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정은 꼴통같지만 천재형, 엄지원은 아줌마형"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명품 조연 배우 박철민

요즘 자칭 2인자들이 뜨고 있다고 그러죠. 개그계에서 박명수와 김구라가 인기를 얻고 있다면 영화계는 이 배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명품 조연 배우 박철민 씨...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김완 장군,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의 택시기사 ‘인봉’하면 아실까요?1988년 연극으로 데뷔한 배우 박철민 씨는 50여 편의 연극·드라마·영화 등에 출연했지만, 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고작 몇 년 전입니다.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인 박철민 씨는 대형집회의 사회자로 유명했고, 연극배우 추송웅을 좋아했던 형님을 따라 시작한 연기는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 기상천외한 애드립으로 웃음을 선사합니다.

‘엉뚱한 배우, 각이 없는 배우, 보면 행복한 배우! 이런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주목받는 배우’ 박철민 씨를 11월 9일 CBS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FM 98.1Mhz, 연출 김우호 PD)에서 만나봤습니다.

◇ ‘화려한 휴가’, ‘불멸의 이순신’... 내겐 너무 고마운 작품

▶ 요즘 많이 뜨셨는데도 많이 변한 것이 없나 봐요?

뜬 것이 아니고 계속 열심히 하고 있고요. 좋아하시는 분들이 조금 늘고 있습니다.

▶ 요즘 “박철민 씨, 싸인해 주세요.” 라는 말씀 많이 들으시죠?

“싸인해 주세요”라는 말은 많이 듣는데, “박철민 씨!” 까지는 아니고 그냥 “저기요..”라고 하는 정도고요. 그래서 가끔 “박철민 씨!” 라고 해주는 분들이 너무 고맙고 행복합니다.

▶ 무명이라는 표현은 좀 억울하지 않나요? 사실 많은 작품을 하셨잖아요.

글쎄요. 저는 지금까지도 편한 자리나 같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는 “무명배우, 박철민 입니다.”, 라는 소개를 자연스럽게 하는데요. 저한테는 어울리는 것 같고 친숙하고 저는 그 말이 더 편합니다.

▶ ‘화려한 휴가’는 박철민 씨한테는 아주 고마운 작품이죠?

그럼요. 저한테는 끝까지 크게 남아있을 작품입니다.

▶ ‘작품에 비해서 너무 웃기는 것 아냐?’ 하는 그런 논란도 있으셨다고요?

그랬던 것 같아요. 감독님이 워낙 진지하고 무겁고 가슴 아픈 영화이기 때문에 웃길 수 있는 즐거울 수 있는 곳에서는 더 많이 아주 극대화해서 재밌고 즐겁게 만들자 하는 뜻이 있어서 그랬는지 제가 하염없이 까불도록 놔두셨고, 애드립 가져오면 “형, 그거 다 해보세요. 더 해보세요. 또 없습니까? 형은 하염없이 웃겨야 돼. 더 해보세요. 제가 절제하고 가다듬을 테니까.” 그래서 물 만난 물고기처럼 막 까불대고 정신없이 넉살을 떨 수 있는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 그럼 보여지지 않은 것이 훨씬 더 많았겠네요.

넘치는 웃음들이 있는 장면들이 한 열 씬은 가슴 아프게 짤렸죠. 그런데 짤려야 됐고, 작품의 길이나 큰 틀을 위해선요.

▶ ‘대단한 희극이 대단한 비극으로 인도한다’ 라는 말처럼, 영화의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꼭 필요했던 거죠?

그래서 그랬는지 막 까불대다가 마지막에 죽는 장면, 아이를 앉고 우는 장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그 때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라는 말들을 자주 듣는데, 그 때마다 저는 행복해요. 의도대로 저한테 실컷 이입돼서 울고 웃어주었다는 것이 너무 저한테는 행복하죠.

▶ 그런데 너무 웃긴 이미지로만 굳어지는 것도 부담스럽죠?

글쎄요. 배우로써 ‘희극적인 배우다’, ‘희극적인 역할을 잘 한다’ 거기에 일단은 최고의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정말 저 배우가 나오는 작품은 일단 마음껏 웃으면서 풀어헤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들을 들게 하는 배우, 그것을 향해서 지금 많이 달려가고 있습니다.

◇ 어린 시절 봤던 광주의 기억... 연기 중 실제로 감정이 북받치기도 해

▶ 광주와는 인연이 깊다고 하던데요. 중학교 2학년 때 광주의 그 참혹한 현장을 직접 봤다고요?

제가 광주 출신이니까 그 한복판에 있었으나 또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어린 아이 시각에서 바라봤던 것 같아요. 일단은 체육대회를 못하고 휴교가 됐으니까 그 안타까움에 힘들어 했고요.(웃음) 형들 어른들 나가서 데모하시는 데 나가서 그 언저리에 돌아다니면서 학교 안가고 볼거리들 많으니까 막 신나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저한테는 참 짧지만 행복했던 방학의 기간이었던 거죠. 그 땐 철이 없었던 거죠.(웃음)

▶ 중학교 2학년 때면 국가나 민족, 사회문제에 대한 생각은 제대로 형성이 안 되었을 때였겠죠?

좀 묘하게 뒤섞였던 것 같아요. 누나, 형들이 안타깝게 맞고 끌려가는 장면도 멀리서 보면서 ‘왜 저러지?’ 하는 물음표를 가져보기도 했었고, ‘해방광주’라고 하죠. 계엄군이 물러간 그 현장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우유, 빵도 나누고, 같이 고향의 봄도 부르고 하는...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 공동체 의식이랄까 그런 기억의 한 자락이 저한테 오랫동안 남겨져 있고요. 여러 가지 경험을 어린 눈으로 어린 시각으로 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 광주 소년에서 이제는 배우가 되어서 연기하면서 아주 미묘한 것들도 있으셨겠어요?

상무관에서 많은 시신들, 희생자들을 관에 넣고 통곡하는 장면을 찍을 때는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던 것 같아요. 또 제가 도청에서 빠져 나오는 장면, 아이를 안고 우는 장면에서는 이상한 북받침 때문에 내가 준비한 연기, 내가 조절하기 보다는 그냥 북받쳐서 나오는 눈물 때문에 ‘지금 영령들이 내 주위를 감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했던 것이 아마 어릴 때지만 그 때 광주의 한복판에 있었고, 또 우리 때 친구들이 다 그랬듯이 대학 때 광주의 이야기들을 많이 울부짖고 구호를 외치고 했던 것들이 복합돼서 계획되지 않은 감정에 빠지기도 했던 것이 ‘화려한 휴가’ 촬영 현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 박철민 씨 딸이 영화를 보고나서 그렇게 울더라고요?

글쎄요. 좀 건방진 소리일수도 있지만, 저희 작품이 보편적인 슬픔이나 감동이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어린 딸의 시각에서도 아프기도 했고 신나기도 했던 그런 영화가 아닌가, 일부러 만들어서가 아니라 그 시대의 5월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사랑하고 안타까워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 아빠의 연기는 어떻다고 하던가요?

직접적으로 언급은 안하는데, “아빠! 재밌었어. 슬펐어.” 이런 식으로 표현을 아주 건조하게 하더라고요. 왜냐하면 저의 시나리오, 연극 대본을 쭉 읽고 해서 나름대로 볼 수 있는 것이 생겼는지, 큰 칭찬은 없었습니다.

▶ ‘불멸의 이순신’도 박철민 씨한테는 아주 귀한 작품이었죠?

그럼요. 계속 무명을 주장하고 다니던 저에게 알려지는 계기를 만들어준 작품이었고요. 또 초등학교 때 정근상 타 본 이후 처음으로 ‘남자조연상’이라는 상을 타게 해준 아주 의미있고 크게 자리잡는 작품입니다.

◇ 전라도 사투리는 너무나 맛깔스러운 고향의 언어

▶ ‘남우주연상’은 언제쯤 받게 될까요?

저는 조연이 너무나 행복하고요. 조연상 평생 받다가 그만 둘 때까지 연기한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저는 조연상 계속 받고 싶습니다.(웃음)

▶ 우리가 보통 ‘감초’역할이라는 표현을 하는데, 저는 불만이 많아요. ‘감초’역할, 그 정도가 아니잖아요?

조연은 일단 주연보다는 작품을 많이 할 수 있잖아요. 여기저기 가서 여러 인생들을 만나볼 수 있고, 그러면서 이런 말씀해서 죄송합니다만, 이 작품에 대해서 덜 책임지게 되잖아요. 그래서 부담감이 없어서 더 편하게 까불대기도 하고, 오버하기도 하고요. 저는 그런 점이 아주 편해요.

그리고 주연이 올라가는 정상은 좁잖아요. 바람도 세고, 언젠가는 내려가야 되고, 경쟁도 있고요. 그런데 우리 조연들이 위치하고 있는 산등성이에는 여유도 있고 서로 이야기도 하고 ‘너, 이번에 이 작품 했으면 좋았을걸’ 하고 위로하기도 하고요. 그런 넉넉함도 있고해서 그런지, 조연이 저하고는 너무나 색깔이 맞는 그런 역할인 것 같아요.

▶ 조연들이 그런 서민적인 삶, 애환들이 있군요?

더 맛깔스럽게 까불어도 되고, 또 그것이 요구되기도 하고 그런 것 같아요. 주연은 좀 책임지면서 절제하기도 하고 카리스마로 쭉 이끌어가야 하기도 하는데요.

▶ 호남사투리가 아주 압권이던데요. <태백산맥>을 10권 읽고 그걸 메모 했다면서요. 아니, 고향말인데도 또 공부를 한 겁니까?

글쎄요. 제가 이제까지 알았던 고향, 사투리, 억양들만을 쓰다가 책을 읽어보니까 비유법, 직유법, 의인법, 은유법들이 난무할 정도로 살아 숨쉬는 곳이 우리 호남 사투리의 맛이다 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책입니다. ‘세상에, 세상에’ 하면서 읽다 보니까 이걸 어떻게 제 머리와 가슴에 좀 두어야 하는데 제 머리는 그렇지 못하고 해서 읽다가 깨알처럼 노트에 적었던 거죠.

그러면서 더 친숙하고 두고 있다가 제 직업이 배우니까 이런 넉넉하고 맛있는 말들이 쓰일 배역을 만났을 때 쓰자고 해서 이렇게 숨겨놓고 있죠.

▶ 지금도 저축되어 있는 것이 많겠네요?

비슷한 배역들을 맡거나 필요한 대사들이 있다면 제가 그 노트를 보게 됩니다. 들어가서 읽다보면 ‘맞아, 이런 것이 있었지.’ 하면서 찾아서 쓰기도 하고요.

▶ 조정래 선생님이 어디서 그렇게 흙내음 나는 표현을 생각해내셨을까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얼마나 미웠으면 ‘벼락을 나이대로 쳐 먹고 죽을 놈들’, ‘지리산 호랑이가 콱 씹었다가도 더러워서 도로 뱉을 놈들’... 씹었다가 너무 더러우니까 더 안 씹을 놈아 하는 그런 말은 무서우면서도 아주 험하면서도 해학과 풍자가 담겨 있기 때문에 저한테는 어떤 보물창고였어요.

◇ 추송웅 선생님을 좋아했던 형... 그 영향으로 배우의 길에 들어서

▶ 본격적으로 배우 인생을 돌아보겠습니다. 형님 영향이 컸다는 것이 무슨 얘기예요?

제가 초등학교 때이고 형님이 고등학교 때였는데요. 형님이 추송웅 선생님을 좋아하셔서, 학교에 안 가고 추송웅 선생님이 광주에서 공연을 하면 광주여관 앞에서 자고, 부산 가면 또 부산까지 따라 갔다 오시고 하니까 학교에서는 난리가 나고 거의 퇴학 당하기 일보 직전이었죠.

그런데도 갔다오셔서는 쭉 후일담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대구에서는 기다리는 나를 보고 같이 밥 먹자고 해서 같이 해장국을 먹었다, 그러면서 배우를 하려면 이래저래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말이죠. 그런 이야기를 제가 듣는데 계속 저한테 축적이 되서 ‘나도 배우를 해야 되는 구나. 배우가 형의 길이 아니고 내 길이구나.’ 그런 식으로 전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마 저는 형의 영향 때문에 대학 때 경영학과를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배우의 길, 광대의 길을 가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 그 때 추송웅 선생님이 ‘빨간 피터의 고백’으로 인기가 대단했었죠?

그래서 같이 영화를 하거나 사석에서 상미를 만나면 그런 이야기를 제가 가끔씩 하죠.

▶ 태어나고 쭉 자란 곳이 광주인가요? 광주가 큰 도시이기는 하지만 사실 어린 시절에는 영화나 연극적인 문화는 좀 덜하지 않았나요?

광주가 호남지역에서는 물론 대도시지만, 제가 이렇게 봤을 때는 그냥 소박한 중소도시의 느낌, 나누기 좋아하고, 한 다리 건너 두 다리 건너서는 알고 지내기도 하고, 금방 찾을 수도 있고, 훈훈하고 따뜻한 느낌이고요. 평야지대에 있는 도시라서 그런지 그런 넉넉함 속에 풍류적인 기질, 소리도 하고 난을 친다던가 하는 관심들이 많은 분들이 계시고, 재주들이 있으셔서 판소리꾼이나 그런 광대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했던 도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광대’라는 표현을 많이 쓰셨는데요. ‘광대’라고 하면 정말 기질 있는 꾼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광대라고 해주면 영광이죠. ‘넓을 광(廣)’을 쓰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떤 위치에 자리한 그런 느낌도 들어서, 정말 진정한 광대가 되기 위해서 걸어가야 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 연극 첫 무대에 섰던 것은 언젠가요?

저는 경영학과 원서를 내고 바로 연극반에 들어갔습니다. 중앙극회 생활을 하면서 대학교 때 첫 작품이 김지하 선생님의 ‘금관의 예수’라는 연극이었죠. 예수는 원래 가시관을 쓰는데, 세태를 풍자하는 연극이었죠. 그 연극을 하면서 ‘세상의 답답함들을 이렇게 신랄하게 풀어헤칠 수 있는 것이 연극이구나’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죠.

▶ 그 연극에서는 어떤 역할이었어요?

거지와 문둥이가 나와서 막 까불대는 저는 거지 역할을 했습니다.

◇ 가난했지만 마음은 배부르고 행복했던 극단 생활


▶ 그랬다가 1988년도에 노동극단인 ‘현장’에 입단해서 활동을 많이 하셨던 건가요?

줄기차게 한 5년 동안 그 극단의 색깔에 맞는 연극만 했었습니다. 노동자들의 삶과 고민들, 그들의 투쟁을 담은 연극들을 쭉 해왔는데 그러다보니 제 시선이 너무 좁혀져 있는 것 같고, 한 곳만 향해 가는 것 같아 좀 다양한 배우 생활을 해보고 싶어서 다른 극단들도 찾게 되고 이곳저곳 불러주는 곳에서 연기하기 시작했죠.

▶ 극단의 동료분과 결혼하셨다고요.

극단에서 극작을 하는 친구인데요. 저한테 소중한 사람일 것 같고 제 곁에 있어줘야 할 것 같아서 여러 가지 작전을 편 결과 잘 됐습니다. 지금까지의 작전 중에 최고의 ‘스카우트’ 였죠.(웃음)

▶ 새로운 영화 ‘스카우트’는 잘 되고 있습니까?

다음 주 14일날 개봉이고요. 지금 기자 언론 시사회 때 너무나 평들이 좋아서요. 기자평이 최고의 흥행으로 가는 경우가 많지 않으니까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출발은 아주 산뜻하고 경쾌합니다.

▶ 그런데 연극이 얼마나 어려웠으면 과일 장사도 하셨더라고요?

저에게 영향을 끼쳤던 형님이 KBS에서 성우도 하시다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그러면서 제가 만든 가정도 돌아보게 되고, 책임의식도 생기게 되고 해서 시작했던 것이 과일장사인데요. 어쨌거나 과일장사는 망했습니다. 망하고 나서 ‘하나님이 나한테는 배우의 능력만 주셨구나.’ 어떻게 보면 고맙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건데, 다시 또 무대로 돌아오는 계기 속에서 더 열심히 하게 되었죠.

▶ 각종 문화집회에서 사회자로도 그렇게 유명하셨다고요?

저는 사회는 능력이 없고요. 어쩌다 엉겁결에 보게 되었고, 거기서 거침없이 순화되지 않은 저의 말투가 매력이었나봐요. 잘한다, 재밌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셨는데요. 실은 세련되고 전문적인 사회보는 역량은 없죠. 자연스럽고 털털해서 그래서 좋아했던 것 같아요.

▶ 연극하는 분들이 가난하다는 것은 널리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박철민 씨는 어느 정도로 가난하고 꼬질꼬질하셨나요?

3일 동안 안 씻고 먹기만 하고 자고 연습한 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 극단은 지하 2층이었기 때문에 해가 떴는지 달이 떴는지를 나가보기 전에는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대개 연습 때는 적어도 쌀은 없어도 소주와 라면은 꼭 있거든요. 그래서 한 3일간 지하 2층에서 연습 잠깐 하다가 술마시고 자고 씻지 않고 반복해서 꼬질꼬질 냄새가 이루 말할 수 없었겠죠. 그런 생활을 하던 것이 비일비재했죠.

그런데 그 때가 과연 배고팠던 시절인가 생각해보면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늘 배불렀던 시절이었던 것 같고,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요. 그리고 실질적으로도 언제 먹을지 모르니까 한 번 먹을 때 많이 먹어놓습니다. 그래서 배고픈 적은 없었던 것 같고, 행복하고 소박하지만 아름다웠던 시절 같아요.

만약 싫어하는 일을 그런 환경에서 했다면 도망갔겠죠. 좋아서 찾아간 길이었기 때문에 배고픔마저도 그렇게 배부름으로 해석했던 것 같습니다.

▶ 결혼생활 하면서 아내에게 돈을 제일 많이 가져다주었던 때는 얼마였어요?

연극 시절에는 30-40만원만 갖다 주어도 “이번에는 왜 이렇게 많아? 관객들 많아?” 할 정도였죠. 보통 한 달 연습하고 한 달 공연이면, 두 달 석 달 만에 보통 5만원 갖다 주기도 하다가 안주기도 하다가 그렇거든요. 왜냐면 밀린 외상값 정리하고 나면 별로 없거든요. 그런데 30-40만원을 그것도 만원짜리로 가져다주면 “괜찮았네.” 라는 말을 할 정도였어요.

◇ 더 맛깔스러운 연기 위해 수없이 많은 애드립 연구

▶ 그럼 ‘화려한 휴가’는 개런티가 얼마였어요?

연극할 때보다 비교할 수 없이 많았죠.

▶ 이번에 ‘스카우트’는 더 엄청났죠? 억대 정도 됩니까?

아닙니다. 조연배우들은 그렇지는 않지만, 연극시절에 비교하면 ‘이제는 걱정할 필요 없이 열심히만 하면 된다.’ 할 정도 입니다. 연극을 하면서 다들 소박한 꿈들이 있는데요. 제 꿈이 생맥주에 치킨 실컷 먹는 것, 삼겹살에 소주 실컷 먹는 것이 저의 소박한 소망 중에 하나였거든요. 그것을 원없이 이루고 살고 있습니다.

▶ 영화 출연은 어떻게 해서 하시게 된 겁니까?

연극하다가 처음 작품이 이정국 감독님의 ‘부활의 노래’예요. 제 동기가 연출부에 있어서 “야, 목욕비 줄테니까 와라.” 해서 한 3일 찍고 그 때 8만원인가 받았던 것 같아요.

▶ 근데 출연료가 아니고, ‘목욕비’ 라는 것은 무슨 표현인가요?

엑스트라는 아니고 아주 단역인데 영화자체가 아주 소규모 독립영화 수준이었기 때문에 따로 줄 수는 없으니까 찍고 나서 그래도 땀은 닦아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그런 뜻이겠죠. 적은 액수라는 의미죠.(웃음) 그래도 8만원이면 소주 실컷 먹죠. 왜냐하면 2-3일 하고 번 돈이 연극에서 보통 두 세 달하고 번 돈과 비슷하니까요. 그 당시부터 하여튼 적게 주는 영화도 연극보다는 훨씬 많았습니다.

▶ 개런티 받기만 하면 소주 얘기가 나오네요? 소주를 많이 좋아하나봐요?

죄송합니다만 제가 좀 더 어렸을 때는 그 집에 있는 술은 다 먹고 나오자는 주의였어요. (웃음)

▶ 소주를 통해서 그런 연기생활의 고달픔을 날려버리고자 하는 그런 의미겠죠?

쌓였던 스트레스, 고민들을 날리고, 무대에 쓸 아이디어 만들어 내고, 그러면서 실컷 웃고 까불다가 큰 에너지 얻어서 내일 맞이하고요. 그런 매개 역할인 것 같아요.

▶ ‘나를 사랑하는 감독이 3명 있다’ 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글쎄요. 저를 사랑한다, 또 다른 표현을 하자면 저를 과대평가 하는 감독들이죠. ‘화려한 휴가’의 김지훈 감독, ‘혈의 누’의 김대승 감독, 이번 ‘스카우트’의 김현석 감독님이죠. 제가 잘 하는 줄 아나봐요. “형은 믿어. 더 잘 할거야.” 하는 그런 믿음 때문에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이 100이라면 110, 130, 150이 발휘되는 것 같아요.

저 감독들 앞에만 서면 내가 잘 할거라고 생각하는데 신이 나잖아요. 부담이 안가고 떨림이 없잖아요. 그래서 더 이완되고 더 마음껏 펼치다보니까 저분들과 함께 작업하면서는 나도 내가 이 정도 갖추고 있었나 할 정도의 다른 부분들도 표현이 되고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은인 같은 감독들입니다.

▶ 100% 발휘하기가 힘들텐데, 도대체 무슨 에너지고 어디서 뽑아져 나오는 건가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감독은 촬영현장에서 최고의 카리스마 아닙니까? 저 분이 NG도 내고, 컷도 하고, 무리한 요구도 하고, 잘 안되는 것도 요구를 하는 그런 역할에 있는 사람이 “좋아. 형, 최고야.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더 없어?” 하면서 막 올려주고 띄어주니까 그 순간만큼은 인간의 발견치 못한 무한한 능력들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이 꿈틀꿈틀 기어 나왔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사람을 칭찬하고 인정해 준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으로 하여금 큰 에너지를 주는 것인가 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 칭찬하고 격려한다는 것이 참 중요하군요. 연기에서 플러스 알파가 되는 요인이 될 수 있군요.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저한테 만큼은 날 수 없는 저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 칭찬이고, 발을 다쳐서 걸을 수 없는 저에게 뛰어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칭찬인 것 같아요.

▶ 영화 촬영할 때 애드립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겁니까? 아니면 박철민 씨 같은 캐릭터 있는 사람한테만 특별히 허용되는 건가요?

아무래도 이제까지 제가 맡았던 배역들이 여백이 있는 배역, 대사 한 줄 밑에 공간이 좀 있는듯한, 이 중에서 더 맛깔스러운 것이 있으면 더 해보시오 하는 배역들이 일단 많고요. 또 순간적으로 저도 모르게 나오는 애드립들이 있어요. 그것은 이 씬에서 더 맛있는 느낌을 줄 수 있는 형용사들이 튀어나오면 감독님도 좋아서 “OK!” 하시기도 하고요. 그러나 또 많은 애드립들은 제가 암기력이 약해서 집에서 한 백 번, 이백 번 해야 제 입에 붙고 가슴에 붙거든요.

똑같은 대사를 하다보면 지겹잖아요. 형용사나 부사, 그런 단어들을 조금씩 바꾸어 보기도 하는데, 바꾸다가 너무나 문틀에 맞듯이 콱 맞는 단어들이 있어요. 그럼 그것을 적었다가 감독한테 드리면 “형, 이것 좋네.”라고 하죠. 왜냐하면 감독들은 큰 숲을 보고 시나리오를 쓰다보니까 그 나무의 섬세함에 대해서는 좀 간과하는 배역들도 있잖아요. 제가 드린 것들에 대해 좋아하시면서 같이 가자 하는 것들 두 세 가지가 얽혀서 애드립들이 나와요.

▶ 우리가 기억할만한 즉석에서 만들어진 애드립이 있나요?

‘화려한 휴가’ 때 ‘이 호로 자식’이라는 대사가 있는데, 저는 그것을 ‘이 분노를 발생시키는 자식, 폭력을 유발하게 하네.’ 하고 바꿔봤어요. 그랬더니 관객들도 훨씬 재미있어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단순한 욕도 좀 꼬거나 펼쳐보면서 바꿔보는 이런 식입니다.

◇ ‘스카우트’에선 엄지원 씨를 사랑하는 주먹 건달 역할

▶ 곧 개봉할 영화 ‘스카우트’는 선동렬 감독의 이야기라고요? 거기서 박철민 씨는 어떤 역할인가요?

임창정 씨가 대학 체육부에 있는데, 선동렬을 스카우트하러 갑니다. 그래서 타 모 대학과 경쟁을 하죠. 그런데 1980년대에는 그 경쟁이 아주 치열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납치하기도 하고 병원에 입원하기도 하고 숨기기도 하는데요. 그런 우여곡절 끝에 선동렬을 스카우트 하는 과정의 이야기인데요. 그 과정 중에 광주에 내려갔다가 옛 애인인 엄지원 씨를 만나요. 그런데 저는 엄지원 씨를 하염없이 사랑하는 왕년 주먹 건달인데, 사랑하게 되면서 점점 문학청년으로 변해가는 캐릭터입니다.

▶ 김현석 감독이 야구를 정말 좋아하고, 선동렬 감독 팬이었다고 하는 예기를 들었어요.

예. ‘YMCA 야구단’ 도 만드셨고,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이라는 야구 영화를 쓰시기도 하셨고, 야구 매니아예요.

▶ 박철민 씨는 어떤 역할이에요?

저는 엄지원 씨를 짝사랑하는 건달역이죠. 건달이면서 하염없이 엄지원만 바라보고 하염없이 해바라기처럼 그 여인을 향해 다른 생각 안하고 그 여인만을 향해서 가는 순애보, 지고 지순한, 단순무식한 역할입니다.

▶ 그런데 단순 무식하다고 하면 박철민 씨가 가지고 있는 넘쳐나는 에너지의 끼에 비해 너무 조용한 것 아닌가요?

이번 배역은 그것이 매력이라서요. 관객들이 밖에서 보기에는 굉장히 재미있어요. 그런데 안에서의 연기는 정말로 진지해야 되고 순수해야 되고 단순해야 되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애드립도 많이 줄이고 필요가 없는 장면들이 많아서 나름대로 눈빛연기, 젖은 연기, 호흡만 하는 연기만 해봤는데 어떻게 취향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 배우는 사실 변신하는 데서 쾌감이 느껴지고 하지 않으세요?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막 까부는 연기들을 여러 편 했는데, ‘야, 박철민, 역시 재밌다.’ 하면서 한편으로는 ‘좀 똑같다’는 그런 이야기들을 하거든요. 실은 A작품을 보고 B작품을 재미있게 봤다면 그건 분명히 변신된 모습을 본 것이거든요. 그 배역의 다른 영화를 했으니까요. 그런 것 때문에 똑같다 하는 부담감들이 있어서 우리는 끊임없이 달라지려고 다른 색들을 찾는데, 그것이 또 대중들의 입맛에 쉽지는 않죠.

▶ 요즘 우리 영화가 좀 주춤한 것 같은데, 이렇게 개봉을 앞두고 있을 때 감독들의 심리 상태는 어떤 것 같아요?

배우보다 더 한 것 같아요. 거의 노이로제에 걸렸다고 할까요. 가끔씩 멍한 상태인 것 같기도 하고요. 이 작품이 대중들에게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만 집중을 하게 되는 시기인 것 같아요. 그만큼 자기의 모든 것들을 걸었던 작품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감독도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도 합니다.

▶ 영화 오래 하다보면 ‘나도 감독을 해봐야지’ 하는 생각도 들게 되지 않나요?

저는 절대 잡고 싶지 않습니다. 굉장히 고독한 작업이고, 굉장히 악역이에요. 잔인하고 냉정해야 되는데, 저는 냉정하지도 못하고, 잔인한 구석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저하고는 절대 맞지 않는 직업 같습니다.(웃음)

▶ 어릴 때는 어땠나요?

‘악동’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아요. 사회에 큰 범죄를 저질러서가 아니라 그냥 선생님들 괴롭히고 초등학교 때는 여학생들을 괴롭혔죠. 저는 여학생들을 즐겁게 해준다고 했는데 그들 입장에서는 괴롭힌 것이 되는 그런 것들이 많았죠.

▶ 초등학교 때 여학생들이 보면 “철민이, 그럴 줄 알았어.” 라고 할 것 같은데요.

(웃음) 그런 이야기 많이 하고 있을 겁니다. “철민이는 너무 잘 풀렸다. 99가지 길 중에 98가지는 잘못될 길인데, 나머지 한 길, 잘 되는 길을 같다.” 라는 말들을 많이 할 겁니다.

▶ 임창정 씨와 같이 연기하시니까 어떻습니까?

참 멋진 배우입니다. 제가 작품 전체를 계속 같이 하다보니까 많이 느끼고 여러 가지를 봤는데요. 자기만 가려고 하지 않고 물론 주연이니까 그랬겠지만요. 작품 전체를 아우르고 보듬고 가기도 하지만, 순간순간의 장면들, 자기 대사에서는 그 집중력이나 이런 것들이 좀 천재적인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후배지만 참 매력있는 배우다 싶어요.

또 사석에서는 정신없고 까불대고 다른 사람 같아요. 흔히들 ‘넋이 반 나간 놈’이라고 하는데, 그런 놈 같기도 하고 얼빠진 놈 같기도 하고, 바보 같기도 하고, 꼴통 같기도 한 이런 표현들이 제가 봤을 때는 아주 정확합니다.

이 친구는 잘 대화하다가도 갑자기 시선을 안 마주치고 그냥 자기 일을 갑자기 한다던가 하는 엉뚱한 면들이 있는데요. 연기에서의 집중력은 어떻게 저런 집중을 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대단합니다.

▶ 임창정 씨도 요즘 좀 뜸했기 때문에, 이번 작품에 대한 기대는 아주 크겠어요?

주위 사람들과 전문 관계자들이 임창정이 이제까지 했던 색깔과 너무 다른 예쁜 매력이 있는 역할이라고 아주 극찬하고 있습니다.

▶ 듣고 있는 엄지원 씨가 서운하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도도하고 고고할 것 같다고 하는데, 전혀 도도하지 않고 고고하지 않습니다. 아주 아줌마 같기도 하고, 마인드나 생각들이 따뜻하고 포근해요. 그래서 걸쭉하기도 하고요. 또 술자리에서 많은 여배우들이 다음 날 촬영이 있으면 얼굴 부으니까 자야되고 알콜도 적게 해야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감독과 배우들이 신나게 단합하는 자리라고 하면 자기가 분위기를 더 띄우고, 양도 더 많이 먹고 해서 마지막 남은 소주잔을 자기가 책임지는 그런 내숭없는, 있는 그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런 배우입니다.

▶ 요즘 배우들은 스스럼없고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맞아요. 특히 지원 씨는 그런 건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에 ‘세영’ 이라는 역할을 했는데, 세영의 그 청순하고 수수한 모습들을 아마 여러분들이 물씬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 ‘카리스마 있는 악역’ 연기 해보고 싶어

▶ 영화에 삽입된 ‘비광송’도 화제던데요.

여주인공이 문학관 강사입니다. 그래서 이 주먹 건달이 문학관에 들어가게 되고 습작을 하게 되죠. 그래서 건달 출신이니까 시 제목이 ‘문신’ 이런 식이예요. 그래서 ‘내 어릴 때/ 내 몸뚱이는 도화지였네./ 처음 그렸던 것이 진돗개/ 평생 형님한테 충성하라는 의미였지.’ 이런 시들을 썼었죠.

▶ ‘비광시’를 직접 실감나게 한 번 해보시겠어요?

조금만 해보겠습니다.

‘나는 비 광(光)/ 섰다에는 끼지도 못하고/ 고스톱에는 광 대접 못 받는/ 미운 오리새끼/ 나는 비광.// 광임에도 존재감 없는/ 비운의 광/ 차라리 내 막내 비 쌍피가/ 더 인기 많아라.// 하지만 그대/ 이것 하나만 기억해 다오.// 그대가 광박 위기에 처했을 때/ 그대를 구해주는 것이 나 비광이요/ 그대의 오광 영광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도 나, 비광이니// 나는 비광/ 없어봐야 소중함을 알게 되는/ 슬픈 광//

이런 시가 있습니다. 이걸 여주인공한테 바쳐요.

▶ 얼마나 외었으면 아직까지 외우고 계세요?

가슴에 남아서 지금도 그냥 나옵니다.

▶ 삼겹살에 소주를 좋아하시는 것은 무명시절의 얘기지, 지금은 안 그러실 것 같은데요.

아니요. 저는 동료들과 땀 흘리고 나서 바싹 익은 치킨에 생맥주 한 잔, 이 때가 가장 행복한 것 같아요. 그리고 출출할 때는 삼겹살에 소주 한 잔 마시는 것, 뭔가 내가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런 순간을 맞이할 때 ‘야, 내가 성공했구나. 잘 살고 있구나. 내가 좀 자랑스럽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 두 딸의 아버지로서,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는 어떤가요?

글쎄요. 제가 너무도 좋아하는 일을 실컷 하다보니까, 또 제가 좋아하는 안주에 생맥주를 실컷 먹다 보니까 아주 안 좋은 점수죠.(웃음)

▶ 두 딸한테도 그런 겁니까?

제가 같이 있는 순간만큼은 일부러 아이들에게 잘해줘야지가 아니라 너무 이쁘고 좋아서 비빌수록 제가 신나고 시름을 잊게 되니까요. 그래서 비비고 좋아하는 모습이 남들에게는 ‘아이들에게 잘해주는 구나.’ 하고 비춰질 수는 있을 것 같아요.

▶ 이번 ‘스카우트’에서는 변신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앞으로 맡고 싶은 역할은 또 어떤 것이 있으신가요?

일단 대중들이 아무 고민 없이 박장대소하게 만드는 배우를 향해서 계속 가고 싶고요. 김대승 감독님의 ‘혈의 누’를 하면서 경험한 건데, 제 가슴 어딘가 한 켠에는 악인의 모습도 있는 것 같아요. 악인의 모습을 분하고 그 모습을 스크린을 통해 봤을 때 ‘나한테 저런 모습이 있구나.’하는 것을 경험했는데요. 더 악랄한 카리스마가 넘치는 그런 역할을 정말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 대학로에서 조재현 씨가 ‘연극열전2’ 기획자로 나선다고 하던데, 박철민 씨도 참여합니까?

예. 제가 2번 타자로 참여합니다. ‘늙은 도둑의 이야기’라고 5년 전에 대학로에서 최고의 인기를 받았던 작품이거든요. 연출도 좋고 배역이 좋아서요. 이번에 손병호 형, 박원상 형, 유병관 형, 기라성 같은 연기파 배우들과 여러분들을 향해서 지금 준비하고 있습니다.

(표준 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 정리=김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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