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먹구름'…초이노믹스 약효 사라진 한국은?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박종민기자
"경제의 회복세가 미약하다. 수요진작과 구조개혁 정책이 필요하다." 현지시간으로 10~11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총회에서 강조된 내용이다. 경기부양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발언들과 맥을 같이 한다. 우리 증시가 연일 급락을 거듭하고 있는 것도 대내적 문제 외에, 기본적으로 세계 경제가 경기 둔화의 공포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 최경환 효과 끝, 박스권 하단 찾아가는 코스피

13일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13.71포인트(0.71%) 떨어진 1927.21에 장을 마쳤다. 지수는 시작부터 1920선을 무너뜨리며 1919.48로 시작했다. 지수를 끌어내린 것은 7거래일째 '팔자' 행진을 벌이면서 이날 하루에만 3206억원어치 물량을 내놓은 외국인이다. 코스피 지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전하던 코스닥 지수도 이날 4% 가까이 급락하면서 연중 최고 낙폭을 기록했다.

"기업실적도 안 좋고 내수가 진작되면서 소비가 늘어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동안 막연한 정책기대감에 코스피가 상승했었던 것이다. 펀더멘털이 그대로면 코스피 역시 박스권 돌파의 동력을 가질 수 없다. 세계경제까지 고려했을 때 올해 박스권 하단이었던 1880까지 내려가는 것도 각오를 해야 한다" (이종우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미국의 돈풀기, 즉 양적완화가 이달 말로 종료되고 금리 인상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 달러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달러 강세에 외국인 입장에선 차익을 노리겠다는 심리가 자극 받기도 했다. 15일 한국은행의 금리인하 여부에 시장의 눈이 쏠린 가운데 한미 간 금리 차이 때문에 달러 인출 추세가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성한 곳 없는 세계 경제...받쳐줄 곳도 없다


"세계가 가라앉고 있다. 두자릿수 투자 실적을 내던 시대는 끝났다" (세계최대 채권펀드 핌코를 창업한 빌 그로스)

일단 유로존은 IMF로부터 '트리플딥(3중침체)'가능성이 40%, 디플레이션 발생 가능성도 30% 라는 경고를 들었다. 유럽 경제대국인 독일의 8월 수출이 전월 대비 5.8%가 줄어드는 등 5년 만에 최악의 감소폭을 기록했다.

일본 역시 IMF으로부터 앞으로 1년 동안 침체에 빠질 위험이 24%라는 평가를 받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윤전기 아베'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천문학적인 돈 풀기에 나섰지만, 고용의 질이 떨어지고 정부부채가 국내총생산의 225%에 이르는 등 향후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주요 경제 축들이 이렇게 고전하면 그동안 이를 받쳐줬던 게 중국의 경제성장이었다. 그런데 요즘 중국도 심상치가 않다. 중국이 올해 물가 성장률인 7.8%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지만, 중국은 인위적인 경기부양은 계획이 없다고 못 박았다. 중국에 걸었던 국제 시장의 기대도 같이 식었다.

"중국 경제가 하강 압력을 받고 있지만 하나의 지표 변화 때문에 정책 기조가 심각하게 바뀌지 않을 것"(러우지웨이(樓繼偉) 중국 재정부장)

신흥시장의 또 다른 대표주자인 브라질, 러시아 등도 성장률 전망치가 4월에 비해 0.3% 가량 낮아졌다. 브라질은 국제적인 원자재 가격하락에 영향을 받았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다.

"저성장이 영구고착화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영국 시장조사업체 캐피탈 이코노믹스)

그나마 미국이 잘 나간다는 얘기를 듣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크게 나은 사정도 아니다. GDP와 실업률 등 '지표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수준을 회복하긴 했다. 하지만 올해 임금 인상률은 2%에 불과했다. 미 정부 관계자들은 고용지표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견고한 임금 상승 없이는 활발한 고용시장을 상상하기 어렵다"(찰스 에반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

미국은 또 주가가 경기에 비해 너무 빠르게 오르면서 미국 주식시장에서는 거품 논쟁마저 일고 있다.

◈ 세계 경제가 직면한 것은 결국 '유효 수요 부족'

이런 상황에서 최경환 부총리가 취임하자마자 내수 진작에 드라이브를 걸었던 것은 전세계적 흐름과 맥을 같이했다. 경제의 장기침체 원인이 소비와 투자 등 유효수요 부족에 따른다는 분석 말이다. 주요 선진국들의 돈 풀기는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 수요를 자극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최 부총리는 '확장적 거시정책 -> 노동시장 참여와 소비ㆍ투자 활성화 -> 성장률 증가'라는 다소 고전적인 해법을 제시한 바 있다. 이번 IMF 공동선언문도 세계경제리더들의 위기의식과 해법이 최경환노믹스와 닮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에 미치지 못하는 국가는 경제 구조개혁과 함께 확장적 거시경제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 (IMF 총회 공동선언문)

◈ 수요 부족발 장기부진, 최경환노믹스로 뚫을 수 있을까

한국이 세계경제 침체 국면에서 다른 부분은 정부가 수요를 창출할 만한 여력이 '조금 더 ' 있다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각국은 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했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정부부채가 110%일 정도로 정부 빚이 늘었다. 반면 우리의 정부부채는 2013년 기준 34.3% 정도다.

정부를 떠받치는 건 결국 가계와 기업이라고 했을 때, "우리는 다른 신흥국과 다르다"는 최 부총리의 발언이 얼마나 길게 갈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당장 13일 발표된 8월 예금취급기관의 가계 빚은 사상 최고치를 갱신했다.

우리의 가계부채는 가처분소득의 163.8%로, 가계부채로 인해 위기를 맞았던 미국의 114.9%보다 높다. 부채는 가파르게 느는데 임금수준은 제자리다. 유효 수요라는 거창한 표현이 아니더라도 당장 쓸 돈이 없는 셈이다. 실질임금 상승률은 5개 분기 연속 낮아지다가 지난 2분기에는 급기야 0.2%까지 떨어졌다.

그렇다면 남은 건 기업 쪽이다. 하지만 어닝 쇼크에 시달리는 기업이 의미 있는 수요를 창출할 리 만무하다. 유가증권상장사의 경상이익률(4.62%)은 2009년 이후 최저수준이다. 가계와 기업이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주요 축이라고 했을 때, 우리의 가계는 수요 창출은커녕 시한폭탄이고 비상체제에 들어간 기업들은 돈만 쌓아놓고 있는 셈이다.

유효 수요 부족이 원인이라는 최 부총리가 문제 인식은 맞되, 잇따라 내놓은 정책들이 한국경제가 봉착한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지 여부는 여전히 쟁점이다. 확실한 것은, 그동안 우리 증시를 떠받쳤던 외국인들이 한국 경제에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의 실적은 지지부진하고 가계는 빚에 허덕이는 상황을 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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