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러는 영국 신문 가디언 주말판 기명 기고에서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하고 8년 후인 1937년 세계 경제가 더 나빠졌다면서 6천여만 명이 희생된 2차 대전을 겪고 엄청난 재원이 투입된 복구가 이뤄지고서야 경제가 어렵사리 회복했음을 상기시켰다.
그는 세계 경제가 복구된 시점에도 유럽과 아시아의 전쟁 참화는 여전했다고 강조했다.
실러는 지금의 세계 경제 상황이 그때만큼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특히 1937년과 너무도 흡사한 점이 많다면서 많은 이가 장기적으로 경제를 비관하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것이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우크라이나 사태를 예로 들었다.
실러는 국제통화기금(IMF) 집계를 인용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2002∼2007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각각 52%와 46% 증가하는 호조를 보였으나 지난해 기준으로 우크라이나는 1인당 실질 GDP가 0.2%, 러시아는 1.3% 각각 늘어나는데 그쳤다고 지적했다.
이런 경제적 절망감이 우크라이나 분리 세력을 자극하고 러시아의 크림 합병 등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실러는 분석했다.
그는 금융 위기 이후 심화한 이런 절망감이 비단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실러는 세계 최대 채권펀드인 핌코의 빌 그로스가 처음 사용한 '뉴 노멀(new normal)'이나 이보다 훨씬 먼저 나온 `장기 정체론(secular stagnation)'이란 새로운 경제학 용어들도 이런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실러는 1930년대 말이 특히 아돌프 히틀러와 베니토 무솔리니가 득세하던 때임을 지적하면서 당시의 '과소소비론(underconsumptionism)'의 폐해를 상기시켰다.
즉, 경제 장래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으로 소비는 크게 위축되는 대신 저축은 늘어남으로써 투자가 줄고 이 때문에 성장도 위축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실러는 장기 정체와 과소 소비가 결국 사회적 분노와 불관용, 그리고 폭력 가능성으로 이어진다면서 오늘날도 그런 조짐이 곳곳에 나타났다고 경고했다.
실러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말미암은 서방의 대(對) 러시아 제재도 지적하면서 이것이 문제를 풀기보다는 상황을 갈수록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어렵더라도 대화로 풀어가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