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아들이 친구들과 문자만 보냈기 때문. 박 씨는 아들을 몇 차례 타일렀지만 친척 어른들의 질문에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아들에게 결국 화를 내고 말았다.
중학교 3학년 딸을 둔 주부 이모(44,여)씨도 휴대전화만 들여다보는 딸 때문에 속상하기는 마찬가지. 이 씨는 "딸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송편을 빚으려고 했지만 친구들과 휴대전화로 대화하느라 가족들과의 대화도 시큰둥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가족과 함께 하는 한가위.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은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여념이 없지만 가족과의 대화보다 온라인에서 만든 가짜 가족들과의 대화가 더 편한 10대들이 있다.
가상의 가족 즉, '양팸'을 만들어 마치 가족인 것처럼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
가짜라는 뜻의 '양'과 가족이라는 '패밀리'가 합쳐진 '양팸'은 누군가의 엄마, 아빠, 혹은 오빠나 동생이 되어 역할에 맡게 상대방과 대화하는 것으로, 진짜 가족처럼 상대방을 아껴준다.
아이들은 진짜 가족과 대화는 어색하고 불편하지만 양가족에게는 속마음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 서울의 동갑내기 친구와 양가족을 맺은 중학교 2학년 정모(15)군은 "가족이 있지만 양가족을 맺은 사람이 더 편한 느낌이 있다"며 "가족끼리 못하는 대화를 양가족에게는 털어놓는다"고 말했다.
김모(15)군도 "요즘 가족들이랑 말 안하고 친한 친구나 양가족과 단톡(단체 대화)나 한다"며 "친목도 쌓을 수 있어 더 좋다"고 말했다.
실제로 10대들의 인터넷 친목 카페 등에는 '양가족을 구한다'는 청소년들의 글이 넘쳐났다. 사진과 함께 양언니, 혹은 양오빠를 구한다는 글을 올리면 다른 회원이 댓글로 자신의 SNS 아이디를 올리고 친구 맺기를 하는 방식으로 양팸을 모집한다.
이같은 양팸은 10대 또래들의 역할 놀이로 비춰지기도 하지만 청소년들은 오히려 가짜 가족에게서 친밀감과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학교 선배와 양가족을 맺었다는 박모(14)양은 "학교 선배가 양 맺자고 해서 양언니양동생 사이가 됐다"며 "그냥 알던 사이보다 양은 더 친하게 지내고 가족끼리 못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18살 김모양은 "양언니라는 것은 많이 친한 언니라는 것"이라며 "학교는 다르지만 내 얘기 들어주고, 내 편 들어주는 아주 친밀한 사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10대들의 양팸 문화를 "어른들이나 가족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양가족'을 통해 대리만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파구 청소년상담복지센터 황상하 팀장은 "성적이나 행위 등으로 평가받는 10대 청소년들이 부모나 교사 등 어른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가상의 가족을 만드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황 팀장은 "아이들이 가짜 가족과의 대화에만 몰입해 있을 경우엔 그 행위보다는 아이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명절날 성적이 얼마나 올랐냐는 질문 대신 아이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아이 자체에 대한 관심을 보여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