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소비자를 우롱한 새 단말기 유통제도

자료사진 (윤성호 기자)
휴대폰 단말기 보조금 문제를 놓고 우리의 통신시장은 그동안 극심한 혼란을 겪어왔다. 통신사들은 남의 고객을 뺏어오기 위해 정부당국의 경고를 무시한 채 천문학적인 보조금 전쟁을 벌였고, 정부의 제재조치로 영업정지가 되풀이됐지만 시정되지 않았다. 27만원이라는 보조금 한도는 있으나마나 한 것이 돼버렸고, 이런 불투명한 시장이 계속 유지되면서 실제 단말기 값은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한 채 언제나 베일에 가려졌었다. 감시의 눈길을 따돌리는 통신사들의 은밀한 마케팅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만 비싸게 제값 주고 단말기를 사게 돼 ‘호갱’이란 소리를 들어가며 바보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 정부가 다음달 1일부터 시행한다는 것이 바로 단말기유통개선법이다. 혼탁한 경쟁과 일부 가입자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구조를 바로잡겠다는 것이 그 취지다. 단말기의 전체 보조금에는 통신사가 주는 보조금과 단말기 제조사의 장려금이 혼재 되어있었는데 이것을 분리해 투명하게 공개하고 소비자가 단말기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그런데 시행을 코앞에 두고 분리 공시가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일부 법제 간 충돌이 있다하지만 결국 업계의 이해관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통신3사가 다 동의하고 단말기 제조업체 가운데 LG도 찬성으로 돌아섰지만 유독 삼성이 끝까지 거부했고, 여기에 경제부처들도 삼성 편을 들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마케팅 비용 등 영업비밀이 고스란히 노출된다는 것이 반대 이유다. 하지만 이것은 LG도 예외는 아니다. 삼성의 반대는 단말기 가격에 거품이 있거나 현재의 시장 점유 우위를 고착화하기 위한 꼼수로 읽혀질 수 있다. 물론 국내에서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애플 등과 비교해 역차별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도 애플은 국내 업체들과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고, 선택은 소비자들이 할 일이다.

애플이 기존 전략을 버린 채 대형 스마트폰을 내놓고 중국의 저가 스마트폰이 몰려오는 상황에서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는 삼성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고, 경제부처가 이런 삼성에 동정적일 수는 있다. 하지만 단말기유통개선법을 시행하는 목적은 투명한 시장을 만들어 소비자를 보호하겠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정부도 이것을 집중적으로 홍보했다. 그런데 보조금 분리공시가 무산되면서 오히려 업계 보호가 우선이 되고 소비자 보호가 뒷전으로 밀리는 역전현상이 벌어졌다. 이럴 거면 차라리 정부가 보조금 문제에 간여하지 말고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 경쟁하게 하는 것이 낫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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