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눈' 기자들이 말한다, 인천AG '생생 체험기'

[임종률의 AG 레터]

'이제 마지막이네요' 4일 오후 인천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폐회식에서 대한민국 국기가 계양되고 있다.(인천=윤성호기자)
'이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난달 19일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밤하늘을 수놓았던 불꽃쇼.(자료사진=박종민 기자)
'2014 인천아시안게임'이 16일 동안 열전 끝에 막을 내렸습니다. 지난달 19일 타올라 인천 밤하늘을 밝혔던 성화는 4일 밤 마침내 어둠 속에 소멸됐습니다. 45개국 1만3000여 명 선수단을 비롯해 전 아시아를 울리고 웃겼던 축제는 4년 뒤 자카르타에서 재회를 기약했습니다.

이번 대회는 세계신기록이 14개나 쏟아지는 등 경기 면에서는 풍성한 수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회 시설과 운영 등에서는 미비한 점이 많아 문제가 되기도 했죠. 성화가 꺼지거나 배드민턴 경기장에 정전이 일어났고, 폭우에 경기가 중단되는 등의 사태가 벌어졌고, 일부 자원봉사자들의 태만한 근무 태도와 통역 봉사자들의 이탈까지 탈도 적잖았던 대회였습니다.

대회 시설과 운영 등에 관한 결산 기사를 준비하면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고민이 좀 됐습니다. 워낙 언급할 부분이 많아 엄두가 나지 않는 데다 이미 국내외 유수의 언론들을 통해 충분히 언급됐기 때문입니다.

해서 이번 대회를 직접 취재했던 여러 기자들의 체험을 빌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수들과 각 국 관계자들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전 세계에 타전될 기사를 직접 작성하는 장본인들이 바로 취재진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보고 느낀 것은 기사에 직접 언급되지 않아도 감정과 경험은 보이지 않게 행간에 녹아들 수 있는 까닭입니다. 16일 동안 펼쳐졌던 아시아 기자들의 아시안게임은 과연 어땠을까요?

▲매일 밤 모기와의 전쟁? 아니 혈투

일단 가장 쉬운 사람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역시 이번 대회를 현장에서 취재했던 저 자신입니다.

사실 이번 대회에 대해 비판을 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안방에서 열리는 대회인 까닭에 어지간하면 못 본 척 지나치자는 마음이 없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치러진 대회임을 알기에 없는 살림에 동분서주하는 대회 조직위원회의 사정도 딱했던 터였습니다. (그럼에도 시설과 운영, 판정 등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어 지적하는 기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삶이 무너질 때면 인내의 한계를 넘나들어야 했습니다. 대회 기간 정말 힘들었던 것은 수면이 제대뢰 이뤄지지 못한 점이었습니다. 다름아닌 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혈투' 인천아시안게임 미디어촌에서는 기사를 작성 중이거나 수면을 취할 때면 모기와 전쟁에 일과 잠에 집중하기 어려운 경우가 빈발했다. 오른쪽 사진은 베개에서 잡은 모기의 모습.(자료사진)
이번 대회 미디어촌은 방충망이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창문을 열어놓으면 모기들이 극성을 부렸습니다. 설핏 잠이 들 만하면 앵앵거리는 모기 때문에 눈을 뜨기 일쑤였습니다. 한밤 중에, 새벽녘에 불을 켜고 모기와 숨바꼭질하기를 수 차례. 그야말로 '혈투' 끝에 모기의 사체를 확인하고 나서야 침대에 누워야 하는 상황. 에이스가 와도 편안한 잠은 불가능했습니다.

미디어촌은 일반 분양 직전의 아파트입니다. 이른바 새집 증후군의 우려가 있어 창문을 닫아놓으면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열면 모기가 들끓고,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나마 문을 꼭 닫아놔도 취재 후 귀가하면 창문은 꼭 열려 있었습니다. 객실 청소 때문이었죠. 방에서 반갑게 모기가 반기고 있었습니다.)

숙소 프런트의 해결책은 스프레이 살충제. 맑은 공기를 담보하지 못한 숙소는 유해 가스 혹은 모기의 천국이지 않았을까요? 이번 대회가 유난히 힘들었던 이유는 피로를 해소할 수 없는 수면 때문이었습니다. 더욱이 자정에 가까워서야 귀가하는 국제대회임을 감안하면 취재진에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숙박비 하루 10만 원에 목욕도 못한다고?"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셔틀 버스 안에서, 취재 현장에서 만났던 각 국 취재진은 미디어촌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한 아랍권 기자는 "내 팔을 한번 보라"면서 모기에 물려 퉁퉁 부은 팔뚝을 내밀기도 했습니다.

일본 기자들의 불만도 이유가 있었습니다. 다름아닌 목욕 시설에 대한 부분입니다.

미디어촌에는 욕조가 있지만 마개가 없습니다. 그저 샤워만 할 수 있게 돼 있지 욕조에 물을 받아놓지 못하게 돼 있습니다. 피곤에 쩐 몸을 따뜻한 물에 담그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언감생심이었습니다.

한 일본 기자는 "일본 사람들은 매일같이 몸을 욕조에 담그는데 미디어촌에서는 도무지 그럴 수가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이어 "그럴 거면 아예 욕조를 만들지나 말지, 갖춰놓고 쓸 수 없다면 도대체 왜 갖다놓은 것인가"라고 반문했습니다.

개최국 기자로서 할 말이 없었습니다. 프런트에 물어보니 '이번 대회에 욕조 마개는 제공되지 않습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또 다른 일본 기자는 "미디어촌이 아닌 인천 지역 모텔에 묵고 있는데 훨씬 편하다"면서 흡족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어 "미디어촌은 하루 숙박비가 10만 원 정도 한다는데 모텔은 3만 원"이라면서 "그러나 목욕도 마음껏 할 수 있고, 에어컨도 있어서 정말 만족한다"고 말했습니다. (저와 얘기를 나눴던 일본 기자들은 한국에서도 활동을 많이 하는 터라 익명이 나을 것 같네요.)


▲"다 참을 수 있다, 그러나 소통의 문제는..."

'그래도 사랑해요, 코리아' 국제대회 경험이 많은 요르단의 압델다옘 기자는 교통과 통역 등의 불편에도 고맙게도 인천아시안게임에 대해 나름 후한 점수를 줬다.(자료사진)
요르단의 압델다옘 라예드 압델라제크 기자는 이런 모든 것들은 참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한국은 기온이 높고 습해서 모기가 많은 것은 이해한다"면서 "샤워만 해도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미디어촌 식당 메뉴에 대해 "이슬람 음식인 할랄 종류가 좀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고 넓은 도량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대회 교통편과 통역 등에 대해서는 불만이 나왔습니다. 제 시간에 셔틀 버스가 오지 않아 곤경에 처할 때가 적지 않았다는 겁니다. 압델다옘 기자는 "때문에 택시를 탈 때가 있었는데 서울 등에 비해 비싸더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대회 때문인지 음식과 물품 등도 전반적으로 가격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이슬람권 국가인 만큼 통역도 불편이 따랐습니다. 물론 취재진이야 영어를 하지만 인터뷰를 하는 선수들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압델다옘 기자는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이슬람권 국가 선수들이 제대로 통역을 거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했습니다. 통역자원봉사자들이 대회 기간 중 대거 이탈했다는 사실이 통절하게 느껴지는 지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압델다옘 기자는 "그래도 친절한 자원봉사자와 관계자들 덕에 좋은 기억을 남기고 간다"고 했습니다. 이런저런 불만에 황송하며 미안해 하는 한국 기자를 배려하는 듯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이게 동방예의지국의 손님 대접이라니...

자칫 사소할 수 있는 부분을 자못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어쩌면 이런 작은 부분들이 그 나라의 이미지를 결정할 수 있을 만큼 큰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취재한 가장 최근 국제대회였던 소치동계올림픽이 좋은 예입니다.

무려 54조 원을 쏟아부었다는 소치올림픽은 그 천문학적인 금액과 달리 준비가 미흡했습니다. 그 유명한 쌍둥이 변기와 녹물 수돗물 등은 기자들의 SNS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저 역시 펄펄 뜨거운 물만 나오던 욕조와 작동되지 않던 냉장고 때문에 김치를 잃는 등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에 대한 인식도 당연히 좋지 않았고, 기사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시각이 투영됐습니다.

'이게 손님 대접인가요?' 신발장과 싱크대 등을 포장지로 막아놓은 인천아시안게임 미디어촌 숙소. 마치 당장이라도 이삿짐 센터 직원이 올라올 것만 같다.(자료사진)
이번 대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대회 미디어촌은 겨우 방과 욕실만 개방됐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부엌과 신발장 등은 테이프와 포장지로 덕지덕지 붙여놔 보기 민망할 정도입니다. 곧 분양을 앞둔 귀한 몸이라 행여 상처가 날까 막아둔 겁니다. 화장실에 휴지걸이조차 막혀 있더군요.

막 이삿짐이 도착할 듯한 집에 들어와 있는 듯해 마음이 여간 불편합니다. 하물며 외국 취재진은 오죽하겠습니까. 혹시라도 그들이 자신들을 스쳐지나가는 뜨내기 손님이라고 여기지는 않았을까요? (이미 중국과 일본 매체 들을 통해 대회의 문제점은 적나라하게 소개됐습니다. 여기에는 객관적 시각 외에 마음의 상처도 담겨 있지 않을까요?)

한국은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렸습니다. 손님에 대한 예절과 대접이 융숭하기로 유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손님을 맞는 집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 문제가 많았던 소치도 준비가 덜 됐다는 것뿐이지 손님을 환영한다는 느낌은 가질 수 있었습니다. (김경호 한국체육기자연맹 회장은 각 국 취재진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다녔다고 하더군요.)

▲예산 부족? 제대로만 썼다면...

이번 대회 방충망이 없는 이유는 예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방충망을 설치했다가 나중에 입주민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꿔야 한다는데 10억 원 정도가 든다는군요.

포장지를 뜯어냈을 때도 경우도 마찬가지겠지요. 혹시 생길지 모를 하자보수 공사비도 만만치 않을 테니까요. (선수촌 역시 방충망이 없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경기에 신경써야 할 선수들이 잠을 제대로 잤을지 궁금하군요. 포장지를 붙여둔 것도 마찬가지라고 하네요.)

이번 대회는 예산이 2조 5000억 원 정도가 들었다고 하죠. 광저우 때의 20조 원에 비해 턱없이 낮은 액수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쓰였다면 나름 성공적인 대회가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주경기장 신축에만 4000억 원이 넘는 돈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인천지역의 한 택시 기사는 "문학경기장도 제대로 쓰이지 못하는데 무슨 새 경기장을 짓느냐"면서 "아마도 신축 경기장 주변의 땅 주인과 결탁이 돼 있을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처치 곤란, 4500억 원 괴물' 인천아시안게임 개, 폐회식 등이 열린 인천 서구 연희동 인천아시아드 주경기장. 대회 이후 어떻게 활용될지 미지수다.(자료사진=박종민 기자)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주제는 '아시아는 이제 인천을 기억할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기억은 나겠죠. 어떤 기억으로 남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과연 아시아 각 국 취재진이, 아니 전 아시아가 훗날 인천을 어떤 기억으로 떠올릴까요? 저는 차마 그 엄혹한 미래의 일을 떠올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p.s-지금까지 저는 2008년 베이징과 2012년 런던, 올해 소치까지 올림픽과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 국제대회에 가면 현장에서 보내는 편지, 레터를 보내왔습니다. 경기장에서, 혹은 기자회견장에서 제가 보고 느꼈던 점들을 나름 솔직하게 담아냈다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에는 대회의 문제점이 상당 부분 포함됐습니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좀 다릅니다. 예전처럼 레터를 작성했는지 자신에게 반문한다면 자신있게 답하지 못할 것 같네요.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서였을 겁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까지는 4년이 남았습니다. 그때는 누워서 침 뱉기가 아니라 정말로 문제점들이 없어서 레터를 띄우는 일이 뜸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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