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진보교육감 '무상급식' 충돌

왼쪽부터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박종훈 경남교육감 (자료사진)
무상급식비 사용실태에 대해 감사를 하겠다는 홍준표 경남지사와 감사를 거부하겠다는 박종훈 경남교육감의 입장이 거세게 충돌하고 있다.

27일 박 교육감이 기자회견을 열어 경상남도 특정감사의 부당함을 호소하며 차라리 감사원 감사를 받겠다고 밝혔지만, 홍 지사의 강경한 입장은 변함이 없었다.

28일 경상남도는 학교 현장에서 감사를 강행하겠다고 맞받아쳤다.

진보-보수간 민감한 이슈인 무상급식을 놓고, 보수 도지사 홍준표와 진보 교육감 박종훈이 맞붙은 모양세다.

◈ 경남도, "교육청 감사 거부 유감, 예정대로 진행"

경남도 송병권 감사관은 28일 "무상급식 보조금 집행 실태에 대한 감사를 하겠다고 사전 통보했는데도 일방적 감사를 운운하는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송 감사관은 "교육청을 범죄시한 일도 없었고, 오로지 막대한 도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분야를 감사하겠다고 한 것뿐인데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박 교육감의 전날 기자회견 내용에 대해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박종훈 경남교육감이 "도교육청의 감사에 한계가 있다고 하니 공정하고 엄격한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하겠다"고 한 데 대해 "감사 청구는 교육청 자유이나 감사를 회피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고 송 감사관은 잘라 말했다.

한마디로 도교육청을 '피감기관'으로 보고 직접 감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경남도는 이번 주 안으로 일선 시군을 통해 급식 업체 계약 등 급식 전반에 대한 자료를 검토한 뒤 다음달 3일부터 28일까지 9개시군, 90개 학교를 선정해 감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도는 학교명과 학급수, 급식예산, 계약금액과 일자, 입찰방법, 품목수, 공고방법, 지역제한 여부, 계약내용, 업체 관련 자료 등을 요구한 상태다.

도는 지난해 모니터링 한 결과 식품비로만 사용해야 할 돈이 인건비와 가스비 등으로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도교육청은 도, 시군 지원금과 교육청 예산을 가지고 학교에 내려 보낸 급식비를 학교에서는 정당하게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선 학교에 1억 원의 급식 예산을 배정했을 때 학교에서는 이 돈을 급식경비 전체로 보고 사용할 뿐이지, 이 돈 안에 도가 지원한 식품비로 얼마를 써야 하는지 모른다.

학교 규모에 따라 식품비가 더 사용될 수도 있고, 작게 사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도는 식품비로 지원했기 때문에 이 용도로만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도는 여기에서 더 벗어나 급식 업체와의 계약 방법 등 납품 비리에 대한 개연성까지도 열어놓고 집중 감사한다는 계획이다.

도 관계자는 "그동안 식품비에 대한 정산만 했었다"며 "학교 수가 많다보니 제대로 집행됐는지 확인은 실제 어려워 꼼꼼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경남교육청 "감사 수용 못해, 협조하지 않을 것"


이에 대해 경남교육청은 자료 제출은 그동안 해왔던대로 하겠지만 감사는 거부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박 교육감도 공식적으로 거부 의사를 이미 밝혔다.

경남교육청 유원상 감사관은 "도 감사반이 학교를 찾아가더라도 아이들이 수업 받고 있는 학교 현장에서의 감사는 수용할 수 없다"며 기존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감사 거부가 자칫 급식 비리가 있는 것처럼 오해의 소지가 비춰질까봐 감사원에 감사도 이번 주 중 청구할 계획이다.

유 감사관은 "도청 감사를 거부하면 내부적으로 무엇을 감추고 있는게 아닌가라고 호도되고 있어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상급 외부감사 기구인 감사원에 감사 협조를 요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육청에 자체 감사 기구가 없는 것도 아니고 매년 감사 수준 이상으로 급식을 확인하고 있는데, 협조 요청을 하면 모를까 또다시 확인 감사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 "아이들 먹는 급식비 또 쟁점화, 학교 현장 혼란 우려"

지금 학교 현장은 민감할 때다. 다음달 13일 수능을 앞두고 있고, 기말 시험 등 학교 현장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으로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때문에 학교 현장에서 불만도 나오고 있다.

송병권 도 감사관은 이에 대해 "집행 당사자가 학교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하는 것"이라고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학교 내 혼란은 물론, 애꿎은 학교가 갈등의 장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창원의 한 학교장은 "교직 생활 수십 년을 해도 도교육청, 교육지원청도 아닌 지자체가 갑자기 학교를 감사한다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고, 의아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는 아이들을 교육하는 기관인데 감사로 교육 현장이 혼란스러울 수도 있는 등 자칫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어 감사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학교에서는 도교육청 지침대로 급식비 예산을 짜임새 있게 쓰고 있고, 시대가 바낀만큼 계약 관계 등 예산도 투명하게 집행되고 있어 낭비적 요소는 찾아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다시 아이들이 먹는 급식 예산을 가지고 쟁점화 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양 기관의 갈등이 무상급식 예산 삭감 등으로 이어져 결국 피해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벌써 이번 특정감사가 도의 예산 부족을 이유로 급식비 중단의 빌미로 사용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추측이 학교 현장에서부터 파다해지고 있다.

앞서 홍준표 지사는 특정감사를 거부하면 내년 무상급식 예산을 편성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다른 한 학교장은 "항간에는 도가 급식 예산을 감축시키기 위해서 사전 포석으로 현장 확인차 온다는 소문이 있어서 듣고 보니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참교육학부모회 김미선 경남지부장은 "도가 감사를 받지 않으면 예산이 중단될 수도 있다는 말은 도민들을 대상으로 협박하는 것도 아니고 도에 존재하는 독립된 기관으로 할 행사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학생들이 밥 먹는 급식비를 가지고 흥정도, 힘겨루기도 아닌 어른다운 현명한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내년 예산 심의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무상급식비를 주지 않겠다는 꼼수로 보이고, 권력을 가진 사람이 힘으로 약자를 누르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경남 시민사회단체들도 경남도와 교육청간의 무상급식 감사 대립과 관련한 대책회의를 열고 조만간 입장을 정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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