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신불수에 다리절단도 3등급… 원성사는 요양보험

등급 판정 지나치게 인색, 1등급 인정 2008년보다 2만 명이나 줄어

몸이 아픈 노인들을 돕기 위해 마련된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지나치게 인색한 등급 판정으로 원성을 사고 있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안 모(74) 씨는 뇌경색으로 반신불수가 된 데다 당뇨병까지 앓자 6년 전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신청해 3등급으로 판정받았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본격 시행된 노인요양보험제도는 홀로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노인이 요양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장기요양급여를 제공하는 사회보험제도.

안 씨가 받은 3등급은 일상생활에서 '부분적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로, 올해 7월 등급 개정이 이뤄지기 전까지 가장 낮은 수준의 등급이었다.

심지어 안 씨가 당뇨 합병증으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고도 요양보험 등급은 3등급에서 더 높은 등급으로 상향되지 않았다.

안 씨의 병세는 더욱 악화해 남은 왼쪽 다리까지 절단했고 지난해는 치매까지 찾아왔다.

그제야 안 씨는 '상당 부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2등급 판정을 받고 지난 6월 요양소에 입소했다.

자신도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으면서 10년 넘게 안 씨를 돌보던 아내 신 모(62) 씨는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다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신 씨는 "치매로 밤마다 베개를 던지는 남편을 돌보느라 내 입이 돌아갈 정도로 잠도 자지 못한 채 고생했다"며 "요양사가 와도 하루 3시간가량만 도와주니 병원에 약을 받으러 다녀오기 바빴다"고 하소연했다.

자료제공 : 김미희 의원실
통합진보당 김미희 의원실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요양 등급을 인정받은 노인은 2008년 21만 4,480명에서 올해 6월 39만 3,927명으로 184% 늘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1등급 판정자는 5만 7,396명에서 3만 7,208명으로 오히려 2만 명가량(35.2%)이나 줄었다.

김미희 의원 측은 "정부가 '재가 우선 공급' 원칙에 집착한 나머지 요양 등급을 급격히 떨어뜨린 결과로 보인다"며 "1등급은 2, 3등급으로, 2, 3등급은 등외자로 급격히 밀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정부의 등급 판정이 지나치게 인색하다 보니 중증 질환 노인들은 실제 필요에 턱없이 부족한 지원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빈곤층 노인은 요양보험에서 낮은 등급을 받으면 자신의 돈을 들여 추가로 요양사를 고용하거나, 요양 시설에 입소할 수 없어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은 "1등급은 대부분 중증 환자여서 사망자로 인한 자연감소가 많다"고 해명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해마다 1등급 사망자가 1만 8,000여 명에 달한다"며 "아울러 제도 도입 초기에 1등급 해당 중증 환자가 급히 신청했고, 이후 차츰 경증 환자들이 신청하면서 마치 1등급이 감소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 제도의 취지는 치료가 아니라 장기 요양에 있다"며 "등급 판정 기준은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인가를 주로 고려하기 때문에 일반 상식에 비춰 기준이 엄격해 보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 씨의 경우에도 뇌경색이 호전될 가능성이 남아 있었고, 의족을 이용하면 거동할 수 있으므로 장기 요양 취지로 보면 낮은 등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등급 판정 과정은 물론 노인 복지 체계의 근본적인 한계 탓이라고 지적한다.

공공운수노조 최성화 비정규전략조직국장은 "장기 요양이 필요한 수준을 지표화해 판정한다지만, 장애나 질병의 중증도에 따라 정하는 게 아니어서 기준이 모호하다"며 "국민건강보험공단 담당자가 단 한 번 심사에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또 "'꼼짝 못 하느냐', '움직일 수 있느냐'는 식으로 단순하게 등급을 나누기 때문에 신청자들이 심사 때 움직일 수 없는 척 연기해 오히려 등급을 높게 받는 경우도 있다"며 "실제 장애가 심각한 노인이 낮은 등급을 받고, 장애가 덜한데도 1등급을 받는 식"이라고 주장했다.

사회공공연구원 제갈 현숙 연구위원은 "요양보험 외에는 기껏해야 노인돌봄서비스뿐, 사실상 노인 복지 제도가 전무한 현실이 문제의 출발점"이라고 주장했다.

제갈 현숙 연구위원은 "안 씨의 경우 의료적 지원이 중요한데 건강보험 등 다른 제도로는 간병인·요양사 등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없다"며 "결국 장기 요양 취지에 맞지 않아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더라도 이 제도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박근혜 정부가 노인 복지 보장을 강조하고 요양보험도 치매 등급을 추가하는 등 등급 판정 대상 자체는 크게 늘렸다"면서도 "하지만 보험이 아닌 조세 재정이 필요한 보완 제도는 새로 구축하지 못한 채 오히려 기존 제도도 축소됐다"고 말했다.

제갈 연구위원은 이어 "다양한 노인 복지제도를 구축해 다양한 장애 노인의 복지 욕구를 정확하게 판정하고, 이에 맞는 맞춤형 복지서비스 제공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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