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 책임자가 벵가지 피습 美영사관 구조 지체시켜"

CIA 보안팀원들 증언…"물러나 있으란 명령에 30분 지체"

2012년 9월 11일 리비아 벵가지의 미국 영사관이 무장세력에 피습됐을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 벵가지 지부 책임자가 구조작전을 지체시켰다는 주장이 CIA 직원들에게서 나왔다.

그동안 미국 정부의 대응이 늦었다는 지적은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벵가지 사건의 작전 당사자들로부터 증언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CIA 보안팀원으로 작전에 참여했던 크리스 패론토, 마크 자이스트, 존 타이겐 등은 4일(현지시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벵가지에 있는 CIA 비밀 본부 책임자였던 일명 '밥'이라는 인물이 구조작전을 30분 가까이 지연시켰다고 밝혔다.

이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당일 오후 9시30분께 영사관 피습 사실이 알려지면서 CIA 보안팀은 5분 만에 무장을 마치고 영사관으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기다렸다. 영사관은 CIA 비밀 본부로부터 불과 1마일(1.6㎞)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러나 출동 채비를 마친 뒤 15분가량이 지났는데도 밥은 작전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타이겐은 밥에게 "지금 가지 않으면 주도권을 잃을 수도 있다"고 재촉했지만, 밥은 되려 기다리라고 지시했다.

구조작전이 지연되면서 영사관 직원들로부터 불이 났으니 구조해달라는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구조작전이 30분 가까이 지연되자 CIA 안보팀원은 결국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영사관으로 향했다. 이들은 CIA 간부들에게 미군 측에 공중 지원을 요청하라고 부탁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건대 작전이 지체되지 않았더라면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대사를 비롯한 영사관 직원들이 생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당시 무장세력의 방화에 따른 연기에 질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CIA 고위 관계자는 폭스뉴스에 보낸 성명에서 "(영사관에) 지원을 제공하는 데 있어 누구에게도 물러나 있으란 명령이 있지 않았다"며 이들의 주장을 부인했다.

그러나 CIA 안보팀원들은 "세 차례나 '기다리라', '물러나 있으라'는 명령을 받았다"며 CIA 고위 관계자의 성명을 재반박했다.

이들은 밥이 작전을 지체한 이유에 대해 CIA 비밀 본부가 노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리비아 민병대의 지원을 기다린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이들을 포함해 CIA 보안팀원 5명의 증언을 바탕으로 보스턴대 미첼 저코프 교수가 저자로 참여한 책 '13시간 : 벵가지 사건의 내막'은 다음주 중 출간될 예정이다.

벵가지 피습은 2012년 9월 11일 리비아 동부 벵가지에서 무장세력이 이슬람 모독 영화에 항의하며 미국 영사관을 로켓포 등으로 공격, 스티븐스 대사 등 미국인 4명이 숨진 사건이다.

공화당은 그동안 벵가지 피습 사건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안보 실패라며 공격의 빌미로 삼아왔다. 공화당은 특히 민주당 유력 차기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이 당시 국무장관을 지냈다는 점에서 공동 책임론을 제기하며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치쟁점화를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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