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① 무능한 정부, 부모들의 피눈물
%7B"text":"② 일베에서 정부·여당까지… 패륜시대","bold":true%7D
③ 잊혀지는 팽목항
④ 아빠는 네가 되었다
그러나 참사가 난 지 반년이 지나도록 어이없고 황당한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유례없는 대참사의 진상을 밝혀달라"는 유가족들의 당연한 요청이 반사회적인 주장인 양 매도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 누가 유가족에게 돌을 던지나
지난 7월 17일 극우단체인 어버이연합 회원이, 다음날에는 '엄마부대 봉사단'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있는 세월호 농성장에 나타나 유가족의 농성 배경에는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비난했다.
지난달 6일에는 인터넷 극우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 일명 '일베' 회원 등이 단식농성장 앞에서 음식을 먹는 이른바 '폭식투쟁'을 진행했다.
같은 달 28일에도 한국전쟁 직후 반공분자 색출을 내걸고 대규모 학살을 자행했던 서북청년단을 재건하겠다는 사람들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분향소에 있는 추모 리본을 제거하겠다며 경찰과 충돌을 빚었다.
이들 극우집단은 한결같이 유가족이 과도한 특혜를 요구하며 정부와 국가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어 비탄에 빠진 부모들을 조롱하는 패륜적 행위가 버젓이 자행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 앞장서서 유가족에게 비난과 의심의 칼날을 들이댔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불과 나흘 만에 "북한이 선동하기 시작했다"며 '종북 색깔론'으로 선제 대응의 포문을 열었다.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이 지난 4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북괴의 지령에 놀아나는 좌파 단체와 좌파 사이버 테러리스트들이 정부 전복 작전을 전개할 것"이라며 정부 비판 여론에 '종북' 혐의를 씌운 것이다.
일부 여당 의원들은 유가족에 대한 악성 루머를 직접 퍼뜨리기도 했다.
권은희 의원은 지난 4월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실종자 부모가 울부짖는 동영상과 함께 "실종자 가족으로 행세하는 선동꾼이 있다"는 내용의 글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실었다.
세월호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심재철 의원도 지난 7월 18일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글을 휴대전화 메시지(카카오톡)로 보낸 것으로 밝혀져 유가족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세월호 참사 100일째를 맞은 같은 달 24일에는 주호영 의원이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에 비유하고 유가족이 특혜를 주장한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진상을 알려달라는 유가족의 몸부림에도 '외부세력이 선동한 결과가 아니냐'는 의심이 꾸준히 제기됐다.
지난 5월 1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황우여 당시 당 대표와 심재철 의원 등은 "이 틈에 정치적 선동과 악용을 꾀하는 정치적 세력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세월호를 이용해 점차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정치 선동이 당장 중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8월 7일 황우여 사회부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유민 아빠' 김영오 씨의 단식농성을 놓고도 안홍준 의원은 "제대로 단식을 하면 그 시간을 견딜 수 있느냐, 벌써 실려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해 구설에 올랐다.
"세월호 참사의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다"며 눈물까지 보인 박근혜 대통령 역시 진상규명의 목소리를 외부세력의 선동이라고 비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난달 16일 추석 연휴 후 처음 열린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당시 여야의 2차 협상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못 박으면서 "세월호 특별법도 외부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민생과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명분을 내걸며 사실상 세월호 참사를 잊자고 주장한 소위 '보수 언론'의 보도는 그 사례를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 김언경 사무처장은 "보수 언론은 특별법 필요성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며 "대신 단식에 나선 김영오 씨에 대한 흥미 위주의 왜곡된 내용을 그대로 보도하거나 유가족 폭행 시비를 지나치게 부풀려 보도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유가족에게 불리한 내용은 강조하고 유리한 내용은 보도하지 않으면서 유가족을 고립시켰다"며 "국민의 발목을 잡는 특별법, 유가족으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했다.
◈ "국민 분열 이용하는 야만의 정부, 참사 직후부터 '유가족 고립시키기'"
세월호 유가족 법률대리인 박주민 변호사는 "'유가족 고립시키기'는 참사 직후부터 시작됐다"며 "교통사고론 등으로 정부의 책임을 피하더니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본격적으로 유가족에게 공세를 취했다"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진도에서 사복경찰이 유가족을 미행하다 수차례 발각됐을 때부터 가족에 대한 통제가 시작된 것"이라며 "구조현장에 대한 왜곡된 언론 보도에 유가족들은 억지를 쓰는 존재로 고립됐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역시 정부와 여당이 유가족을 반정부 집단인 양 몰아세웠다고 지적한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와 여당이 진상규명 자체를 진영 싸움으로 몰아넣었다"고 진단했다.
한 교수는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다룰 사안을 정파적 대립관계로 몰아넣으면서 자신들의 책임을 모면하려는 도피로를 만든 것"이라며 "정부가 가장 큰 잘못을 저질렀는데 정부는 빠지고 여야의 대립으로 몰았다"고 설명했다.
고려대학교 조대엽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와 여당이 국민 정서를 이용해 야만적 질서를 만들고 있다"며 "증오와 적대의 역사를 추가하는 사건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제주 4·3사건이나 광주민주화운동처럼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비난 역시 국가의 폭력적 개입으로 한 집단을 억압하면서 증오와 적대의 체험이 사회 전체에 누적되는 사건이라는 설명이다.
조 교수는 "총칼을 휘둘러야만 폭력인 게 아니다"라며 "살릴 수 있는 생명을 죽게 내버려두고, 진상규명을 회피하며 특별법 타협을 장기간 끌어온 것도 폭력"이라고 강조했다.
또 "국민과 국민의 대립구도를 만들고 그 사이로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는 식"이라며 "국민을 통합시킬 책임을 지는 정상적인 정부라고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