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들에게도 골칫거리인 음식물 쓰레기. 27년간 주부로 살다가 음식물 처리기를 개발해서 대박을 터뜨린 분이 계십니다. 주식회사 루펜리의 이희자 사장.
그녀는 IMF 때 남편 사업이 어려워지자 빚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에 경영의 ‘경’자도 모르고 사업에 뛰어든 통큰 맏며느린데요. 거듭된 실패와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시장점유율 90%를 차지하는 1등 제품을 만들어냈습니다.
‘에디슨이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일단 시작하라’고 말하는 루펜리 이희자 사장을 11월 28일 CBS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FM 98.1Mhz, 연출 김우호 PD)에서 만나봤습니다.
◇ IMF 때 남편의 사업 실패...주변의 도움으로 다시 사업 시작
▶ 요즘 돈 버는 재미가 아주 대단하시다고요?
글쎄요. 아직도 돈을 ‘번다’는 것이 굉장히 낯설고 어색합니다. 아무튼 일을 열심히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 최근에 아랍에미리트에 520만 달러어치의 가정용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 공급계약을 맺으셨다고요?
우선 초도 물량 2만대를 수주 받았습니다.
▶ 저희가 사장님 뵐려고 전화하니까 매니저분이 받으시던데요. 모든 직원분들이 매니저입니까?
네. 모든 직원이 매니저입니다. 저희 회사는 과장이라든지 대리라든지 그런 직함이 없고 신입사원이건 경력사원이건 다 매니저입니다. 그래서 모든 직원들에게 책임을 부여하고 일을 열심히 해서 성과를 내면 자기의 성공 보수를 충분히 주어서 다같이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객가치 창조그룹’은 저희가 연구실이나 생산쪽을 말하고요. ‘전달그룹’은 영업부서이고요. ‘지원그룹’이 회계나 자금쪽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국내에서 저희가 처음인 것 같습니다.
▶ 현재 직원은 몇 분이세요?
저희 본사는 41명입니다.
▶ 처음에 몇 명으로 시작하셨어요?
처음에는 4명으로 시작했습니다. 4년 사이에 열 배로 늘었습니다. 저희가 생산을 직접 안하고 전부 아웃소싱으로 하기 때문에, 아웃소싱하는 회사는 천여명이 넘을 겁니다. 어떤 한 아이템이 개발되니까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일할 수 있더라고요.
▶ 27년간 주부로 살다가 40대 후반에 사업을 시작하셨다고 하던데요. 사업에 뛰어들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사정이 있으셨다고요?
네. 저희 남편이 군납업을 하는데요. 해군에 납품을 하기로 되어 있었어요. IMF 때 달러가 해외로 나가는 것이 금지 되어 있었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수입품이었거든요. 큰 액수가 계약이 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전면 보류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동안 투자했던 자금이 어려워지고 그로 인해 보증을 섰던 저희 다섯 동생들의 집이 전부 경매로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정말 드라마에서 보던 일들이 현실로 다가오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비닐하우스로 가게되는 상황까지 생겼습니다.
▶ 딸아이의 급식비도 낼 수 없는 상황까지 가셨다고요?
네. 그 전까지는 남편 사업이 잘 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지게 되니까요. 그 때 딸 아이 급식비가 3만원이었는데요. 근데 그것을 낼 돈도 없더라고요. 그런데 아이가 학교에 가면 급식비 안 낸 아이들 이름을 부르니까 아이가 급식비에 완전히 노이로제가 된 적도 있었어요.
제가 얼마 전에 아이가 다니는 봉은초등학교에 가서 “급식비 못 내는 아이가 얼마나 되느냐? 내가 내주겠다. 제발 아이들 많은데서 이름은 부르지마라.” 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 그렇게 어려울 때 심정은 어떠셨어요?
그 때 물론 저는 저의 남편이 사업하다가 실패했으니까 그런 것을 겪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무 죄도 없이 보증을 섰던 동생들, 친척, 친구들은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이 사람들을 살려야겠다, 빨리 여기서 구해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식당에 나가 일해서는 어느 세월에 그 돈을 갚겠습니까? 그래서 사업을 해야겠다, 사업을 해서 큰 돈을 벌어야 이 사람들을 구하고 빚을 갚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죠. 그리고 남편이 도대체 무슨 사업을 하는지 회사에 나가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남편이 경상도 남자여서 회사 근처에도 못 오게 하고, 여자가 무슨 사업을 하느냐 했는데요. 그 때부터는 제가 회사에 나가서 남편일을 도우면서 일을 하기 시작했죠.
▶ 그 때 정말 말 그대로 쫄딱 망하신 것 아니에요? 사업을 다시하려면 사업자금 문제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용기를 어떻게 내셨을까요? 통이 크신 건가요?
통이 크기도 하고 간이 컸는지도 모르지만 너무나 절박한 상황, 나는 꼭 해야 하니까 그로 인해서, 또 돈으로 인해서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들도 많았겠습니까? 많은 수모를 겪었거든요. 그래서 여기서 벗어나서 내 자존심을 되찾고 싶었습니다.
나는 반드시 이것을 해서 성공해야 한다라고 했기 때문에 0.0001초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정말 진심으로 내가 잘 하겠다고 얘기해서 주변의 아는 분들에게 자금을 빌렸습니다. 그 분들이 저를 믿고 그 돈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죠.
▶ 그 때 돈을 빌려주신 분들이 참 고마우신 분들이네요.
네. 믿음이라는 것이, 사람을 신뢰한다는 것이 정말 힘을 주더라고요.
▶ 힘들 때 어떤 말이나 글귀가 힘이 되던가요?
제 인생에서 어느 글귀가 통해 저를 바꿔놓은 두 여자가 있었습니다. 한 분은 조안 리의 <스물셋의 사랑 마흔아홉의 성공>이라는 책을 20년 전에 봤는데요. 그 때 보면서 ‘이 여자는 정말 사랑도 성공했고, 일도 성공해서 너무나 부럽다. 나도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 이 여자처럼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생각을 해보니까 다시 태어난다는 보장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해야 하는 희망을 주었고요.
또 한 분은 이주향 교수가 쓴 <운명을 디자인하는 여자>라는 책을 봤는데요. 그 책 제목이 정말 저를 일어나게 만들었습니다. ‘맞다. 인생은 자기 자신이 디자인하는 것이다. 누구에 의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운명은 내가 디자인하는 것이다’라고 수없이 되뇌면서 어려울 때마다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남편 몰래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까지 받으셨다고요?
그것은 그 이후였고요. 그 전에는 아파트도 없었죠. 여기 저기 아는 분들에게 빌렸죠. 정말 간절하게 이야기했더니 그 분들이 빌려주었습니다. 지금 미국에 계신 분들인데요. 그 때 자본금 5억을 만들어서 회사를 차렸습니다.
◇ 주부로서 느낀 경험이 사업의 아이디어로 큰 도움
남편이 워낙 환경쪽의 사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아이템들이 있었고요. 그 중에 ‘음식물처리기’라는 것은 사실 제가 주부이기 때문에 가장 와 닿았어요. 세상에는 음식을 만드는 제품은 많은데, 먹고 나서 처리하는 제품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것이 있으면 정말 잘 팔리겠다고 막연히 생각을 한 거죠.
저희가 보면 주부이기 때문에 음식을 먹고 나서 버리면 너무 아깝고 죄의식도 느끼잖아요.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처리하는 기계가 있으면 편리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 요즘은 아파트도 초고층화, 고급화 되어 있는데도 음식물쓰레기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버려야 하는 번거로움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이런 것들을 처리하는 것이 있으면 정말 잘 팔리겠구나.’ 생각해서 시작을 한 겁니다.
▶ 이미 그것과 비슷한 제품들이 있지 않았나요?
네. 그 전에는 미생물 방식으로 하는 일본에서 쓰는 제품들이 한국에 나와서 거의 다 실패를 했었습니다. 음식 문화가 서로 다르니까요. 일본음식은 소량이고 싱거우니까 미생물방식이 맞았는데, 한국음식에는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도전을 했다가 실패했거든요. 여러 사람이 도전을 했다는 것은 거기에 시장성이 있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더 자신이 생겼고, 그렇다면 음식물 쓰레기를 말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우리가 여름이면 무말랭이도 해서 먹고, 고사리나 시래기도 말리잖아요? 그렇게 말리게 되면 썩지도 않고 오래 보관할 수 있잖아요. 그런 원리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말리면 괜찮겠다고 생각을 해서 건조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 그럼 첫 제품이 얼마만에 나왔나요?
거의 2년 정도 걸렸습니다. 수없이 만들었다가 실패하는 과정을 통해서 제품이 완성된 것은 한 2년 정도 걸렸습니다.
▶ 에디슨은 그런 ‘실패’를 성공을 위한 ‘실험’이라고 했다는데, 이 사장님은 어떠셨나요?
맞습니다. 저도 수없이 시행착오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열풍을 넣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여름에 고추를 말릴 때 보면 선풍기를 틀어놓으면 잘 마르잖아요. 그래서 그 원리로 공기를 순환해주면 잘 마르겠다고 생각을 해서 바람만 불어주는 방식으로 했더니 이틀도 걸리고 잘 안 마르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날 헤어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다가 ‘열풍을 하면 잘 마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서 따뜻한 바람을 넣었더니 아주 잘 마르더라고요.
사실 음식은 우리가 먹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지만 쓰레기를 처리하는 기계는 빨리 말려야 할 이유는 없거든요. 그래서 제가 먼저 정해놨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라는 것은 모든 음식을 다 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냄새 때문에 골치가 아프니까 냄새가 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추가 비용이 없어야 한다, 또 디자인이 예뻐야한다라고 생각했죠. 음식물쓰레기라는 불결함이 있으니까 디자인이 더 예뻐야 한다 하는 그런 원칙을 정해놓고 거기에 맞춰서 만들었습니다.
저는 기계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기계적인 것보다는 소비자 입장에서 만든 것이죠. 내가 쓰기 편한 것을 만들다 보니까 다른 분들도 공감하시더라고요.
▶ 그래서 나온 1호 작품은 성공적이었습니까?
네. 처음에 나온 제품은 제 아들이 디자인을 했습니다. 그래서 디자인은 조금 뒤떨어지더라도 그 기능은 성공했습니다.
▶ 첫 판매는 어디에서 이루어졌나요?
처음에 이것을 들고 다니면서 하나씩 옆집에 팔 수는 없어서 제가 생각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 한참 공익 광고가 나오더라고요. 우리나라에서 음식물쓰레기가 연간 15조원이라는 광고였는데, 너무 아깝더라고요. 그래서 단순하게 생각을 한 거죠. ‘이걸 전 국민이 쓰면 15조원을 우리가 버는 것이구나. 이것을 말리면 재활용할 수도 있고.’라고 생각했죠.
썩기 전에 부패하기 전에 말리니까 재활용의 가치가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기계를 들고 구청에 찾아갔습니다. 찾아가서 “이것을 구청에서 구입을 해서 주민들에게 나눠주면 어떨까요?”하고 얘기를 했어요. 사실 잘 몰라서 했던 말이 안 되는 이야기죠. 그런 행정적인 문제를 잘 몰랐던 거죠.
그래서 다시 건설사로 찾아갔습니다. 아파트를 지을 때 빌트인으로 아예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아파트가 될 것 아니예요? 그런 생각으로 찾아가서 설득을 했습니다.
물론 제가 빽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 어느 건설사 사장님 댁을 찾아갔습니다. “먼저 설치를 해드리고 한 번 써보시고 좋으면, 건설하시는 아파트에 채택을 해주십시오.” 라고 해서, 우리나라 1군 아파트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 어떻게 보면 너무 쉽게 일이 풀린 것 같은데요.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 제일 힘든 것은 어떤 것이었나요?
사실 그 댁에 설치하기까지는 또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제품을 가지고 왔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설치하지는 않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정말 만나기 위해서 비오는 날도 대문 앞에서 제품들고 기다리고 편지도 보내드리고 하는 노력을 했고요. 그리고 그 당시에는 돈이 없어서 광고를 할 수 없었는데, 방송에서 집을 고쳐주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거기서 이 제품을 정말 열심히 설명해주셨어요.
그런데 그 방송을 우리나라의 어느 중견기업의 회장님이 보시고 저희 회사로 직원들을 보내셔서 OEM(주문자 생산방식) 제의가 들어왔어요. 그래서 제가 제 디자인과 모든 도면까지 드렸고, 그 분이 독점으로 계약을 하자고 해서 제가 너무 고마워서 싸인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쪽에 독점을 줬으니까 저는 팔지 못하죠. 그리고 나서 그 분들은 1년이 되도 약속한 제품을 안 가져 가더라고요. 그래서 또 한 번 위기를 만난 거죠. 약속한 제품을 안 가져가서 더 어려워진 거죠.
▶ 그럼 기술만 가져갔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죠. 그리고 금형도 본인들의 돈으로 한 것이니까 그냥 가져가서 어느 날 해약 통보를 하고 직접 만들어서 팔더라고요. 그래서 두 번째 위기를 만났습니다.
▶ 계약할 때 계약금이나 이런 것은 없었나요?
계약서에는 연간 몇 대의 제품을 가져가겠다, 제품을 생산하지 않겠다는 것이 약속되어 있었지만, 저희가 너무 힘이 없으니까 아마 소송할 능력도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나봐요. 그래서 사실 저도 소송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위기는 항상 기회와 함께 오잖아요. 그 순간에 더 좋은 조건으로 다른 회사가 저에게 제안을 해서 그 제품을 현금으로 사갔습니다. 그래서 다시 또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한 30억 정도 구입해주어서 제가 다시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조건을 제시해서 1만대를 가져가시면 총판권을 드리겠다고 해서 그 회사에서 바로 현금으로 사갔습니다.
▶ 그 때 30억을 받으시니까 어떠시던가요? 저는 3억만 받아도 떨릴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제가 통이 크긴 큰 모양이네요. 남들 같으면 그 돈으로 빚을 갚을 텐데, 저는 그 돈으로 또 제품 개발을 했습니다. 그래서 음식물 처리기를 가정용만 할 것이 아니라 식당용도 있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다시 식당용을 개발했습니다. 지금은 가정용부터 식당용까지 전부 다 만들고 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없애려면 가정용 뿐만 아니라 식당용도 있어야 해결이 되니까 세상을 크게 보자고 생각했죠. 그래서 제가 이름을 지어서 전 세계에 상표등록을 하면서 정말 뭔가 큰 명품 제품을 만들어 보자는 차원에서 전문회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 돈으로 제품개발에 재투자 하였습니다.
▶ 남편분이 재투자에 대해서 반대하지는 않으셨나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혼장에 도장 찍어라, 당장 나가라 할 정도로 반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업을 선택하겠다고 하니까 남편이 안되겠나봐요. 왜냐하면 저는 그동안 열심히 살았다, 26년간 제가 아이들 셋 키우고 남편 열심히 뒷바라지 했었으니까 이제는 내 인생을 살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남편이 져줬습니다.(웃음)
▶ 지금은 매출규모가 어떻게 됩니까?
저는 사실 매출을 수시로 물어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천 억 이상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수주 받은 것은 훨씬 많은 것 같아요. 왜냐하면 건설사는 직접 납품하는 것이 아니라 2-3년 뒤에 아파트를 다 지었을 때 들어가니까 이제 입주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년 되면 매출이 더 늘어날 것 같고요.
어느 기자가 저에게 물어보길래 2009년도 제 목표가 1조원이라고 했더니 그 기사가 나갔어요. 그래서 저를 아는 분들이 막 웃더라고요. ‘너무한 것 아니냐, 그냥 2천억 정도만 하지’ 라고 하시는데, 내년에는 저희 제품을 전 세계에 알릴 것이고요. 제가 오늘도 일본 출장을 갑니다.
일본의 유명한 ‘QVC 홈쇼핑’에서 저희 제품을 방송하거든요. 일본 시장이 또 굉장히 큽니다. 그리고 일본은 법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재활용하라고 정해져 있습니다. 또 전 가정에 50%를 지원해 줍니다. 그런데 제대로 된 제품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희 제품을 가지고 일본에 가고, 중동을 가고 해서 분명히 1조원을 할 겁니다. 다들 웃는데 뭔가를 보여줘야죠.
▶ 현금 30억원 들어왔던 해가 몇 년 전이었습니까?
3년 전이었습니다.
▶ 그것이 1천억원으로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요?
글쎄요. 이것은 ‘하면 된다’는 자기 에너지, 열정인 것 같아요. 저는 정말 제 모든 것을 올인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최선을 다했는데 실패했다’는 말을 하시는데, 그건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을 속이는 거죠. 정말 최선을 다하면 다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정말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 붓고 열정을 다하고 직원들과 힘을 합쳐서 하니까 정말 이룰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도 엄마의 모습이 바뀌었죠. 예전에는 집에서 빨래하고 밥하던 엄마가 이렇게 변하는 것을 보면서 ‘엄마도 이렇게 하는데, 너희는 더 잘할 수 있다.’라고 했더니 정말 공감하고, 우리 딸이 ‘나도 엄마 같은 여자가 되고 싶다’ 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더라고요. 저는 정말 그 말이 지금까지 어떤 말보다 고마웠습니다.
◇ 음식물 쓰레기를 이용한 연료도 개발
▶ 오늘 방송을 통해서 이희자 사장님을 롤 모델로 삼으시는 분들도 많으시겠는데요.
주부들에게 힘과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 뿐이거든요. 그리고 실패를 너무 두려워하고 ‘하다가 안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거든요. 그러나 실패를 하더라도 해보는 것이 더 남는 것이 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말고 누구나 시작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 한편으로는 ‘대단하네. 무서운 여자네.’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어요.
그렇죠. 대한민국 아줌마의 힘을 전 세계에 보여줄 날이 곧 올 텐데요. 제가 중동에 갔을 때도 두바이 사막에 가서 보니까, 사실 저는 이 나이가 되도록 사막을 처음 갔거든요. 그런데 너무 아름답고 힘이 솟는 것 같더라고요. 거기는 쓰레기를 어떻게 버리냐고 하니까 사막에 매립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당신들은 이 사막이 자원인데,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면 되겠느냐?”라고 했죠.
또 나무들은 물만 주어서 푸석푸석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음식물쓰레기를 말려서 그 가루를 나무에 뿌려라, 그러면 영양분 때문에 나무도 잘 자라고 일석이조라고 했더니 그분들이 정말 공감하더라고요. 그리고 이슬람교에서는 불교나 기독교도 마찬가지지만 음식을 버리면 굉장히 죄악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분들은 음식쓰레기를 밟아도 안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음식을 버릴 때마다 죄의식을 느끼는데, 음식쓰레기를 말려서 비료로 쓰라고 말해줬더니 정말 감동을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최고의 찬사 ‘신이 보낸 여자’라는 말까지 해주었습니다.(웃음)
▶ 아랍에미리트에 가셔서 계약하신 것은 언제였습니까?
작년에 두바이를 다녀왔고, 계약은 한 달 전에 했습니다.
▶ 수주액은 얼마나 되나요?
이번에 2만대가 첫 물건이고요. 제가 아랍에 간 것은 환경부에 계신 분들을 만나기 위해서였어요. 사실 카타르 같은 경우 국민소득이 6만불도 넘는 돈도 많은 나라인데, 하나씩 사서 나눠주면 음식물 쓰레기가 다 해결되거든요. 그것을 열심히 설명했더니 그 분들이 공감하더라고요. 사실 우리나라도 전 국민에게 다 나눠줘도 1조원도 안 되는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매년 15조원을 버는 거잖아요.
▶ 루펜리의 제품은 음식물 쓰레기를 재활용한다는 점이 장점인거죠?
그렇죠. 그냥 버린다면 너무 아깝죠. 그래서 자연 그대로 말려서 연료로 쓰는 것을 개발했습니다. 이미 개발이 끝났는데, 이것을 탄으로 만들었거든요. 가루를 이용해서 탄을 만드니까 그야말로 친환경적인거죠. 옛날에 우리가 쓰던 조개탄처럼 굉장히 불에 잘 타면서 오랫동안 탑니다.
요즘에 비닐하우스 등에서는 기름값도 비싸고 특히 등유는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잖아요. 그런데 이 음식물 쓰레기로 만든 탄은 이산화탄소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탄으로 해서 완전 자원화까지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 음식물 쓰레기를 동물 사료로 쓴다는 것은 뭔가요?
음식물 쓰레기를 부패하기 전에 말렸으니까 영양분이 그대로 있거든요. 그래서 이것이 사료로도 아주 효과가 좋은데, 저는 사료로 개발하지 않고 연료로 개발했습니다. 왜냐하면 혹시라도 동물이 먹고 문제가 될 소지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것은 사료나 연료로서 사용하는데 다 충분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부패한 음식을 가지고 가서 사료를 만드니까 사료로서 가치가 없었지만, 지금은 바로 주방에서 쓰레기가 나오자마자 말린 거니까요. 우리가 먹는 시래기에도 영양분이 그대로 있잖아요. 그것과 똑같죠.
▶ ‘루펜하라’ 하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루펜하라’는 어떤 일을 가치있게 처리하라 라는 뜻이고, ‘루펜하는 사람들’은 각 분야에서 어떤 일을 소신있게 가치있게 처리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성우 배한성, 루펜하는 사람’, ‘배우 안성기, 루펜하는 배우’ 이렇게 어디에 붙여도 다 말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일을 가치있게 하는 사람들이 ‘루펜하는 사람들’입니다.
▶ 어린 시절은 어떠셨나요? 고향이 강원도세요?
네. 강원도 두메산골이 고향입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 개울, 산, 들을 보면서 자란 것이 지금 제품을 만드는데 정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강원도 횡성에서 여섯 살 때까지 살았는데 아주 산골이죠. 거기서 자라서 원주여고를 졸업했고요. 또 제가 재벌이 되겠다고 결심한 것이 저의 아버지가 사업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신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학을 가지 못하고 은행에 취직을 했었어요. 은행에 5-6년 근무했는데요. 30년 전에는 은행원이 신랑감으로 최고일 때였는데도 저는 부모님한테 절대 은행원한테 시집가지 않겠다, 나는 재벌이 되어야 하니까 사업하는 남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했죠.(웃음) 그래서 사업하는 남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 주변에서 어릴 때 성격은 어땠다고 해요?
어릴 때는 아주 조용하고 책을 굉장히 많이 읽었습니다. 여름방학이면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다 읽었던 것 같아요. 책 좋아하고 조용하고 말이 없었는데, 저희 친정 어머님이 굉장히 교육열도 강하시고 여장부셨어요. 그래서 담임선생님을 만나서 저를 부탁하시더라고요.
수업시간에 발표를 많이 시켜달라고 하셔서, 선생님이 수업시간 중에 항상 저를 시키셔서 제가 예습, 복습을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조용하면서도 제가 계속 반장을 했습니다. 전교 부회장도 했고요. 그 때 리더쉽이 길러진 것 같습니다. 학창시절에 그런 일을 해보는 것이 굉장히 좋은 것 같아요.
▶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한 6-7년 되었는데요. 제가 사업을 하기 전에 돌아가셨어요.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민망스럽습니다만, 이렇게 지금 잘하고 있다고 보여드리고 싶은 단 한 분이세요. 그런데 그 한 분이 제 곁에 안 계신데요. 어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제가 가슴이 무너집니다.
저의 사업자금을 도와주시느라고 동생 남편한테 가서도 눈물을 흘리면서 한번만 더 도와주라고 부탁하시고, 기도해주시고요. 정말 어머니라기보다 친구같은 분이셨는데, 어느 날 갑자기 간암으로 돌아가셔서 눈물도 안나더라고요. 사람이 너무 슬플 때는 눈물도 안 나더라고요.
나 때문에 그렇게 되셨구나 하는 죄책감 때문에 더 힘들었는데요. 그래서 제품 카달로그라도 새로 나오면 저의 어머니 산소가 있는 강원도에 가서 보고를 하죠. 어디선가는 보고 계실 테니까요.
◇ 주부들만의 노하우로 도전한다면 아이템은 무궁무진하죠.
▶ 대기업의 횡포가 심해서 중소기업이 살아남기가 힘들지 않나요?
네. 그래서 아까 말씀드린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설마 했거든요. 그래서 초창기 때도 그 쪽 사장님한테 말씀을 드렸어요. “혹시 이렇게 하시다가 나중에 더 좋은 제품 개발했다고 저희를 빼버리는 것 아닙니까?” 라고 했더니, “그 날은 우리 회사 문 닫는 날입니다.”라고 분명히 이야기 하셨어요. 그런데 오너는 적어도 자기가 한 말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수없는 계약서를 쓰잖아요. 저는 서류보다 말한 것에 대해서 책임을 지려고 노력합니다. 그 서류는 소용이 없더라고요. 내가 한 말에 책임을 져야 진정한 오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뱉은 말에 책임을 지려고 지금도 굉장히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 분은 그렇게 쉽게 배신을 하고 해약통보를 해버렸어요. 그리고는 직접 개발했다고 이야기하면서 광고하며 판매를 한다는 것이 가끔은 정말 섭섭하지만, 한편으로는 제품을 알리는 데는 노력을 해주었으니까 고맙다고 생각을 합니다.
▶ 요즘 주부들도 창업에 관심이 많은 시대 아닙니까?
제가 사업을 시작한 것이 마흔아홉 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지금은 수명이 길어져서 보통 90세까지 삽니다. 그렇게 보면 이제 중반인데 너무 빨리 인생을 포기하는 것 같아요. 저는 지금이 제 인생의 제2막이라고 생각하고 일하기에 가장 좋은 나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들 다 키우고 남편도 어느 정도 지위에 올라 있으니까요. 어떤 분들은 주부들이 집에서 놀고 먹었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아니거든요. 사실은 경제활동을 제일 많이 한 사람들입니다. 어떤 노하우를 제일 많이 갖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제일 많이 물건 사봤고, 시장에 가서 제일 많이 물건을 접해봤죠. 그렇기 때문에 아이템만 잘 고른다면 더 야무지고 냉철하게 일을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아이템은 얼마든지 우리 주변 속에 있습니다.
▶ 이 사장님도 생활 속에서 아이디어를 찾으시는 것 같은데요.
정말 발명이라는 것이 에디슨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변에 얼마든지 새로운 작은 아이디어가 사업으로 이어지고 성공할 수도 있거든요. 꼭 사업이 아니더라도 자기 일을 갖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물론 다 집에서 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집에서 아이들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 하면서 뭔가 항상 2%가 부족했던 것 같아요.
저는 지금이 제 인생에서 제일 행복합니다. 성취욕이라는 것, 자기가 뭔가 어떤 일을 해서 성취한다는 것은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 누구라도 정말 어떤 일을 통해서 성취욕을 느껴 보셨으면 합니다. 잘 안될 때 그것을 풀어가는 것도 재미더라고요.
▶ ‘이런 사업을 한 번 해보지 그러느냐’ 하는 사업의 아이디어를 주신다면요.
많이 있죠. 예를 들면, 우리가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하다보면 서로 화나게 되는 일들도 많잖아요. 그럴 때 얼굴 표정에 금방 나타나잖아요. 그럴 때 쓰는 가면이 있다면 어떨까 해서 제가 만들고 있습니다.(웃음) 그런데 그 가면이 그냥 가면이 아니라 기능성이 있다면 더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를 들면 산소가 발생되게 해서 기분을 좋게 한다든지, 싸우더라도 가면을 쓰고 하면 재미있을 것 같고요.(웃음) 그래서 제가 직원들에게 해보라고 했더니 직원들은 안 될 것 같다고 하는데 저는 해볼 생각입니다.
▶ 그런 무궁무진한 창의력이나 통찰력이 있으신 것 같아요. 네. 직관력이라고도 하는데요. 순간순간 결정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런 것이 좀 발달한 것 같아요.
▶ 좀 엉뚱한 면도 있으신 것 같고요.
제가 공상을 많이 했었습니다. 어릴 때 만화책도 많이 보고, 동화책도 많이 봤죠. 그래서 엉뚱한 생각을 잘 해요.
▶ 직원들은 어떻게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으시던가요?
저도 괴짜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아침에 출근을 하면 10분간 춤을 춥니다.예전에는 ‘꼭지점 댄스’를 추었고, 지금은 ‘텔미’로 바꿨습니다.(웃음) 다 같이 몸을 풀어주고, 웃으면서 국민체조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 때 앞에 나와서 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저는 뒤에 숨어 있는 친구들보다 그런 친구들한테 점수를 더 많이 줍니다. 그렇게 뭔가 튀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줄 수 있는 창의력 있는 괴짜를 좋아합니다.
▶ 오늘 말씀을 통해 창업을 준비하시는 많은 주부 여러분들께 힘이 되었을 것 같아요.
너무 계획만 세워도 못하니까, 먼저 시작부터 하십시오. 시작이 반입니다. 아무리 계획만 세우다 보면 영원히 못할지도 모릅니다. 일이라는 것, 사업이라는 것은 먼저 시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표준 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 정리=김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