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미혼 할머니, 수양딸 말 잘못했다가 '곤혹'

[화제의 공익법 판결]가족증명원에 친자식 잘못 등재, 경제적 지원 못 받는 사람들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을 앞두고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수급자의 부양의무자 문제를 연이어 다룬다. [편집자 주]


자료이미지(노컷뉴스)
필자가 일하는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에서는 유전자검사를 무료로 지원해 주거나 친생자 관계부존재확인소송을 무료로 대리해 주기도 한다. 유전자검사나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소송이 ‘복지’와 무슨 관계가 있냐고 생각할 것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의 부양의무자 제도 때문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는 최저생계비 이하의 가구에 대해서는 국가가 경제적 지원을 해 주도록 하고 있다. 단 조건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능력 있는 부양의무자가 없어야 한다는 부양의무자 조건이다.

그런데 이 좁은 땅덩어리에 무슨 사연들이 그리 많은지 자신의 가족관계증명원에 친자식이 아닌 사람이 친자로 잘못 등재된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가족관계증명원에 친자식으로 잘못 등재된 사연은 제각기 다르다. 공통점은 개인적으로 모두 가슴 아픈 사연이라는 점이다. 가족관계증명원에 사실과 다른 내용이 등재된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말이다.

문제는 이것이 ‘사연’으로만 그치지 않고 현실의 문제로 다가올 때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국가에게 경제적 지원을 요청하였더니 능력 있는 부양의무자가 있으니 안됩니다라고 거절당할 때다. 가족관계증명원에 친자식으로 잘못 등재된 그 ‘사연’ 때문에 말이다.
이런 경우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이 필자가 일하는 센터로 요청하면 수급자 지위에서 억울하게 탈락되지 않도록 무료소송 등 여러 지원을 해 준다.

그냥 '미혼의 독거노인입니다' 하면 될 것을 무슨 ‘사연’이 그리 많길래...

그런데 얼마 전에는 희한하게 한 구청으로부터 유전자검사를 무료로 해 줄 수 있냐는 연락을 받았다. 지금까지는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이 문의를 했는데, 반대로 구청이 문의를 한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사연인가. 사연인즉 이렇다.

A씨는 70대 독거노인으로 서류상으로 깨끗한 미혼 여성이다. A씨는 나이가 들어 근로능력이 없게 되자 10년 전에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위해 주민센터를 방문하였다. 그런데 A씨는 젊은 시절 사랑하던 한 남자가 있었나 보다. A씨는 주민센터 담당자에게 한 남자가 있었고 그 남자와 자신 사이에 수양딸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담당자는 이것을 자료로 기록하였고, 지금까지 A씨뿐만 아니라 수양딸과 그 남편이라는 사람의 소득과 자산을 계속 조사(현행법상 부양의무자는 자식뿐만 아니라 사위나 며느리도 포함되기 때문에 사위나 며느리가 능력이 있으면 지원을 받지 못한다)하였다.

그러다가 사달이 난 것이 지금까지는 수양딸과 그 남편의 소득이 없었는데, 수양딸의 남편이라는 사람에게 최근 소득이 발생한 것이다. 구청에서는 이것을 이유로 수급비 7만원을 감액하였고, A씨는 그제서야 재고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서류상 깨끗한 미혼의 할머니가 한 남자와 자신 사이에 수양딸이 있었다고 말할 정도면 할머니는 젊은 시절 일반 사람들이 겪지 않은 ‘사연’을 마음속에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구청에서는 할머니에게 무슨 ‘사연’이 있구나 생각하면 그만이다. 독거노인이 생계가 어려워 경제적 지원을 요청하면 실제로 얼마나 어려운지를 따져보아 지원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그런데도 구청에서는 서류 어디에도 친자로도, 양자로도 등재되지 않은 수양딸이라는 사람이 혹시라도 부양의무자에 해당할까 싶어 지난 10년 동안 수양딸과 그 남편의 소득까지 파악한 것이다. 꼭 그래야 했을까. 입이 벌어질 정도의 과잉 행정이다. 그러나 이게 우리나라의 부양의무자 제도의 현실이다.

할머니와 수양딸의 남편이라는 사람은 서류상 전혀 남남이다. 그러나 부양의무자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 할머니의 개인적인 ‘사연’은 드라이하게 탈색되어 무시된다. 그리고 ‘보충성의 원칙’이라는 당초의 취지는 사라진 채 복지사각지대로 내모는 가혹한 문지기 역할을 한다.

서류에도 없는 수양딸의 남편 소득 찾는데 혈안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나이 들어감의 아름다운 모습보다는 빈곤·질병·고독·자살 등 열악한 상황의 우리나라 노인의 모습을 TV.인터넷, 매스컴 등을 통해 자주 접하게 된다. 전통적인 가족구조가 대가족제도에서 핵가족으로 변화하고, 경제 불황으로 인하여 40대·50대는 조기 명예퇴직으로 내몰리고, 20대·30대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 그래서 노인들이 자신을 부양해 줄 짝을 가족 내에서 찾기가 쉽지 않아진다. 그런데도 정부는 2010년 사회복지통합관리망의 개통 이후 부양의무자를 갈수록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그래서 빈곤층은 늘어나는데도 수급권자수는 줄어드는 기현상이 발생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빈곤에 대해 최종적인 사회안전망 기능을 하는 공공부조법이다. 사회안전망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부양의무자라는 잣대를 엄격히 들이 대서는 안된다. 개별급여보다 더 중요한 것이 부양의무자 제도이다.

부양의무자 제도를 폐지하거나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않은 채 부정수급자 색출만을 강조한다면, 일선의 담당공무원은 돈이 지출되지 않도록 서류에도 없는 수양딸의 남편의 소득을 10년 동안 찾는데 혈안이 될 수 밖에 없다.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는 복지소외계층의 권리행사를 돕고, 다양하고 실질적인 법률구제의 토대를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문의 1644-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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