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포스트시즌에 나서지 못한 중하위권 팀들에겐 남의 얘기다. 부푼 꿈을 안고 시작했으나 씁쓸하게 시즌을 마감했다.
특히 이들 팀 사령탑은 혹독한 가을을 맛봤거나 그럴 처지에 놓였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에 남을 레전드들이라 더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이만수 SK, 김시진 롯데, 선동열 KIA, 김응용 한화 감독(성적 순으로)이다. 하나 같이 한국 야구를 주름잡았던 인물들이다.
▲김시진, 구단과 갈등 '마음의 짐' 놓다
가장 먼저 지휘봉을 내려놓은 전설은 김시진 감독(56)이다. 17일 LG와 홈 최종전을 앞두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 임기가 1년 남았지만 시즌 내내 구단과 빚은 갈등에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모양새가 됐다.
당초 롯데는 지난 시즌 뒤 FA(자유계약선수) 최대어 강민호를 75억, 거포 최준석을 35억 원에 데려오는 등 의욕적인 스토브리그를 보냈다. 당연히 목표는 우승이었다. 하지만 강민호의 부진과 외국인 타자 히메네스의 태업 등 타선 침체가 겹쳐 7위로 시즌을 마감해야 했다.
우승에 조급했던 구단은 역시 가을야구가 무산된 지난해부터 김 감독을 압박했다. 권영호 수석코치를 경질했고, 올해는 강도 높은 훈련을 지휘한 권두조 수석코치도 선수들의 반발로 물러났다. 정민태 투수코치는 3군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이에 올 시즌 중 김 감독이 사퇴 의사를 밝혔고, 구단이 이를 수리까지 했으나 그룹 수뇌부의 반대에 직면해 무산됐다.
김 감독은 80년대를 대표하는 우완 투수였다. 85년(25승)과 87년(23승) 두 번의 다승왕을 차지했고, 85년에는 탈삼진(201개)과 최다 이닝(269⅔)을 기록하기도 했다. 통산 124승73패 평균자책점(ERA) 3.12의 성적을 냈다. 해태(현 KIA) 선동열 감독에 맞선 삼성의 우완 에이스였다.
▲이만수 "친구야, 나도 간다"
이만수 감독(56)도 17일 넥센전이 마지막이 됐다. 당초 이날 경기 전 김 감독의 사퇴 소식을 접한 이 감독은 "내 친한 친구인데"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둘은 80년대 삼성 제 1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배터리다. 85년에는 전후기 통합 우승을 견인했다. 이 감독은 84년 사상 첫 타격 3관왕(타율, 타점, 홈런)을 이뤘고, 83~85년 역시 사상 첫 홈런왕 3연패를 달성했다. '헐크' 별명에 걸맞는 활약이었다.
하지만 이 감독도 지도자로는 현역 시절만큼은 되지 못했다. 2011년 김성근 감독의 뒤를 이어 시즌 중 SK를 맡은 이 감독은 2012년까지 2년 연속 KS 진출을 이끌었지만 지난해와 올해는 가을야구와 인연이 없었다.
특히 올 시즌은 외국인 선수 잔혹사와 팀 주축의 부상 악령을 떨치고 끝까지 4위 싸움을 이어갔다. 최종전에서 이겼다면 4위가 됐지만 넥센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 감독은 "선수들과 끝까지 믿어준 구단에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올해를 끝으로 계약이 끝나는 이 감독은 "오늘(17일)이 감독 생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김응용-선동열, 씁쓸한 '사제 최종전'
김응용, 선동열 감독은 씁쓸한 사제 최종전을 치렀다. 17일 광주에서 맞대결을 했다. 둘은 8, 90년대 해태 왕조를 구축한 핵심 인물들이다. 김 감독은 선 감독을 앞세워 6번의 KS 정상을 일궈냈다. 하지만 2014년의 끝은 천양지차였다.
프로야구 최고령 사령탑인 김 감독(73)은 2년 연속 꼴찌의 비애를 경험했다. 통산 최다인 10회 KS 우승에 빛나는 명장의 말년이 쓰거웠다. 1983년부터 해태(현 KIA), 2001년부터 삼성을 맡아 통산 22시즌 동안 최하위는 한번도 없었다.
'동열이도 가고, 종범이도 가고' 유행어를 만들었던 해태 암흑기에도 최하위는 면했다. 1999년과 2000년 승률에서 7위와 6위를 기록한 게 최저 성적이었다. 그런 김 감독이었지만 한화의 전력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난해 정근우-이용규를 137억 원에 영입했지만 밑빠진 독이 물 붓기였다.
사실 선수로서 가장 화려한 이력을 지닌 사령탑은 선 감독이다. 국보급 투수로 불리우며 0점대 ERA를 4번이나 기록하며 통산 1.20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보였다. 8번이나 타이틀을 차지했다. 다승왕 4번, 탈삼진왕 5번을 기록했다.
하지만 감독으로서 시련의 계절을 맞고 있다. 사령탑 첫 해인 2005년과 06년 연속 삼성의 KS 정상을 이끌며 탄탄대로를 걷는 듯 했다. 그러나 2010시즌 KS 준우승을 이끌고도 지휘봉을 놓은 뒤 내리막길이다.
2012년 고향팀 KIA를 맡았지만 3년 연속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가을야구에 실패했다. 그룹 수뇌부의 신뢰가 두텁지만 재계약은 어렵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