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안내에 따라 학생들이 차례로 무대에 올라 영어 공연 연습 삼매경에 빠져있다.
청소년 시절 가난으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움의 뜻을 펼치지 못한 40~80대 여성 만학도를 주로 가르치는 일성학교에서 영어 말하기 대회를 준비하는 중이다.
얼굴마다 주름은 내려앉았지만, 헷갈리는 영어대사마다 한글 발음을 몰래 적어둔 쪽지를 손에 감춘 채 소품과 의상을 챙기며 깔깔대는 모습은 영락없는 여중생, 여고생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며 분장을 한 채 무대 곳곳을 뛰어다니다 다리 사이로 금빛 상자를 던지자 구경하던 다른 참가 학생들은 폭소 만발이었다.
이 씨는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그때부터 연습한다"며 "남편은 '이왕이면 예쁜 공주나 왕자를 하지 왜 이번에는 마녀 역할을 맡았느냐'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고 웃었다.
충청남도 당진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세 차례나 갈아타며 학교에 온다는 정순정(63) 씨도 "지금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며 환한 표정을 보였다.
공주 라푼젤 역을 맡았다는 정 씨는 "가발을 사러 남대문 시장에 다니고 의상도 사느라 인터넷을 뒤지는 과정이 정말 즐겁다"며 "음악과 연극을 공부한 두 딸이 연기 지도에 분장까지 돕겠다고 두 팔을 걷고 나섰다"고 즐거워했다.
집안 형편으로 학교에 갈 수 없었다는 정 씨는 "친구가 일성학교를 소개해준 순간 스프링처럼 들고 일어나 '학교에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며 "내 또래 사람들이 나처럼 공부해서 손주들과 대화도 나눌 수 있는 할머니가 되기를 바란다"고 격려했다.
젊은 시절부터 팝송을 즐겼다는 이향주(57) 씨도 "학교를 소개해준 딸 외에는 학교 다닌다는 사실을 모른다"며 "딸로서는 엄마가 배우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을 텐데 이제 내가 대학 갈 목표까지 세우고 공부하니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몸은 고되지만, 배움의 한을 마음껏 풀 수 있다는 이들은 공부의 즐거움을 빼앗길까 두렵기까지 하다.
남편 없이 두 남매를 키우며 안해본 일 없이 온갖 고생을 했다는 임선희(60) 씨는 "자식들에게 부담주기 싫어 아직도 일을 한다"며 "새벽 1시까지 일을 하고 집에 돌아가도 자지 않고 밀린 공부를 한다"고 말했다.
임 씨는 또 "고등학교는 등록금을 내야 하는데 가고 싶은 미지의 세계의 문이 닫힐까 걱정이 든다"면서 "공부를 줄이고 일을 더 해서라도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일성학교 김상현 교무부장은 "처음에는 '콩글리쉬'만 튀어나와 속상해하던 학생들이 변한 모습에 교사도 학생도 뿌듯하다"며 "이 대회를 보고 더 많은 분들이 배움의 문을 두드리면 좋겠다"고 밝혔다.
구슬땀을 흘리며 연습에 매진한 만학도들은 10일 오후 2시 마포아트센터 대공연장에서 중학생 8팀, 고등학생 7팀 등 총 15팀으로 출전해 갈고 닦은 영어 실력을 뽐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