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여의도 정가에서는 김무성 대표가 전날 중국 상하이에서 밝힌 '봇물론'이 최대 화두였다. 신문과 방송들은 일제히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 논의의 봇물이 터지게 된다. 봇물이 터지면 막을 길이 없다"는 김 대표의 발언을 대서특필했다.
그런데 김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국정감사 대책회의에 일부러 참석해 자신의 전날 발언을 뒤집는 듯한 말로 또 한번 파장을 일으켰다. 김 대표는 "제 불찰로 연말까 지 개헌논의가 없어야 되는데 크게 보도된 것에 죄송하다.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당에서는 개헌 논의가 없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통신사를 필두로 각 언론사들이 김 대표의 발언을 속보로 전하기 시작했다. 민감한 개헌 발언은 불찰이며 해외 순방중인 대통령에게 죄송하다는 내용은 전날 '봇물론'과는 배치되는 것으로 풀이됐기 때문이다.
같은 시각 새정치연합은 마찬가지로 주요 지도부가 참석한 가운데 확대간부회의를 하고 있었다. 세월호 특별법 후속 협상과 남북 정상급 회담, 누리과정 예산 문제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참석자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김 대표의 '1보 후퇴'에 따른 거센 파장이 아직 미치지 않은 듯했다.
그 순간 박지원 비대위원이 추가 발언을 자청하고 나섰다. 박 비대위원은 이미 '사이버 검열' 등을 지적하며 발언을 마친 터였다. 지난 15일 남북한의 비공개 회담이라는 폭발력 있는 이슈를 최초로 공개한 전력 덕분에 기자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대통령의 한 말씀에 모든 것이 좌지우지돼서는 안 된다"며 말문을 연 박 비대위원은 "김 대표가 개헌 발언을 하자마자 청와대에서 발끈한 것 같다. 집권 여당 대표가 청와대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정치도 불행하지만 이걸 (청와대가) 지시해서 여당 대표가 죄송 운운하는 건 있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개헌은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 후보 때 공약한 사항"이라며 "국민의 요구이자 국회의 요구인 개헌은 계속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의 참석자는 물론, 취재기자들도 회의장 밖의 '파장'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박 비대위원이 순발력 있는 대응으로 김 대표의 발언을 적절히 맞받아친 것이다.
대표적 개헌론자인 우윤근 원내대표도 마이크를 넘겨받아 "집권 여당의 대표가 개헌 얘기를 했다가 청와대 눈치를 보고 있다. 이런 사태야말로 대한민국이 제왕적 대통령을 갖고 있으며 이를 고쳐야 한다는 걸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하자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완벽하다. 더 보탤 말이 없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한편 김무성 대표는 회의 뒤 기자간담회에서 '발언이 또 다른 정치적 해석을 낳고 있다'는 지적에 "대통령에 대한 예의를 갖추려고 한 것"이라며 "과거에도 (개헌 논의는) 정기국회 다음이라는 얘기를 항상 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