등의 히트곡을 통해 국내 가요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해왔던 강산에 씨. 그는 이번 8집 앨범을 통해서도 자유로운 음악 세계를 펼치고 있는데요.
6년이란 긴 시간 동안 팬들을 향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이 한 장의 음반에 꾹꾹 눌러 담았다고 전하는 돌아온 로커 강산에 씨를 3월 24일 CBS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FM 98.1Mhz, 연출 김우호 PD)에서 만나봤습니다.
◇ 알고 보면 연악하고 두려움 많은 보통 사람
▶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지난 겨울 여러 가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조금 춥게 지냈어요. 다시 봄이 와서 모든 것이 깨어나는 느낌이 나서 많이 좋습니다. 지난 해 몸이 약간 아팠습니다. 그런 일은 처음 당해봤는데, 몸의 균형이 깨졌는지 특별히 고장 난 곳은 없는데도 한동안 잠도 잘 못자고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시 회복이 되었습니다.
▶ 늘 강산에 씨는 '배가본드'나 '노마드'를 연상케 하는데, 요즘도 삐딱한 로커라는 말 많이 들으세요?
제가 활동을 공개적으로 많이 안하다보니까 요즘은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요즘은 제 스스로 많이 무신경해졌다고 느낍니다. 칼날이 좀 무뎌졌다랄까, 내가 너무 둥글둥글해지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죠.앨범마다 각 타이틀이 있지 않습니까? 앨범 자체의 컨셉이랄까. 처음 데뷔앨범의 앨범 제목을 어떻게 정할지 몰라서, 그냥 시작의 의미로 앨범을 '0부터 시작하자'고 했습니다.
왜 꼭 1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본래 모든 것이 '없는 것'. 즉, 0부터 시작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첫 데뷔 앨범을 ‘볼륨0’이라고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 앨범은, 사회나 기성세대에 뭔가 불만이 많아서, '사춘기' 로 앨범 제목으로 냈죠. 그 다음 앨범엔 그 골이 더 깊어져서 '삐딱이'가 된 것이에요.
그런 앨범 제목의 이미지로 인해서 제가 삐딱한 사람인 것처럼 제 자신이 많이 비춰지는 것인데, 속으로 보면 저도 아주 연약하고, 두려움도 많고. 그렇지만, 어쨌든 이기고 극복하고 싶어 하는 그런 똑같은 사람입니다.
▶ CBS FM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했었죠?
재작년에 'DJ라고 하기엔 조금 쑥스럽지만 강산에입니다.'(웃음)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었죠. 그것도 좀 삐딱하죠. 제 스스로 DJ로서 방송을 진행한다는 것이 도저히 상상이 안 되었어요. 그래서 미리 복선을 깔아놓은 것이에요. DJ라기엔 조금 쑥스럽지만 재미있게 즐겨 주십사하고 말이죠.스튜디오에 오랜만에 오니 마치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에요.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어쨌든 일단 몸담았던 곳이니까요. 그리고 다 아는 분들이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 진행자들은 중독성이 있어서, 금방 마이크를 그리워하게 되는데 강산에 씨는 어떠셨어요?
저는 익숙해져서 중독되기 전에 이미 그만두었어요. 그때 방송하면서도 앨범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그 두가지일을 병행한다는 게 당시 저의 생활습관으로서는 힘들었어요. 그래서 일단 한 곳은 접어놓고 해야지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해서 그만두게 된 것이에요. 그래도 앨범 만드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고요.(웃음)
다른 분들은 둘 다를 병행하면서 작업하시는 경우가 많이 있긴 합니다. 여러 가지를 병행하려면 본인 스스로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 점에서 저는 아직은 좀 훈련이 필요한 것 같아요.
◇ 학비가 없어서 한의대를 그만두고 기타를 잡아
▶ 원래 한의대를 다니셨다고요?
한의대를 다녔다기보다 입학만 했었어요. 한학기도 못 다녔으니까요. 그 뒤에 다시 복학을 했다가 역시 한학기도 못 마치고 휴학을 했었죠.당시에 적응을 못한 것이 한 6~70%, 안한 것이 30% 정도였어요. 환경에 굴하고 만 것이죠.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었어요. 당장 학비 내는 것이 제일 힘들었었죠. 적성에 안 맞았다기보다는 등록금 문제가 컸습니다.
한편으로 지금에 와서 볼 때, 의술이라는 것이 참 고귀한 일 같아요. 귀중한 생명을 다루면서 남을 위해서 살 수 있는 의술을 공부를 했다면 훨씬 가치 있는 삶을 살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 기타를 언제부터 치기 시작하셨어요?
휴학을 하고 당장의 민생고를 해결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당시 주변에 술집이나 카페에서 일하던 친구에게 소개를 받아서, 그때 대학가에서 문화적으로 아주 유명한 전원적인 술집이 있었어요. 거기에서 어떻게 우연히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죠. 그때 그 곳 분위기가 통기타 치는 젊은이들이 모여서 자기 인생과 시국을 논하는 아주 문화적인 공간이었어요. 거기서 제가 처음 기타를 잡게 된 겁니다. 그때는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다들 누구나 코드 보면서 기타칠 수 있는 정도였었죠. 저도 그렇게 시작한 겁니다.
▶ 그때 비닐하우스에서 살 정도로 가난했다고요?
아니요. 그때는 그 아르바이트집에서 숙식해결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세월이 흘러 제가 결혼을 하고 나서 살기 시작한 곳이 비닐하우스였었죠. 그런데, 흔히 말하는 화초 키우는 비닐하우스는 아니었고요. 저희들이 살았던 곳은, 제대로 온돌 깔려있는 그런 곳이었어요. 아는 형님이 시골에 땅이 있어서 집을 지어서 살고 싶어 하셨어요.
그분이랑 저희가 서로 친해서 전세금을 그 형님한테 드리면서 같이 살자고 했었죠. 근데, 집 짓는 것이 하루 이틀 걸리는 것도 아니고 당장 두 가구가 살긴 살아야겠고 그래서 밑에 대충 온돌 깔고 살았던 것이에요. 딱히 생활고에 쪼들려서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 언제 직업적인 가수를 생각하신 건가요?
카페에서 일하면서, '이제는 뭘 해야 하나' 하고 제 자신한테 많이 물어봤었어요. 주변에서는' 다시 학교를 가라' ,'공부를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했었죠. 하지만 저 자신은 아직도 뭘 할지 몰랐었죠.그때 '화사랑' 출신들이 많이 가수가 되었어요. 출신이라고 하기는 뭐 하지만. 저, 전인권 형님, 고 김광석 씨 등이 계셨죠. 그리고 나중에 '화사랑'있었던 일산 쪽이 신도시가 되고 나서는 윤도현 씨, 김C가 거기서 같이 활동을 했었습니다.
◇ 어머니를 위해 ‘라구요’라는 노래 만들었죠
아버님은 제가 세 살 때 돌아가셨어요. 지금은 흑백사진 한 장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저의 어머님 말씀에 따르면, 아버지가 술을 무지무지 잘 드셨대요. 그래서 저한테 항상 술은 절대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체질이 아버지와 많이 닮았대요. 여러 가지로 아버지와 많이 닮아서 술 배우지 말라고 그러셨는데, 지금 저도 술을 잘합니다.(웃음) 하지만 어머니가 하신 그런 이야기 때문에 겁나긴 해요. 왜냐하면 아버지 말년에 술 때문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저도 술은 절제해야겠다고 생각은 합니다.
▶ 어머니 속 많이 썩이셨어요?
제가 한방에 결정적으로 속을 크게 썩이는 스타일이었어요. 평소에 내성적이다 보니까 잘 표현 안하고, 시키는 대로 하는척하면서 그동안 쌓인 것을 럭비공 튀듯이 확 분출해버리는 스타일이에요. 조용하면서도 하고 싶은 것은 꼭 해버리니까 어머니를 한 번씩 크게 놀라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곤 했어요. 큰 속을 많이 썩였죠. 가출도 하고.
▶ '라구요' 라는 노래가 어머니 드리려고 만들었다던데, 사실인가요?
예. 저희 어머니가 태생은 충청도 분이신데, 그 당시 시집을 함경도로 가셨어요. 시집에서 생활을 하시는 중에 한국전쟁이 났어요. 그래서 피난 내려오면서 결과적으로 실향민이 된 거죠. 아버님도 마찬가지이고요. 제가 형제가 위로 형님이 한 분, 누나가 한 분 계십니다. 형님은 49년생이신데, 지금 김치장사 하세요. 누나는 시집가서 잘 살고 계십니다.
▶ 본명이 '강영걸' 씨라던데, '강산에'는 누가 지어준 이름인가요?
대학교 때 친구가 만들어 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확한 기억이 없어요. 내가 만든 것 같기도 하고, 아님 당시 같이 살았던 친구가 만들어준 것 같기도 하고... 지금 조금 헛갈립니다.(웃음)
◇ 6년 만에 나온 새 앨범 ‘물수건’
▶ 8집 앨범 '물수건'에 대한 이야기 좀 해주세요.
저한테는 물수건에 대한 아주 좋은 경험이 있어요. 일본이라는 다른 나라의 문화를 처음 경험했을 때의 이야기에요. 일본에서는 식당이나 비행기를 타면 처음에 아주 깨끗하고 정갈한 물수건을 내주더라고요.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서. 그때 그것이 참 신선했어요. 뭔가 존중받고 대접받는 느낌이랄까. 참 감사하더라고요. '아...참 좋다' 생각했죠.
당시 한국에서는 물수건이 일반적이지 않았어요. 그런 문화가 없었거든요. 일본말로 그것을 ‘오시모리’라고 하는데, 그 오시모리 문화가 너무 좋았어요. 20대 중반 때 그것이 큰 충격이었죠. 물론 다른 재미있는 문화도 많았지만, 그 오시모리 문화가 너무 좋아서, 내가 이것을 나중에 꼭 노래로 만들어야겠다 생각을 하다가 이번에 만들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일본말로 노래를 만들었어요. 왜냐하면 일본 문화에 대한 뉘앙스가 있어야 했거든요. 근데, 일본말로 가사를 쓰고 나서 직역을 하니까 뭔가 어감이 이상해요. 그래서 이것은 그냥 일본노래로 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가 곡 자체가 너무 아까워서 아예 다른 가사로 노래를 만들었어요. 오시모리라는 노래의 멜로디만 똑같이 해서 '꼭 껴안고' 라는 노래로 만들었어요. 그래도 그 '물수건'이라는 단어 자체는 제게 큰 감동을 준 것이라 앨범 타이틀로 가게 된 것이에요.
▶ 아내가 일본분이어서 그런 영향을 받으신 건가요?
여하튼 아내를 만났기 때문이기도 하죠. 또한, 다른 문화권을 보면서 '다름'에서 오는 어떤 '차별'이라기보다 '차이'에서 오는 것들 덕분이기도 하고요.
▶ 타이틀곡 '답'이라는 곡은 어떤 의미입니까?
우리가 살면서 무엇을 하면 되고 무엇은 하면 안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뭐가 되고 또 어떻게 하면 뭐가 안 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원하잖아요. 그렇지만 그 ‘명확함’이라는 것이 개인과 상황에 따라 다르지 않습니까? 밤에는 이게 명확하다고 생각했는데 눈떠보면 또 다르고. 낮에도 밤에도 잘 이해되는 명확한 답을 각자가 찾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곡입니다.
▶ 강산에 씨 노래는 따라 부르기 어렵다고들 하던데?
레코드 회사에서도 그렇고,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노래만들 때 따라 부르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든 적이 없어서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따라 부르기 쉽게 해야 하나 생각은 합니다. 하지만 조금 힘든 것 같아요. 앨범을 만들 때 시간을 오래 투자하고 공을 많이 들였다고 해서 그 곳이 꼭 히트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게 참 신기해요.
▶ 6년 만에 새 앨범이 나온 거죠?
2002년에 새 앨범이 나왔으니 6년 만인 거죠. 앨범 낼 돈의 영향도 있고.(웃음)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제가 직접 노랫말과 멜로디를 쓰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그렇게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고요.
▶ 이번 앨범에 '사막에서 똥' 이라는 특이한 노래가 있던데,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예전에 사막지역을 여행했던 경험에서 나온 곡이에요. 여행하다가 사막에서 볼일을 보는데, 그것이 그렇게 굉장한 쾌감이 있더라고요. 그때의 쾌감을 노래한 것입니다.
▶ 이번 앨범에서 또 소개하고 싶은 노래는 무엇입니까?
' 내 여자',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꼭 껴안고' 라는 노래 등이 있습니다. 요즘 앨범 시장이 별로 좋지 않아서, 매니저도 많이 속상할 거예요.(웃음)
◇ 이번 앨범 타이틀곡도 아내가 작사한 것
▶ 돈은 어떻게 관리하십니까?
특별히 돈을 쓰는 사람이 없어서, 여태까지 돈이 없어서 곤란해본 적은 없어요. 그냥 우리 두 식구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은 없었어요. 요즈음은 슬슬 경제적인 압박감이 오긴 합니다. 당장에 저희 어머니에 대한 지원 부분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 챙기는데도 그렇고. 하지만 아내가 관리를 잘해서 이만큼 자유롭게 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아내는 어떤 분이세요?
소위 우리나라식의 바가지를 긁지는 않는 것 같아요. 꼭 크게 소리를 내지 않고 저를 방목시켜요.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구속될 수밖에 없는 그런 굉장한 카리스마가 있죠.(웃음)
▶ 아내가 작사도 하신다면서요?
예. 이번 앨범 재킷 디자인과 노래 작사도 아내가 했습니다. 이번 앨범 타이틀곡인 '답'이라는 노래도 그녀의 가사에요. 여러분이 알고 있는 '넌 할 수 있어'라는 노래의 가사도 집사람이 쓴 겁니다.
◇ 닮고 싶은 로커, 롤링 스톤즈, 제임스 브라운
▶ 10년 후에 강산에 주니어와 함께 유럽 투어를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예전의 인터뷰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요. 그냥 바람이죠. 모든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작품이 시공간적인 것을 초월해서 사랑받고자 하는 욕심이 있잖아요. 쉽게 말하면 여러 다양한 문화권에서도 연주하고 싶은 꿈이 있어요.
▶ 닮고 싶은 로커는 누가 있습니까?
외국 팀인데, '롤링 스톤즈' 그 분들이 참 부럽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타계하신 '제임스 브라운' 같은 분도요. 70 세가 넘도록 'I feel good' 같은 노래를 열창하는 모습. 저도 나이 들어서 그렇게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지금 우리 대중음악이라는 것도 결국 서양의 팝음악이잖아요. 물론 저희 몸속에 흐르는 정서적으로 특이한 부분은 있겠지만, 그 정신세계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그 음악을 듣고 자라다 보니까 그곳의 여러 뮤지션들에게 영감과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죠.
▶ 공연이 4월 2일부터 3주간 홍대 '상상마당'에서 있으시죠?
월, 화 쉬고 나머지 5일 동안 강산에 밴드와 함께 계속 공연이 있을 겁니다.
▶ 공연의 컨셉은 뭡니까?
저는 컨셉이라는 것이 특별히 없습니다. 그런 명분을 떠나서 관객들과의 친밀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무대 위에 저희 밴드가 완벽하게 준비가 돼서 자유로울 때 관객들과도 친밀감도 많이 느끼고 재미도 있고 그런 것 같습니다.
(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 정리=김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