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히토는 꼭두각시 아닌 배후 조종자"<미국전문가>

허버트 빅스 교수, 최근 공개 '쇼와천황실록' 평가"

미국 역사학자인 빙엄턴 대학의 허버트 빅스 명예교수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침략전쟁 등 쇼와(昭和)의 격동기에 일본 군주로 군림했던 히로히토(裕仁·1901∼1989) 일왕에 대해 꼭두각시가 아닌 배후조종자라고 평가했다.

'히로히토와 현대 일본의 형성'(Hirohito and the Making of Modern Japan)이라는 책의 저자인 빅스 교수는 3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을 통해 일본 궁내청이 히로히토 일왕의 생애를 기록한 '쇼와천황실록'을 최근 완성해 공개했다면서 이같이 평가했다.

빅스 교수는 먼저 실록 공개를 앞두고 일본 유력신문사로부터 실록 발췌문을 읽고 각종 사건들과 관련한 히로히토 일왕의 시각에 대해 논평해 줄 것을 요청받았지만 보도범위에 대한 엄격한 규제로 히로히토 일황의 2차대전에 대한 역할과 책임은 논할 수 없다는 조건이 달려 그들의 요구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고 소개했다.

빅스 교수는 이 기고문에서 히로히토 일왕의 실록 공개는 최소 2천만명의 아시아인과 미국, 영국 등 연합국 국민 10만여명을 죽음으로 내몬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기회가 돼야 하지만 이 실록은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중대한 질문들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빅스 교수는 또 이 실록은 히로히토 일왕에 대해 자비롭고 수동적인 지도자라는 거짓 이미지를 영구화하고 있지만 히로히토 일왕은 1926년 즉위 때부터 조부인 메이지(明治) 일왕으로부터 물려받은 무책임의 복잡한 시스템 내에서 움직인 역동적인 군주라고 말했다.


히로히토 일왕은 총리가 내각의 결정에 대한 일왕의 승인을 요청하기 전에 일왕이 의사 결정과정에 참견하는 것을 허용하도록 만들어진 체제에서 움직였다고 빅스 교수는 강조했다.

빅스 교수는 히로히토 일왕이 막후에서 움직이는 체제였기 때문에 이 체제를 통해 보좌관들은 일왕이 자신들의 조언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히로히토 일왕이 절대로 꼭두각시가 아니었다고 부연했다.

그는 또 히로히토 일왕이 1931년 일본군의 만주침공을 막지는 못했지만 1937년 중국에 대한 전면적인 침략을 승인한 데 이어 중국 내에서의 화학무기 사용을 통제하고 미국 진주만 공습을 승인했으며 전후에는 헌법에 따라 통치권을 박탈당했음에도 정치에 지속적으로 개입해왔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나 실록을 읽어본 결과 편집과정에서 중대한 누락과 자의적인 기록 선택이 발견됐다고 밝히고 일본 월간지 '문예춘추' 10월호가 호사카 마사야스 (保阪正康) 등 3명의 작가에게 실록 일부에 대한 독서를 요청한 결과 중대한 기록 누락이 드러났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이 실록은 히로히토 일왕이 패전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진 시기에도 항복을 지체하도록 고집을 부렸다는 점을 등을 확인시켜 준다면서 일본이 더 빨리 항복했다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폭 투하 등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2차대전 종전이후 약 7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나치의 전범 책임을 인정한 독일과 달리 일본은 전시 행위에 대한 전면적인 성찰에 나선 적이 없다면서 일본이 과거사를 간과하고 폄하하는 방식으로는 한국 등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개선할 수 없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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