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넥센은 일찌감치 플레이오프(PO) 진출을 확정한 상황. 이미 지난 7일 최소 정규리그 2위를 확보했다. 포스트시즌(PS) 대비를 위해 주전들을 일부 쉬게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염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다른 팀의 PS 진출이 걸린 경기인 만큼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염 감독은 "최근 선수들에게 상대를 가리지 않고 하던 대로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고 강조했다.
이날 경기에서 5위 SK는 반드시 이겨야 4강 진출을 노릴 수 있는 상황. 그리고 1경기 차 4위인 LG가 같은 시각 사직 롯데 원정에서 지면 SK가 4위로 뛰어오른다. 가을야구의 주인공이 바뀌는 셈이다. LG가 이기거나 SK가 지면 순위는 바뀌지 않는다.
염 감독은 "선수들 사이에서 '누가 더 유리한가'를 놓고 얘기가 나오더라"면서 "그래서 아예 생각도 하지 말라고 해줬다"고 힘주어 말했다. 넥센은 올해 LG에 9승7패, SK에 전날까지 9승5패1무를 기록했다.
그러나 염 감독은 "지금이 어느 때인데 상대를 고르다가는 팬들이 다 안다"고 휘갑을 쳤다. 이어 "또 그렇게 골랐다가 낭패를 보기 마련"이라면서 "모든 것은 순리대로 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넥센, 베스트 멤버-필승 계투조 투입
염 감독의 공언대로였다. 넥센은 톱타자 서건창을 비롯해 박병호, 강정호, 김민성 등 베스트 멤버를 투입했다. 당초 이날 선발 투수도 포스트시즌을 대비해 마무리 손승락을 시험 등판시키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예정대로 소사를 내보냈다.
특히 넥센은 이날 1회만 대기록이 2개나 나왔다. 서건창이 프로야구 역사상 첫 한 시즌 200안타 대기록을 달성했고, 2회는 강정호가 유격수 사상 첫 40홈런 고지를 밟았다. 그럼에도 넥센은 이들을 교체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게 혹시라도 모를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넥센은 견고했다. 5회말 유한준이 곧바로 솔로포로 5-1로 달아났고, SK가 7회 정상호의 홈런으로 2-5로 추격해오자 7회말 유한준이 다시 적시타로 4점 차 리드를 만들었다.
넥센은 선발 소사가 6⅓이닝 2실점한 뒤 물러나자 조상우를 투입했다. 8회초 1사 2루에서는 한현희가 등판했다. 넥센의 필승 공식이었다.
넥센의 교체는 승부가 기운 뒤 마지막 공격인 8회말에야 나왔다. 그나마도 지명타자 이성열의 대타로 나온 로티노가 시즌 2호 홈런을 날리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이후 역시 대타로 나선 박헌도를 뺀 나머지 수비진은 베스트 그대로였다. 타격왕 경쟁을 벌이던 서건창은 9회 201호 안타로 신기록을 늘리기도 했다.
결국 SK는 마무리 손승락까지 나선 넥센을 넘지 못하고 2-7 패배를 안아야 했다. LG의 승패와 관계 없이 SK의 가을야구가 무산된 순간이었다. LG가 포스트시즌의 막차를 탄 순간이기도 했다.
같은 시각 LG도 롯데에 리드를 당하고 있었다. 만약 SK가 넥센을 이겼다면 순위는 바뀔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염경엽 감독의 올돋은 소신에 LG와 SK의 운명은 바뀌지 않았다. 그게 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