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지훈 일병 현충원 봉안…"우리 아들은 언제"

군병원 냉장고에 보관중인 시신 18구, 창고에 방치된 유해 133구

현충원에 봉안된 故 김지훈 일병 유해
"제 아들은 작년 7월 1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올 8월 14일 순직이 결정됐습니다. 당연한 결정에 이르는 시간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들었습니다"

상관의 부당한 얼차려 지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김지훈 일병의 유해가 29일 오후 서울국립현충원에 봉안됐다.


김 일병의 아버지 김경준 씨는 힘들었던 지난 1년여의 시간을 곱씹으며 유해 봉안식 장소를 찾은 아들 친구들의 손을 꼭 부여잡았다.

김 일병과 같은 고등학교, 대학을 다닌 친구 윤민우(22) 씨는 "지훈이는 친구들이 힘든일이 있으면 조언을 주고 도움을 주던 그런 친구"라며 "1년 만에 이렇게 현충원에 봉안돼 그나마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현충원에서 열린 봉안식에 앞서 김 일병의 유해는 김 일병이 군생활을 했던 서울공항 제15특수임무비행단에 들렀다.

부대원들 사이에 아들이 정신질환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오해를 받았던 것을 가슴아파하던 김 씨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김 씨는 "지훈이 동기들 앞에 우리 지훈이가 정신병이 있어서 떠난 것이 아니고 고통속에서 힘들어 하다가 정말 어쩔 수 없이 떠났구나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생각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김 일병이 지난해 7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공군의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약속 만을 믿고 기다렸지만 지난 1월 공군은 순직이 아닌 일반사망 결정을 내렸다.

묵념하고 있는 故 김지훈 일병 유족들
이후 김 씨가 정보공개 청구 등을 통해 당시 수사기록을 입수하고 김 일병 사망 배경에 상관의 부당한 얼차려 지시 등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이후 언론보도 등을 통해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군은 뒤늦게 재심의를 거쳐 최근 일반사망이 아닌 순직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5월 23일 CBS 노컷뉴스 보도 "朴 귀국날 자살한 김 일병, 서울공항선 무슨일이?")

김 씨는 그러나 순직 결정으로 모든 것이 끝난게 아니라 김 일병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상관들에 대한 처벌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 아들 시신 화장도 못한채 명예회복 기다리는 유족들

아직 책임자 처벌이라는 과제가 남아있지만 김 일병은 순직 결정을 받아 현충원에 봉안되면서 유족들이 원하던 명예회복이 어느정도 이뤄졌다.

이에 대해 김 씨는 "주변 사람들한테 먼저 미안하고 저같은 사람 많으신데 제 아들이 빨리 진행되는 과정을 볼 때 오히려 그냥 미안하다"고 말했다.

김 씨의 말처럼 아직 수많은 군내 자해사망자의 시신이 명예회복은 커녕 제대로 된 장례절차도 치르지 못한 채 군 병원 냉장고와 창고 등에 방치돼 있는 실정이다.

현재 군 병원 냉동고에는 모두 18구의 군인 시신이 최장 15년 넘도록 보관돼 있다. 또 화장을 끝내고도 최장 43년째 군 병원 창고에 역시 방치돼 있는 유해도 133구에 달한다.

이들 대부분은 모두 자해로 인한 일반사망으로 처리됐지만 유족들은 "군 당국의 결론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며 시신 인수를 거부하고 있다.

묵념하고 있는 故 김지훈 일병 동료들
이에따라 국방부는 '전공사상자 처리 훈령'을 개정해 재심의 시 외부 전문가 참여, 유가족에 의한 직접 재심의 절차 마련 등의 방안을 마련해 순직 처리를 보다 유연하게 하겠다는 방침이다.

군 병원 냉동고와 창고에 방치된 시신과 유해가 순직결정을 받고 현충원에 봉안될 수 있는 길이 과거에 비해서 넓어진 셈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사망 뒤 3년이 지날 경우 유족들의 동의와 관계없이 시신을 강제화장하는 방안 역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재심의를 통해 자해사망자라 할지라도 순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는 늘어났지만 다른 한편으론 순직 결정을 받지 못할 경우 일정시간이 지나면 아예 명예회복의 길이 사라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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