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여학생들의 영어 반란 "제2의 인생 살아요"

만학 주부 교육기관 일성여중고, 10일 영어 말하기 대회 개최

2년제 학력인정 평생학교로 40~80대 만학도들이 공부하는 곳인 일성여자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영어말하기 대회를 앞두고 8일 오후 리허설 중 자신들의 소개가 나온 전단지를 보며 미소짓고 있다. 황진환기자
지난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 강당.

선생님 안내에 따라 학생들이 차례로 무대에 올라 영어 공연 연습 삼매경에 빠져있다.

청소년 시절 가난으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움의 뜻을 펼치지 못한 40~80대 여성 만학도를 주로 가르치는 일성학교에서 영어 말하기 대회를 준비하는 중이다.



얼굴마다 주름은 내려앉았지만, 헷갈리는 영어대사마다 한글 발음을 몰래 적어둔 쪽지를 손에 감춘 채 소품과 의상을 챙기며 깔깔대는 모습은 영락없는 여중생, 여고생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며 분장을 한 채 무대 곳곳을 뛰어다니다 다리 사이로 금빛 상자를 던지자 구경하던 다른 참가 학생들은 폭소 만발이었다.

2년제 학력인정 평생학교로 40~80대 만학도들이 공부하는 곳인 일성여자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영어말하기 대회를 앞두고 8일 오후 리허설을 갖고 있다. 황진환기자
최고령자 69살 이기남 씨는 "집이 있는 인천 영종도에서 학교로 오면서도 4년 동안 지각 한 번 없었다"며 "배움의 즐거움에 잠 잘 시간도 아깝다"고 말했다.

이 씨는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그때부터 연습한다"며 "남편은 '이왕이면 예쁜 공주나 왕자를 하지 왜 이번에는 마녀 역할을 맡았느냐'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고 웃었다.

충청남도 당진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세 차례나 갈아타며 학교에 온다는 정순정(63) 씨도 "지금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며 환한 표정을 보였다.

공주 라푼젤 역을 맡았다는 정 씨는 "가발을 사러 남대문 시장에 다니고 의상도 사느라 인터넷을 뒤지는 과정이 정말 즐겁다"며 "음악과 연극을 공부한 두 딸이 연기 지도에 분장까지 돕겠다고 두 팔을 걷고 나섰다"고 즐거워했다.

집안 형편으로 학교에 갈 수 없었다는 정 씨는 "친구가 일성학교를 소개해준 순간 스프링처럼 들고 일어나 '학교에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며 "내 또래 사람들이 나처럼 공부해서 손주들과 대화도 나눌 수 있는 할머니가 되기를 바란다"고 격려했다.

젊은 시절부터 팝송을 즐겼다는 이향주(57) 씨도 "학교를 소개해준 딸 외에는 학교 다닌다는 사실을 모른다"며 "딸로서는 엄마가 배우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을 텐데 이제 내가 대학 갈 목표까지 세우고 공부하니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몸은 고되지만, 배움의 한을 마음껏 풀 수 있다는 이들은 공부의 즐거움을 빼앗길까 두렵기까지 하다.

남편 없이 두 남매를 키우며 안해본 일 없이 온갖 고생을 했다는 임선희(60) 씨는 "자식들에게 부담주기 싫어 아직도 일을 한다"며 "새벽 1시까지 일을 하고 집에 돌아가도 자지 않고 밀린 공부를 한다"고 말했다.

임 씨는 또 "고등학교는 등록금을 내야 하는데 가고 싶은 미지의 세계의 문이 닫힐까 걱정이 든다"면서 "공부를 줄이고 일을 더 해서라도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일성학교 김상현 교무부장은 "처음에는 '콩글리쉬'만 튀어나와 속상해하던 학생들이 변한 모습에 교사도 학생도 뿌듯하다"며 "이 대회를 보고 더 많은 분들이 배움의 문을 두드리면 좋겠다"고 밝혔다.

구슬땀을 흘리며 연습에 매진한 만학도들은 10일 오후 2시 마포아트센터 대공연장에서 중학생 8팀, 고등학생 7팀 등 총 15팀으로 출전해 갈고 닦은 영어 실력을 뽐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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