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만족감은 이미 전반을 0-0으로 마친 뒤에도 한 차례 있었다. 슈팅수 16-0의 일방적인 경기에도 실점 없이 0-0으로 전반을 마치자 본부석에서 경기를 지쳐보던 홍콩 축구 관계자들은 선수들을 향해 뜨거운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 2010년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당한 0-5 패배보다 점수 차가 줄어들었다는 것 외에도 경기력에서 일방적인 열세에도 실점을 줄였다는 것에 상당한 기쁜 듯했다.
홍콩의 국제축구연맹(FIFA) 세계랭킹은 전체 209개 회원국 가운데 164위로 최하위권이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소속 46개국 중에서도 홍콩의 위치는 33번째다. 홍콩보다 낮은 순위의 국가는 스리랑카(176위)나 네팔(183위), 동티모르(193위), 캄보디아(199위) 등이다. 사실상 AFC 소속 국가 중에도 최하위권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홍콩 축구는 한국 출신 지도자 김판곤 감독과 함께 도약을 꿈꾸고 있다. 홍콩 축구 전체의 업그레이드를 이끌 '피닉스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는 이가 바로 김 감독이다.
K리그에서 활약하다 은퇴 후 고교 팀 코치를 지내던 그는 2000년 홍콩에서 현역으로 복귀했다. 이후 현지 팀 코치를 거쳐 K리그 부산 아이파크 지도자로 국내 무대에 복귀했다. 감독대행만 3차례하는 끝에 정식 감독이 되지 못한 김판곤은 다시 홍콩으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축구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첫 감독을 맡은 사우스 차이나를 홍콩 최강의 팀으로 조련하자 홍콩 대표팀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23세 이하 대표팀을 거쳐 승승장구하던 그는 2011년 잠시 K리그 경남FC의 수석코치를 맡았지만 오래지 않아 다시 홍콩 축구계의 부름에 홍콩 축구대표팀 감독과 함께 청소년대표팀의 총감독을 맡았다.
한국과 16강 경기를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난 김판곤 감독은 "앞으로 10년 정도 지나서 경기를 결정지을 선수를 만드는 것이 (피닉스 프로젝트의) 목표다. 유소년 훈련 방법부터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서 국가적으로 커리큘럼을 만들고 있다"면서 "홍콩 축구의 장단점을 파악해 유소년들에게 어떻게 지도할 것인지 연구 중이다. 현재 커리큘럼의 20% 정도 만들었다. 이 커리큘럼을 토대로 10년 후에는 기술이나 체력, 전술이해도 등 축구 전반적으로 좋은 선수를 만들겠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는 같은 수준의 팀을 만나면 전방부터 압박하는 경기를 한다. 우즈베키스탄이나 한국처럼 수준이 높은 팀과 경기할 때는 페널티 박스를 중심으로 상대 크로스를 방어하는 '박스 디펜딩'을 쓴다. 한국과 경기에서 우리가 가진 체력이나 속도로 70분 정도 버틴 것은 잘했다"고 기뻐했다.
이란을 앞세운 중동과 한국과 일본의 동아시아로 양분된 아시아 축구의 체계가 우즈베키스탄과 호주 등 새로운 강호들의 등장으로 거세게 흔들리는 가운데 홍콩의 과감한 시도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변방으로만 여겨졌던 홍콩 축구의 과감한 도전을 이끄는 김판곤 감독의 열정을 더욱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