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도, 시장도…안산의 시간은 4월에 멈춰 있었다

"이제 잊자"는 목소리도 있지만…"죽은 아이들 앞에서 매출 얘기 안 될 말"

하루 세 끼 고기를 줘도 싫다고 하지 않던 손자. 맞벌이하는 엄마 아빠를 대신해 지극정성으로 키우던 손자가 4월 16일 세월호와 함께 저세상으로 가자 할머니 박모(80·여) 씨의 시간도 그 때 멈춰버렸다.

추석 명절을 나흘 앞둔 지난 4일 안산시 고잔동 단원고등학교 앞 아파트.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하나뿐인 손자를 잃은 할머니는 명절 음석은 커녕 밥도 잘 넘어가지 않는다.

"2학년이니까 고기를 좋아했지. 세 끼 고기를 줘도 잘 먹었어. 머슴아 그거 하나였는데…많이 보고 싶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청와대로 올라간 아들 내외가 한번씩 안부 전화를 할 뿐, 손자 없는 텅 빈 집을 지킬 때면 먹먹함이 올라와 하루종일 집 밖을 서성이기 일쑤다.

제사가 많은 집이지만 추석 차례도 건너뛸 예정이다. "경황이 없어서 도저히 못 한다"는 박 씨는 "여기 피해 가족들이 많이 사는 탓에 동네 분위기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단원고 희생자 김모군의 할머니 정모(67·여) 씨도 손자 없는 추석을 날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정 씨는 "항상 우리 손자 데리고 고향집에 내려갔는데 올해는 손주딸만 데리고 가야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나는 나이가 먹었응께 가면 마는 것인데, 나도 이렇게 손주 생각이 나는데 자기 어매, 아배는 얼마나 생각이 나겠어. 지금도 '할머니 밥줘'하고 우르르 들어올 것 같은 생각이 계속 들어".

지난 4일 안산 라성시장 풍경. 대목을 앞둔 시기지만 시장은 한산한 모습이다. (자료사진)
◈ 시장들 "구정과 비교해 매출 40%25 뚝…명절 분위기 안 나"

단원고등학고 희생자 가족들이 모여 사는 안산 고잔동과 와동의 시간은 아직 4월에 멈춰 있었다. 추석 명절을 앞둔 설렘보다는 시간이 갈수록 더해가는 아픔 탓에 시장 경기도 예전만 못하다.

안산시 단원구 라성시장에서 철물가게를 하는 김모(67) 씨는 "30년 동안 장사를 해서 유동 인구만 봐도 시장 매상을 대략 아는데 요즘은 이동 인구가 거의 없다"며 "세월호 사고 나기 전보다 50%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김 씨는 "작년 추석같으면 시장 앞에 주차할 곳이 없어 1km 도는 데 두시간, 세시간이 걸렸는데 지금은 차도 거의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과일가게 상인 박모 씨도 "불경기랑 또 다르게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위축돼 있는 것 같다"며 "명절 같지 않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박 씨는 "올해 구정때만 해도 가게 앞에 천막을 하나 더 치고 주문을 받을 정도로 바빴는데 이번 추석에는 택배 주문이 거의 없었다"며 "구정에 비해서도 절반 가까이 매상이 줄었다"고 말했다.

이제는 그만 잊고 세월호 사고에서 벗어나자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 시장 상인은 "아이들 일이라 마음이 아프기는 하지만 이러다 장사하는 사람은 다 죽을 판"이라며 "빨리 끝내고 예전처럼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4일 '장사에 방해가 된다'며 세월호 현수막을 무단으로 철거한 안산시 상인연합회 측이 경찰에 입건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다수의 상인들은 "죽은 아이들 앞에서 매출 이야기는 안 하겠다"며 함께 아픔을 끌어안았다.

"내가 분향소 근처에서 슈퍼를 운영하다보니 이번에 세월호로 매상이 떨어진 건 사실이지. 올 여름에는 거의 못 팔았어. 그래도 죽은 아이들보다는 낫다는 생각이야. 올해 못 팔면 내년에 팔면 돼. 이해하고 사는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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