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버냉키 전 의장이 최근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 연장을 받으려다 거절당했다고 3일(현지시간) 미국 언론이 보도했다.
버냉키 전 의장은 전날 시카고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사회를 보던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의 자회사 무디스어낼리스틱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마크 잔디에게 이 같은 일화를 밝혀 청중의 폭소를 자아냈다.
버냉키 전 의장이 자신과 부인 명의로 공동 구입한 주택은 미국 연방의회 주변에 있다. 2004년 83만9천달러(8억9천만원)에 매입한 이 집은 현재 81만5천달러(8억6천500만원)로 떨어졌다.
버냉키 전 의장이 대출 연장을 받지 못하는 '굴욕'을 당한 것은 신분상의 변화 때문이다.
한마디로 중앙은행 의장이라는 정규직에서 '은퇴한 비정규직'으로 신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미국 시중은행들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뒤 대출요건을 까다롭게 강화했다. 이 과정에서 직업·소득의 안전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부각됐다.
실제로 미국 시중 금융기관들은 홈페이지에 '직업적인 신분이 정규직에서 다른 직종으로 바뀌면 대출이 제한된다'고 밝히고 있다.
심지어 정규직 이후 선택할 직종의 수입이 전에 비해 엄청나게 많아도 마찬가지라는 부연설명까지 있다.
최근 11년간 공직에 있으면서 버냉키 전 의장이 받아간 정규수입은 20만달러가 채 안 된다. 연준 의장 퇴임 직전 1년간 임금으로 19만9천750달러(2억1천만원)를 받았다.
공직에서 물러난 지금 버냉키 의장은 한 번 강연에 25만달러를 받는데다 회고록 선인세가 수백만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그는 의장 퇴임 두 달 뒤인 지난 3월 아부다비국립은행(NBAD)이 후원한 강연회에 참석, 40분간 연설하고 25만달러를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제는 재직 당시에 비해 '잠재수입' 규모가 엄청나지만 '비정규직'인 지금은 연간소득을 명확히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번 대출 연장 거절에 대해 버냉키 전 의장도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을 해줄 때 규제당국의 단속이나 대출 후 겪게 될 자금환수 어려움을 들어 대출조건을 지나치게 까다롭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은행권의 이런 행태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시장 붕괴 탓에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난 2008년 이후 규제당국이 엄격한 대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올해 60세인 그는 2006년부터 4년 임기의 연준 의장을 두 차례 지내고 지난 1월 재닛 옐런에게 바통을 넘겼다. 특히 재임 중 서브프라임 모기지발(發) 금융위기를 수습하느라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