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호떡 만드는 지금, 12억 만질 때보다 더 행복해"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12억 짜리 왕호떡 파는 김민영 사장

호떡 좋아하는 분들 많으시죠? 날씨가 쌀쌀해지니까 더욱 입맛을 당기는 게 호떡인데요. 서울 남영동에 가면 맛도 기가 막히고 크기도 보통 호떡과는 다른 왕호떡 가게를 만날 수 있습니다.

중절모를 쓰고 나비 넥타이를 맨 호떡사장 김민영 씨. 호떡 맛은 물론 손님들에게 마술을 보여주는 서비스 정신과 호떡에 보험을 드는 독특한 경영철학으로 1평짜리 가게에서 시작한 '김민영 왕호떡'은 전국적으로 가맹점이 130개가 넘게 성장했습니다.

김민영 사장이 지금의 위치에 있기까지 그 인생의 굴곡도 많았는데요.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그는 주식에 손을 댔다가 12억 원을 날려서 빈털터리가 됐고, 호떡장사로 처음부터 다시 인생을 살았습니다.

‘왕호떡을 팔고 있는 지금, 12억을 만질 때보다 더 큰 행복을 느낀다’는 김민영 사장을 11월 21일 CBS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FM 98.1Mhz, 연출 김우호 PD)에서 만나봤습니다.

◇ 6년 넘게 쉬는 날 없이 매일 호떡 구워

▶ 직접 가져오신 호떡이 참 맛있는데요. 호떡 안에 어떤 재료들이 들어 있나요?

많은 곡류들이 들어있는데요. 해바라기씨나 호박씨, 땅콩 등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는 사랑과 행복과 희망이 들어있다는 겁니다.

▶ 날씨가 쌀쌀해지면 장사가 더 잘 되는 거죠?

아무래도 호떡은 많은 사람들이 겨울식품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요. 물론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저는 계절에 상관없이 365일, 명절날도 오후에는 거의 문을 열고 있습니다. 그것이 꼭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고 팬들을 관리하기 위한 차원입니다. 요즘에는 거꾸로 명절에 어르신들이 상경하시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분들이 전화를 하세요. TV에서 많이 봤는데 명절에 그 호떡 좀 먹으면 안 되겠냐고 하셔서, 저희도 문을 열게 되는 거죠. 그래서 고향에는 저만 내려가고 오후에 집사람이 남아서 문을 열죠. 그래서 이변이 없는 한은 거의 365일 열어서 고객을 먼저 생각하는 거죠. 아무리 좋은 호떡도 찾아주는 고객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라는 겁니다.

▶ 이렇게 방송국에 오시는 날에는 누가 가게를 보시나요?

지금 집사람이 보고 있습니다. 저희는 직원이 두 명인데, 한 사람은 회장이고, 한 사람은 사장입니다. 제가 회장이고, 집사람이 사장인데, 지금 사장이 가게를 보고 있습니다.(웃음)

▶ 그러고 보니까 주신 명함에 “회장 김민영”이라고 되어 있군요.

호떡장사가 회장이라고 하면 좀 우습겠지만 저희 가맹점 점주님들께서 명함에 ‘사장’,‘대표’ 라고 하시니까 저는 똑같이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저희 점주님들과 1년에 한 번씩 세미나 교육을 하는데 제가 공표를 한 겁니다. 제 명함에 ‘회장’이라고 넣을 테니까 점주님들은 ‘회장’이라는 말을 넣지 말라고 웃으며 이야기 했습니다.

▶ 남영동에서 하고 계신다던데요. 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제가 정확하게 2001년 7월 25일 아주 한더위에 시작했습니다. 이제 6년 4개월째 접어들었습니다.

▶ 주식으로 12억을 날리고 난 뒤, 개업 첫 날의 그 심정은 어떠셨어요?

사실 노점이라는 곳 한 군데를 구입해서 집사람과 제가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문을 열자고 했죠. 그랬더니 집사람이 “당신이 주식해서 돈 다 까먹었으니 당신이 가서 문 열고 당신이 시작을 해야지.” 하는 에피소드도 있었는데요. 물론 처음에는 창피했죠. 길거리의 박스샵에서 호떡을 굽는다는 것이 보통 용기로는 힘들죠.

그러나 저는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돈으로 그것을 비교해 본다고 하면 지나간 과거는 부도난 수표일 뿐이라는 거죠. 그래서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살면 되는 것이지 그까짓 지나간 12억은 인생 살아가면서 수업료로 냈다는 거죠. 그렇게 욕심 버리고 마음 버리니까 되더라는 거죠.

▶ 중절모에 나비넥타이 차림으로도 유명하신데요. 처음부터 그렇게 하신건가요?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정장을 했습니다. 그 때는 여름이라 상의는 벗고 롱타이를 했는데, 후라이팬에 롱타이 끝자락이 자꾸 다는 겁니다. 그래도 그 때는 반죽을 받아서 하던 때라 별 신경을 안 썼는데, 일주일 정도 받아쓰다가 맛이 별로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연구를 해야겠구나 해서 제가 연구하면서 제 것을 가지고 나가면서부터는 뭔가 스타일을 바꿔보자 해서 나비넥타이를 매게 되었죠.

처음에 남대문 시장에 가서 나비넥타이 3개를 사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120개가 됩니다. 색상이나 디자인이 다 다릅니다. 그래서 고객을 위한 서비스를 해서 음식을 입으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고 눈으로 먼저 먹는다는 거죠. 그래서 저희 호떡은 ‘오감’을 주는 호떡이라는 겁니다.

◇ 주식으로 12억 날리고, 직장까지 잃고... 무작정 서울로

▶ 주식으로 12억을 날리셨다고 하던데요. 한 번에 다 날리신 건가요?

처음에는 제가 비상장된 1만원짜리 장외주식을 4천주를 샀었는데요. 그것이 상장이 되면서 한 31만원까지 가다 보니까 12억이 되버린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 욕심이 그 돈으로 건물을 사려고 합정동에 8층짜리를 보고 갔어요. 그 당시 시가로 16억을 달라고 해서 4억을 더 벌어서 그 빌딩을 사야 되겠다는 욕심을 가지고 더 늘리려고 하다 보니까 그때부터는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2000년도 주식시장이 찌그러지면서 ‘H 주식’ 사건이 그 때 가장 큰 사건이었을 겁니다. 그 주식을 어떻게 사게 되어서 한방에 가버린 거죠.

▶ 그러면 빚이 많으셨을 텐데, 생계 이어가기도 힘드셨겠어요?

바로 서울에 올라올 때 자동차, 아이들 피아노까지 전부 정리했고, 회사도 제가 퇴직을 당한 것이 아니고 제가 빚을 갚기 위해서 희망 퇴직을 했습니다. 그래서 시골에서 다 정리하고 그 해 5월 29일날 서울로 상경하는데 어느 누구 하나도 저 이사 가는데 쳐다보지 않더라고요.

세상에 참 돈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구나, 친구도 형제까지도 소홀히 하는 것을 보고 참 눈물을 머금고 올라오면서 정말 내가 이번을 계기로 뭔가 다시 한 번 해보자, 아직 마흔 다섯 살인데 뭘 못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가족들 전부 울면서 올라왔죠.

하루 딱 짐정리하고 바로 다음 날부터 퀵서비스 일을 시작했어요. 집사람은 식당일, 파출부 일을 했고요. 그래서 거기서 약간 모아서 가로매점을 시작했던 겁니다.

▶ 오히려 환경이 나빠지시면서 서울로 올라오신 건가요? 그럼 그 전에 어떤 회사를 다니신 건가요?

네. ‘한국통신 공중전화’에 다녔습니다. 지금은 ‘KT 링크스’ 라고 하죠. ‘KT'의 자회사입니다.

▶ 여러 장사 아이템 중에 호떡을 고르신 이유는 어떤 건가요?

호떡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평생 찾을 수 있는 기호식품이고, 점포가 없이도 쉽게 할 수 있는 소자본 무점포가 가능했기 때문에 제가 선택하게 된 겁니다.

▶ 사람들이 옷차림이나 마술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아마추어는 오는 고객을 맞이하지만 프로는 고객이 오게 만든다는 거죠. 그래서 남과는 달라야 한다, 남과 똑같으면 죽는다는 거죠. 길거리 호떡 장사라고 해서 우습게보면 안 됩니다. 20세기는 큰 것이 작은 것을 지배했다고 한다면, 21세기는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지배하는 세상이 아닌가 보거든요.

그래서 뭔가 남과 차별화가 되어야 하는데 이제는 차별도 한차원 업그레이드해서 독점화가 되어야 한다는 거죠. 그냥 호떡 하나 500원에 팔아서 남는 수익을 가지고 먹고 사는 생계 유지형이 아니라 즐기는 유형으로 가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고객님들에게 호떡 구워지는 시간, 드시는 시간만큼은 눈도 즐거워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제가 마술, 레크리에이션, 웃음치료사, 노래를 공부해서 보여 드리고, 만담도 해드리니까 고객님들이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희 호떡 사업이야말로 네트워크 사업입니다. 한 사람이 드시고 가서 두 사람을 모시고 오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광고의 효과도 언론 매체가 아니라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이른바 충성고객님들이 많이 생겨난다는 겁니다. 아마 지금 보면 70% 정도는 고정고객인 단골 중심으로 해서 저희 가게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 마흔 다섯이라는 나이면 좌절할 법도 한데, 다시 재기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솟아났던 건가요?

제일 큰 힘은 저의 가족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죠. 처음에 호떡했을 때 잘 팔렸겠습니까? 하루에 열 개도 못 팔아서 가져갔을 때도 있었고, 집사람과 아이들이 호떡 하지 말고 다른 일을 하라고도 했지만, 저는 목표를 가졌습니다. 앞으로 5년 안에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호떡을 만들어 보겠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도전한 거죠.

저희가 보통 오전 11시에 문을 열어서 밤 11시에 닫는데요. 밤 11시에 들어와서 자는 것이 아니고 식사를 한 뒤에 다시 호떡을 만들었던 겁니다. 한 1년 반 동안 연구해서 만든 것이 지금의 작품인데요. 지금도 6년 4개월째 호떡을 하고 있지만, 지금도 호떡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 맛을 어떻게 하면 더 좋아질 수 있을까 계속 노력을 하는 거죠.

▶ 벤치마킹의 대상이 될 정도로 경영철학이 독특하신 것으로 유명하던데요.

호떡 한 개만 드셔도 카드로 결제해 드립니다. 그런데 500원은 결제가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500원짜리 하나를 드시고 카드를 주시면, 제가 1천원을 긁고 제가 500원을 내드리는 거죠. 그랬더니 어떤 손님은 카드깡 한다고 민원을 넣었던 적도 있는데요. 결국은 오늘 내일 하고 장사를 그만 둘 것이라면 이렇게 못할 겁니다.

저는 오로지 고객의 입장에서 고객의 편의를 위해서 한다는 거죠. 저는 어떤 이윤이나 영리를 위해 장사하는 사람이 아니고 사람을 남기는 장사를 하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보고 뭔가 다르구나 하고 느낄 수 있게 하는 거죠. 저희는 길거리에서 음식을 파는데도 불구하고 음식물 배상보험, 화재보험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보험을 보험회사에서 쉽게 들어주지 않거든요. 제가 발품을 팔고 계속 찾아다니면서 따낸 겁니다. 또, 길거리 장사하면서 세금 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사업자 등록을 내서 세금도 내고 있습니다.

▶ ‘500원짜리 호떡 팔아서 뭐가 남는다고 그런 것들을 다 하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원가는 어느 정도나 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한 50% 정도 보시면 됩니다.

▶ 그러면 카드 결제도 받고 하면 재미가 없으실 것 같은데요.

그래도 저는 즐거워서 하는 것이니까요. 쉬운 얘기로 제가 6년 넘게 호떡을 굽고 있지만 한 번도 제가 거기를 일하러 나간다는 생각을 안 해봤습니다. 저는 항상 놀이터에 간다는 생각, 봉사하러 간다는 생각을 하죠. 그래서 호떡 가게만 가면 하루 12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는 거죠. 너무 재미있습니다.

▶ 6년 넘게 하셨으면 돈도 많이 버셨겠는데요?

많은 사람들은 저한테 돈을 많이 벌었겠다고 이야기 하는데요. 호떡 500원짜리 팔아서는 한계가 있는데 돈을 많이 벌었겠습니까? 저희 다섯 식구가 오순도순 먹고 사는 정도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수입에서 약간씩 절약을 해서 저보다도 어려운 곳에 가서 봉사도 하고요.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성공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데요. 저는 성공한 사람은 아니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저는 호떡을 파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팔고 있고, ‘서비스’를 팔고 있는 겁니다.

◇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면 고객들도 알아줍니다

▶ 강사 일도 하시고 많이 바쁘신 것 같은데요. 그러면 가게일은 사모님만 고생하시는 것 아닌가요?

그래서 집사람이 항상 불만으로 “당신은 유명해졌다고 바깥으로만 돌고, 왜 자기만 안에서 호떡을 굽냐?”고 하죠. 그래서 집사람한테 굉장히 미안하기도 하죠.

오늘 아침에도 오면서 “당신이 있기 때문에 내가 나가서 봉사도 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 용기를 줄 수 있는 거지. 내가 지금도 여기서 호떡만 굽는다면 당신 몸은 편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저렇게 12억을 잃고도 꿋꿋하게 열심히 사니까 땀의 가치를 느끼게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라고 했죠. 많은 사람들은 12억이 아니라 1억2천만 잃어도 자살을 하고 노숙자로 나가고 하는데요.

물론 저도 2001년도 회사 그만 두기 전에는 자살기도 한 적도 있습니다. 아버지 묘 앞에 가서 소나무에 노끈 매달고 큰 벽돌 두 장 올려놓고 발로 차려던 순간에, 아버지가 “야, 이놈아. 네가 거기서 죽으면 어떻게 하느냐? 빨리 내려와.” 하는 소리가 들렸을 때 머릿발이 쫙 서더라고요.

그런 뒤로 제가 생각을 바꿨죠. ‘자살’이라는 것을 말 그대로 거꾸로 돌려놓으니까 ‘살자’가 되는 거죠. 이제는 자살이라는 것은 내 머리 속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지금 계신 어머니에게 굉장히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는 재산을 십 원짜리 하나 물려받지는 않았지만 어머니께서 건강하게 대한민국 땅에서 낳아주신 것을 항상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 생각을 바꾸면 이렇게도 될 수 있구나 싶군요.

사람은 살아가면서 내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하다는 거죠. 항상 아름답고 즐거운 생각만 하니까 즐거운 일만 생기고 아름다운 일들만 생긴다는 거죠. 그런데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모든 것이 잘 안돼.’ 라고 생각하면 정말 안 된다는 겁니다.

저는 아침 6시 50분에 기상을 하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집사람에게 “여보,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얼굴이 예뻐졌소?” 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또, 호떡 반죽을 해서 싣고 나가는 출근길에 저희 집에 있는 대형 거울을 보면서 “야, 김민영! 너 대단한 놈이야!! 너는 행복한 놈이야!!”라고 외칩니다. 거울은 제가 먼저 웃지 않으면 웃어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거울 앞에서 막 자신의 칭찬을 하는 겁니다. 나 자신한테 칭찬을 하지 않으면서 누가 나에게 칭찬해주길 기다리겠습니까?

그렇게 하니까 아침부터 기분이 아주 좋은 겁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나 집사람이 “당신, 또 미친 짓 하는구만.” 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안 하면 “왜 안하고 가?” 라고 물어볼 정도입니다. 습관이 처음에는 사람이 습관을 들이지만, 결과적으로 습관 들면 습관이 사람을 지배합니다.

▶ 그런 것들이 너무 튄다, 연출하는 것 아닌가, 진정성이나 진실이 덜한 것 같다는 느낌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지는 않을까요?

이런 것이 일회성이면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겠지만, 이것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으니까요. 제가 처음에 나비넥타이 매고 한 평도 안 되는 0.75평에서 호떡을 굽고 있으니까 그 주위 사람들이 저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미친 놈 아냐?”라고 했어요.

저희 가게 앞에 횡단보도가 있어서 점심시간에는 횡단보도를 건너가기 위해 약 70-100명 정도가 줄을 서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 전부 다 이야기의 소재거리가 접니다. 그러니까 저는 창경원의 원숭이가 되는 거죠. 저는 원숭이 마케팅을 구사했던 것인데요. 당신들이 언젠가는 내 호떡을 먹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4,800만 인구는 전부 저의 잠재 고객인거죠. 더 크게 봐서 60억 글로벌 인구는 전부 저의 잠재 고객인 겁니다.

지금 일본 오이타에도 체인점이 있고, 미국 시카고에도 체인점이 있습니다. 호떡이라고 해서 글로벌로 가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회성이 아니고 그 주변에 사는 분들이 6년 넘게 보다 보니까 역시 당신은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인식이 바뀌어 가는 거죠. 그래서 제가 진솔된 것만 보여준다면 언젠가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된다는 겁니다.

▶ ‘그래도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 하는 분들에게는 뭐라고 하세요?

아무나 호떡 장수를 할 수 있지만, 아무나 성공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저희 체인점이 130여 군데가 있는데, 성공률은 15%-20% 정도 밖에 안 됩니다.

▶ 아니 왜 다른 분들은 김회장님 같이 성공하지 못하는 건가요?

저는 그렇게 봅니다. 저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복제사업으로 보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하는 것, 제가 하는 교육대로만 제대로 해야 하는데, 자기네들이 멋을 넣어서 제멋대로 하는 겁니다. 적어도 고객님들에게 서비스 하는 차원에서 외모는 경쟁력입니다. 또 옷은 날개 아니겠습니까?

나비넥타이를 저희가 지급을 하는데 그것을 안 찬다는 거죠. 왜 안 차냐고 하면, 창피해서 못하겠다는 겁니다. 그것이 창피하면 왜 호떡장사를 하느냐 말입니다. 심지어 이런 분도 있어요. 자기가 호떡을 싫어하는데 호떡 장사를 하러 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여보슈, 잘못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당신이 호떡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호떡 장수를 합니까? 그건 안됩니다.”라고 얘기 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여름에는 무엇을 합니까?”라고 물어보시는 겁니다. 호떡장사가 여름에도 호떡하지 뭐하겠습니까? 생각하는 마인드 자체가 틀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런 분들한테는 호떡집 체인점을 내주지 않습니다. 제가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무료로 내주는데도 불구하고, 상을 차려 주었으면 자기가 떠서 먹어야지 제가 입에까지 넣어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 체인점이면 인테리어비, 재료비 해서 돈도 받고 하지 않나요?

호떡집에 무슨 인테리어가 필요있겠습니까? 그저 맛이 중요한데, 맛이야 제가 만들어 놓은 것이니까 자기네가 정성만 더 들여서 본사 사장님이 하는 것처럼 자기도 양복 입고 해야죠. 제가 중절모를 쓸 때도 있는데요.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게 되면 헬멧을 써야 하는데, 배달을 다녀오면 머리가 눌려져서 보기가 싫어 중절모를 쓰기 시작했는데요. 사람들이 보고 “사장님, 멋있어요.”라고 해서 계속 쓰게 되었죠. 결국 모든 노하우는 제가 개발하는 것도 있지만, 고객님들에 의해서 개발이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호떡을 하나 먹는데 “아저씨, 꿀이 너무 많이 흘러요. 여기에 전분가루를 넣으면 꿀이 안 흘러요.” 라고 말해주면 저한테 공부가 되는거죠. 우리가 기억은 오래 할 수 없지만, 메모는 오래 가거든요. 저는 그런 것들을 다 메모해 둔 겁니다.

제가 연구를 하게 된 것도 고객님들에 의해서 밀가루에 무엇을 집어넣어야 하는지, 속에는 무엇을 집어넣어야 하는지 배우게 되는 겁니다. 제가 속재료로 과일부터 한약재까지 안 넣어본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단일 품목으로 합니다. 남들이 하는 것 다 하면 다른 사람들은 못 먹고 살면 안 되지 않습니까? 세상은 공유해야 하고 둥글둥글 해야죠.

▶ 체인점 중에 성공하고, 김회장님보다 더 잘하고 있는 분들이 있으시면 소개 좀 해주시죠.

20-30%에 들어가는 가게들은 오히려 저희 가게보다 더 잘되고 있습니다. 저희가 본사라고 해서 제일 잘되는 것은 아니고요. 일산 라페스타점 같은 경우에는 한 달 동안 재료비 등을 다 뺀 순수익만 1천만원이 됩니다. 또, 고대점 같은 경우에는 한 5백만원대 정도 됩니다. 저희는 한 사람 기준으로 했을 때 2백만원 정도 수입만 되면 성공으로 보거든요.

저 같은 경우도 제가 지금 나이가 51세인데, 지금 어디에 취업한들 거기에 들어가봐야 1백만원 이하이거든요. 그러면 그 1백만원을 받기 위해 또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하고, 스트레스는 얼마나 많이 받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제 장사이다 보니까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다는 것이 최고 행복입니다.

오히려 요즘 같아서는 행복보다는 더 좋은 표현이 있다면 ‘나눔, 베품, 봉사’라는 거죠. 그래서 제가 몇 군데 가서 호떡도 구워드리는 행사를 하는데요. 목동 행복한 세상 백화점 앞에서도 ‘결식아동 돕기 호떡축제’를 많은 분들과 같이 제가 세 번을 했는데요. 그 수익금 전액을 결식 아동돕기 후원금으로 내고 왔을 때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마추어는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이고, 저 같은 프로는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인거죠.

◇ 항상 아내에게 미안... 일요일 아침은 직접 식사준비

▶ 그렇게 봉사하시는 것은 김회장님도 어린 시절에 많이 어려웠기 때문에 하실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고등학교 때까지 제 소원은 쌀밥 한 그릇 제대로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가난했었습니다. 제가 김제 호남평야 출신이면서도 저희 집은 땅이 한 평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까지 부모에게 재산 하나 물려봤지 못한 것을 원망해본 적 없었습니다.

저희 집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요. 저희 집사람은 지금까지 쓰레기 봉지를 한 번도 사본 적이 없습니다. 분류를 해서 밤 11시 50분이 되면 동네 쓰레기 모아놓은 곳을 가서 쓰레기봉투가 다 차지 않은 것을 열어서 거기에 다 채워 놓고 주변 정리를 다 하고요.

또 아이들은 지금 대학교 2학년, 고등학교 3학년, 막내가 초등학교 5학년인데도 아직까지 제가 교복을 사준 적이 없습니다. 돈이 없어서 못 사준 것은 아닙니다.

제가 학교에 직접 가서 선배들이 벗어놓고 간 옷 두 벌씩 얻어와서 손질해서 입혀주고, 그 대신 딸아이한테 학교 옆에 있는 교복 가게에 가서 교복값이 얼마인지 확인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교복값을 제가 아이의 통장에 넣어줍니다. 그래서 뭔가 가치를 알게 하는 것인데, 아이들이 잘 따라주었을 때 참 감사하죠.

▶ 아이들이 마지못해 억지로 따라주는 것은 아닌가요?

아이들 교육을 지켜보니까 역시 역경을 이겨내는 교육이 참된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성이 중요한 것이지 학교공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보거든요. 사람이 먼저 되고 인간이 먼저 되어야죠.

▶ 김회장님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아내의 힘도 큰 것 같은데요. 어떻게 만나셨어요?

저희 큰 처형이 중매해주었는데요. 제가 25번 선을 봐서 지금의 제 아내를 만났는데요. 가진 것이 없다 보니까 많은 여자분들이 경제적인 면을 보고 많이 돌아서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22년째 같이 살고 있는데 아직까지 한 번도 각시가 미워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저는 22년째 이변이 없는 한 지금도 일요일 아침만큼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식사를 준비해서 직접 상을 차립니다. 그래서 토요일 저녁이면 집사람에게 “여보, 내일 아침은 뭐 먹고 싶은가?” 하고 물어봅니다. 행복이나 사랑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고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항상 가족이 함께 있으면 행복한 거죠. 제가 이렇게 다닐 수 있는 것은 집사람의 내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가정경영에 실패한 사람이 나가서 성공하기는 힘들거든요. 그래서 경영중에 가장 어려운 경영이 가족경영이라고 생각합니다.

▶ 처음에 12억을 잃었을 때 부인께서는 어떻게 그 어려움을 견뎌내셨나요?

지금도 상당히 마음 아파합니다. 12억이라는 돈을 잃지 않았다면 제가 한국통신이라는 좋은 직장에서 나와야 할 이유도 없지 않았겠습니까? 지금도 다섯 식구가 어디 가서 외식 한 번 하지 못합니다. 취미생활도 못하고 오로지 호떡에만 매여 있으니까 마음적으로 부담을 많이 갖는 것 같아서 어떻게 하면 제가 집사람을 기쁘게 해 줄 것인가 생각을 하는데, 집사람은 아직도 그 잃었던 12억이 자꾸 생각이 나는 거죠.

▶ 부인께서 식당일, 파출부 일 같은 험한 일도 많이 하셨나봐요? 어떤 고생을 하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저는 퀵서비스를 하고, 집사람은 식당에 나가고, 그 자투리 시간에 파출부를 했죠. 그러니까 아마 저보다도 집사람이 고생을 더 많이 했다고 봐야겠죠. 아이들 뒤치다꺼리도 다 해주어야 했으니까요.

처음 올라왔을 때 막내딸이 다섯 살 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아이가 유치원에 다녀오면 혼자 점심을 먹어야 하고, 이러한 것들이 굉장히 마음이 아팠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까 우리 아이들을 굉장히 강하게 키운 것 같아서 다행인 것 같아요.

▶ 그렇게 사모님이 잠 못 자고 눈물짓는 모습을 지켜보는 남편 입장은 또 어땠을까요?

저는 항상 “사랑해”라는 말을 많이 앞세우는데요. 그런데 집사람은 성격이 소심해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사랑한다는 소리를 제가 들어봤는지 안 들어봤는지 모를 정도거든요. 반대로 저는 “사랑해” 라는 말을 하루에 20-30번 정도 하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이 마음 아파하는 것을 저는 사랑으로 감싸주는 거죠. 그런 것 때문에 치유가 되는 것 같습니다.

▶ 장사하다가 실패하는 분들도 많은데, 문제점이 뭔지 지적해 주신다면요?

제가 KT에 다니면서 대전 연수원에 가서 교육생으로 연수를 받았는데요. 지금은 거꾸로 성공사례라고 해서 퇴직을 앞둔 KT 직원 부부들에게 특강을 합니다. 프랜차이즈 창업을 하든 개별창업을 하든 중요한 것은 자기 마음 자세입니다. 쉽게 하려는 사람들이 음식점을 하거든요. 퇴직하면 주머니에 2-3억 정도 가지고 나오니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음식점입니다.

우리나라에 음식점 숫자만 해도 800만개입니다. 약 60명당 하나 꼴로 식당이 있다는 거죠. 그런데 프랜차이즈 창업을 10군데가 하면 2년 안에 8곳이 문을 닫습니다. 그러니까 프랜차이즈 창업을 한다고 해도 본사만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자기가 끊임없는 개발을 해야하는 거죠. 맛을 가지고 승부를 하든지, 서비스를 가지고 승부를 하든지, 분위기를 가지고 승부를 하든지, 뭔가 빼어나게 해주어야 하는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거죠.

저는 나이가 51세인데 마술에 도전하고 있고, 노래에 도전하지 않습니까? 고객들이 호떡 드시는 동안 제가 좋아하는 김정민의 ‘슬픈 언약식’, 앵콜이 나오면 안상수의 ‘영원히 내게’ 라는 노래를 부르는 겁니다. 노력없이 얻어지는 것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마술 한 가지를 보여 드리기 위해서도 손에 멍이 들 때까지 연습을 합니다.

▶ 마술은 몇 가지나 배우셨어요?

지금 100가지 정도 배웠습니다. 그래서 아마추어지만 마술사로서 아이들 돌잔치에 가서 30분씩 공연도 하고, 요즘에는 기업체, 관공서에서 특강을 하고 있는데 마술 하나씩 보여주죠. 제가 마술사가 되려고 마술을 배운 것은 아니거든요. 고객들에게 뭔가 즐거움을 주기 위해 하나하나 배웠던 것이 이제는 마술사로 활동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는 거죠.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 끊임없는 노력과 연구만이 성공의 비결

▶ 음식점으로 성공하려면 뭔가 독특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제대로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걸까요?

사람들이 중간에 많이 포기를 한다는 겁니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자기 계발을 하고, 왜 우리 식당에는 고객들이 찾아오지 않는지 분석을 해야죠. 자리가 안 좋으면 마케팅을 하든지, 영업을 하든지 해야죠.

▶ 어떤 식으로 마케팅을 해야 할까요?


호떡으로 예를 든다면요. 지금 우리 가게에 와서 호떡 맛을 못 본 사람이 있다면 제가 돈을 받지 않고 그 분들에게 호떡을 드리겠습니다. 호떡 맛이 괜찮다고 하면 다시 찾아올 것 아니겠습니까? 찾아오기 힘들다면 배달도 해드려야죠. 찾아가는 서비스, 공격적인 마케팅이라고 하는데요.

저는 호떡 한 개만 시켜도 가능한 배달을 해드립니다. 배달을 하면서도 전화로 주문한 고객에게는 제가 100원을 환불해 드립니다. 그것도 그냥 100원짜리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고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한국은행에 가서 신권 주화로 바꿔서 환불해 주고, 주머니에 마술도구를 하나 가져가서 마술도 하나 보여주고요. 또 돌아와서 해피콜을 해서 맛이 어땠는지, 제가 개선할 점은 없는지 품평을 듣습니다. 그러니까 호떡 하나를 통해 제가 고객에게 4번의 감동을 드리지 않습니까?

그런 고객님들이 자신만 아는 것이 아니라 옆집에 가서도 이야기를 합니다. 결국 영업을 제가 하는 것이 아니고 제 고객들이 영업사원이 되는 거죠. 그래서 만약 식당을 한다고 하면, 내 음식의 맛을 보여주어야 사람들이 맛을 보고 찾아올 것 아닙니까?

‘음식 한 그릇 가져다주면 내가 얼마 손해인데..’ 하는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그것을 아까워서 못하는 사람은 오래 못한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인적투자든 물적투자든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기를 잡으려는 사람이 미끼를 쓰지 않는다면 그건 어불성설이죠. 그래서 지금 투자하는 것은 앞으로 봤을 때 다 수입원이 되는 거죠. 그래서 투자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 “그 사장은 용기가 좋아서 그렇지. 나는 숫기가 없어서 안돼.” 라고 하시는 분들에게 용기를 주신다면요?

세상은 안 되는 것은 없습니다. 저희집 가훈이 ‘하면 된다’ 인데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더 강하게 만들 뿐이라는 거죠. 결과적으로 호텔에 가서 50만원짜리 음식을 먹으면서 받는 서비스와 우리 노점에서 500원짜리 음식을 먹으면서 받는 서비스에는 분명히 차별화가 있다는 거죠.

저는 50만원짜리 먹으면서 받는 서비스에 버금가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지금도 뭔가 서비스 할 것이 있다면 계발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유머나 넌센스 퀴즈 책을 많이 보고 있는데요. 많이 드시는 분한테 퀴즈 문제를 내서 맞추시는 분한테는 호떡 하나 더 서비스를 하는 거죠.

▶ 그렇게 열심히 하셨기 때문에 아무리 안 남는다고 해도 돈을 많이 버셨을 것 같아요. 빚은 다 갚으셨나요?

빚은 다 갚았고요. 이제야 제가 살 집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사실 노점도 서울시 차원에서 없앤다고 하는데요. 모르겠어요. 금년 12월 31일자로 없어질지 2년 동안 유예기간을 주는 해당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점포를 하나 마련할 여력은 없습니다.

그럼 과연 호떡을 통해서 고객 서비스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중인데요. 차량을 하나 준비해서 김민영 호떡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연출해서 이동식으로 준비를 해 볼 생각입니다. 여러 백화점에서는 들어오라고 하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든 간에 열심히 하다 보니까 집도 하나 준비하게 되었고요.

서울에서 신혼부부가 열심히 일해도 집장만 하기가 어려운데, 저희는 다섯 가족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와 집사람과 아이들이 비뚤어지지 않고 사는 것이 감사하죠. 저희 아이들은 다 호떡 반죽을 할 줄 압니다.

▶ 이 방송 들으시면서 나도 한 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으실 것 같은데요. 어떤 분들이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요?

서울 바로서기 본부에서 노숙자 분들 중에 조금 사고가 깨어 있는 분들 200명 정도에게 강의를 해달라고 해서 제가 특강을 했더니, 그 중의 세 분이 저희 가게를 찾아오셨어요. 그분들은 호떡 창업 하는 것은 아니고 길거리 붕어빵 창업을 했는데요. 제가 강의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적어도 리어커 창업을 하면 자본금이 200-300만원 정도 드는데, 어떤 분은 “지금 내가 시작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하는데, 당신네가 뭔가 할 수 있게끔 준비를 해준다면 내가 2백만원을 벌어서 갚겠다.” 하는 분들이 계신데요. 저는 이것은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몸만 건강하다고 한다면 내가 일할 곳은 천지에 깔려 있다는 거죠. 인력 소개소에 찾아가서 한 달 정도만 일하면 창업할 수 있는 자금이 확보가 됩니다. 그런데 한 달 동안 땀 흘리기 싫어서 공짜로 받아서 하려한다면 정신상태 부터가 안 되었다는 거죠.

저는 2001년도에 회사를 퇴직하고 바로 5일후에 인력소개소를 통해 잡부로 공사장에 가서 이틀 동안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루 일당 5만원에서 소개비 5천원을 떼주고 나면 4만5천원이 남는데, 4만5천원을 벌러 간 것이 아니고 내 몸이 따라주는지, 할 수 있는지 운동삼아서 내 체력 테스트의 기회로 삼아보자고 해서 했는데, 이틀을 하고 나니까 그 곳의 책임자가 와서 하는 말이 자기가 8년 동안 책임자 생활을 하면서 저같이 일 열심히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하는 거예요.

내일부터는 6만원 줄테니까 소개소도 가지말고 바로 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공사판에 가더라도 열심히 하니까 인정을 받는다는 거죠. 집에는 낚시하러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가서 일했는데, 번 돈 9만원으로 쌀과 아이들 과자를 사가지고 가서 사실을 얘기하면서 우리 가족이 다 울던 일이 기억에 나네요.

그 때 집사람이 “당신이 주식해서 12억을 날리고 직장을 그만 두었지만, 당신의 정신상태를 보니까 내가 당신을 믿고 살 수 있겠소.”라는 말을 해서 우리 가족이 얼싸안고 울었죠.

▶ 고객만을 위한 삶만 사시는 건가요? 본인을 위한 삶은 없는 건가요?

그렇게 봐도 과언은 아닙니다. 어떻든 간에 지금 제 인생 살아가는 것이 90%는 남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어떻게 해서든지 고객님한테 즐거움을 줄 것인가 생각하는 거죠. 맛도 맛있으면 즐거움 아니겠습니까? 눈으로 보는 것도 즐거워야 하고, 냄새 맡는 것도 즐거워야죠. 호떡 하나 드시는 분한테 마술 한 가지 보여 드리고, 뭔가 커뮤니케이션이 되면 그 분이 하나 먹을 것을 두 개 먹게 되는 것이죠.

(표준 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 정리=김은옥)

추천기사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