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부지 인수전은 재계 1~2위 그룹간의 자존심을 건 대첩 양상을 보였다.
삼성은 지난달 29일 매각공고가 나왔을 때부터 현대차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보였다.
현대차는 한전부지 인수 뒤 마스터플랜까지 공개하며 계속 '그 땅은 우리 땅'이라는 식의 노이즈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삼성은 끝까지 달랐다.
"내용을 검토한 뒤 참여여부를 결정하겠다"며 히든카드를 공개하지 않았다.
한쪽은 패를 깠고 다른 한쪽은 끝까지 손에 쥐고 가는 모습을 보여 삼성이 인수전에 참여하기는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까지 들게 했다.
17일 입찰 마감 발표직후에도 "삼성전자는 한전 부지 입찰에 참여했다. 상세한 내용은 내일 결과가 나오면 자료를 내겠다"는 짤막한 자료하나로 입찰 참여만 확인해주는 데 그쳤다.
입찰 마감 이후까지도 온갖 설이 난무하는 등 18일 당일 뚜껑을 열기 전까지 추측만 더하게 했다.
◈ 끝까지 신중한 삼성이 '현대차의 저돌성' 넘지 못했다
삼성이 이렇게 끝까지 신중한 모습을 보인데 대해 재계에서는 이상하게 보는 시각이 그리 많지 않았다.
삼성을 잘 아는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은 돌다리를 신중하게 오랫동안 두들겨보는 스타일이며 결정적인 타이밍에서 확 올인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이번에도 삼성은 이같이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스타일을 그대로 연출하며 괜히 일찌감치 맞짱뜨는 모습으로 가격은 가격대로 올려 실리를 잃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승자의 저주' 얘기도 나왔지만 적어도 실리에 치중하는 삼성은 무리수를 피한 것이다.
이번 현대의 승리를 두고 재계에서는 삼성과 현대차가 어느 쪽이 더 절박했는지를 반증하는 것일 수 있다며 물론 막상막하였겠지만 절박함이 '막상'인 쪽은 현대차였다고 의미부여 했다.
특히 삼성은 당초 삼성생명, 삼성물산 등 다른 계열사와 함께 참여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삼성전자 단독으로 응찰했다.
이는 삼성전자가 한전부지를 첨단 ICT 산업 인프라와 대규모 상업·문화시설이 콜라보(융합)를 이루는 'ICT 허브'로 만든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했다.
삼성이 인수에 성공했다면 적어도 현재 잠실에 123층 높이로 짓고 있는 '제2롯데월드'보다 훨씬 높은 초고층 빌딩을 지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었다.
실제 삼성물산은 앞서 2009년 포스코와 함께 한전 부지 일대를 114층 초고층 복합 상업시설로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세웠던 적이 있다.
한전부지는 국내 벤처산업의 산실인 테헤란로의 끝에 있는 데다 강남역 사거리 삼성 서초동 본사와 큰 축을 이뤄 강남 지역에 '삼성 파급 효과'를 노릴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이번 인수전을 승리로 이끌어 최근 급락한 영업이익 등으로 침체된 분위기를 반전시켜 보려는 삼성의 계획은 무위로 돌아갔다.
하지만 사업 검토에서부터 입찰 참여 결정까지 삼성전자 단독으로 추진해왔기 때문에 그룹전체에 충격이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준비단계에서부터 신중함으로 일관했지만 결국 샅바싸움에서부터 밀리는 양상을 보인 삼성은 국내 양대 재벌 대첩에서 패배의 원인을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