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급회의를 주재한 미국의 존 케리 국무장관과 윤병세 외교장관을 비롯한 회의 참석자들은 미국인 세명 억류를 포함한 열악한 북한의 인권상황을 한목소리로 성토했다. 특히 윤 장관은 북한 인권문제를 다루기 위한 남북대화를 전격 제의해 북한의 대응이 주목된다.
북한은 과거와는 달리 이번 고위급 회의 참가를 `요청'하는 등 자국의 인권상황을 적극적으로 변호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미, 북 인권 개선 위해 국제협력 주도
이번 회의는 케리 국무장관이 주재했다. 우리나라의 윤 장관,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 호주의 줄리 비숍 외무장관, 제이드 알 후세인 유엔 인권최고대표 등 참석 대상도 미국측이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자인 신동혁씨를 초청해 북한의 인권 유린 실태를 생생하게 전하도록 한 것도 미국 측이 사전에 준비했다고 한다.
이날 회의는 30여분간 진행됐지만, 미군의 시리아 공습 개시로 가뜩이나 바쁜 케리 장관이 짧기는 했지만, 시간을 할애했다는 점에서 미국이 북한 인권 개선에 상당히 큰 비중을 두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케리 장관은 "북한에서 인권 침해가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면서 특히 정치범 수용소를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은 사악한 정치범 수용소를 폐쇄해야 한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북한 정부에 정치범 수용소 폐쇄를 주장한다"고 목소리를 키웠다.
미국은 이날 회의를 시작으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 협력을 주도해 나갈 것으로 전해졌다.
당장 이번 유엔 총회에서 강도 높은 대북 인권 결의안이 채택되도록 막후에서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인권 결의안은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초안을 작성하며 50여 개국이 참가하는 문안 수정 작업을 거쳐 상임위원회와 총회에 잇따라 상정될 전망이다.
미국은 막강한 외교력을 동원해 이전보다 강도 높은 표현이 결의안에 들어가고 제재안 찬성국가의 수도 늘리는 작업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일본 등 국제사회도 북한의 인권이 개선돼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하고 있어 북한에 대한 압박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유엔 인권이사회도 지난 19일 정치범 수용소 폐지를 포함한 268개의 북한 인권 상황 개선 권고를 담은 보고서를 채택했다.
◇북한도 이례적으로 적극 방어
북한은 다른 사안과 달리 인권 문제와 관련해서는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날 회의가 열린다는 사실을 접한 이후에는 북한도 회의에 참가하게 해 달라고 미국측에 요청했다.
북한의 자성남 유엔대표부 대사는 전날 한국 기자들과 만나 회의 참가 요청 사실을 공개하면서 "미국이 대화로 문제를 풀려고 한다면 북한측의 참가를 거부할 명분이 없지 않느냐"며 오히려 공세를 폈다. 물론 북한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북한은 회의 참가 요청 외에도 인권과 관련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 방어에 나서고 있다.
지난 13일에는 주민의 인권이 잘 보장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 놓기도 했다.
조선인권연구협회 이름으로 발표된 보고서는 북한의 인권보장정책, 인민들의 인권 향유 실상 등을 담고 있다.
또 북한은 보고서 발표와 함께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해 국제사회와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19일부터는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에 북한 인권상황을 미화하는 글을 잇달아 싣는 등 선전전도 펼치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이렇게 공세적으로 나온 것은 이례적"이라면서 "북한의 인권 문제와 관련해서는 국제사회의 평가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처럼 북한이 인권 문제와 관련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윤 장관이 이날 제안한 남북 대화를 북한이 받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는 게 유엔 총회장 안팎의 대체적인 분위기다.
인권과 관련해 북한이 국제사회와 대화한 것은 2000년대 초반 유럽연합과 접촉한 게 유일하다.
당시 북한은 유럽연합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유럽연합이 북한 인권 관련 결의안을 발표하자 대화를 중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