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박근혜 대통령의 소통이 이슈가 되고 있다. 단식 농성을 계속해 온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는 문제 때문이다. 시민들과 정치인, 지식인, 문화예술인들의 동조단식까지 이어지는데 대통령은 답이 없다. 정말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 안 되는 걸까?
대통령을 지칭하는 단어는 2가지이다. 대통령직을 맡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president’, 헌법기관으로서의 국가를 대표하는 존재를 일컫는 ‘presidency’. 어찌 부르던 같은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니 굳이 구별하지 않고 프레지던트로 흔히 부른다.
그러니 대통령은 국민 누군가가 호소하면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인간적으로 다가가 어려움을 살필 수도 있고, 국정의 책임자이자 행정수반으로서 해결책을 고민하며 불러 만날 수도 있다. 어느 것이 타당하냐를 따질 것 없이 두 가지 중 뭐라도 하나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징만 두들겨도 왕을 만날 수 있는데…
왕조 시대에도 임금들은 백성을 직접 만나 고충을 살폈다. 태종은 신문고를 설치했고, 정조는 “疏通之政 何可廢也 防民之口 尙云甚於防川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냇물을 막는 것보다 심한 일”이라 강조하며 상언(上言, 백성이 왕을 직접 만나 억울한 일을 호소하는 제도)과 격쟁(擊錚, 왕의 행차 중에 징을 치고 나와 왕에게 억울한 일을 호소하는 제도)를 두고 백성의 억울함을 챙겼다. 인종 역시 격쟁을 제도화했다.
세종은 모두와의 소통을 주시했다. 첫째가 '광문'(廣問), 널리 물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백성의 목소리도 듣고 신하들의 생각도 듣고 학자들도 참여케 했다. 그 다음이 들은 바를 '서사'(徐思),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숙고했고 그리고 '정구'(精究), 정밀한 대안을 만들게 했다.
오늘날에도 소통으로 유명한 통치자들은 많다.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영화배우 출신이라 정치도 잘 모르고 말솜씨도 별로였지만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자주 들으려 애썼다. 1년에 정례 기자회견, 미니 기자간담회를 150 여회 정도 가졌다. 그래서 나중에 붙여진 별명이 위대한 소통자 the Great Communicator이다.
예를 하나 더 들어 보자. 핀란드에는 우리나라 뽀로로에 맞먹는 캐릭터가 있는데 아기 공룡 둘리와 비슷하게 생긴 무민moomin이다. 2000년에 핀란드 사상 최초 여성 대통령이 되어 12년 간 재임한 타르야 할로넨 전 대통령의 별명이 무민 마마였다. 그만큼 서민적이고 친숙했다는 것. 할로넨 대통령은 2000년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옷을 직접 다리고 머리도 자신이 매만져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집에서 쓰던 다리미·다리미판을 가져 왔음). 호텔 치약도 새 것 뜯느니 가져 온 걸 쓰겠다고 했다. 소외계층을 자주 만나고 복지를 챙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이야기한 리더의 조건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하고, 용기가 있어야 하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였다. 그의 국정 수행 원칙도 간단하다. “나의 목표는 국민의 행복이고, 내가 가진 단 하나의 기준은 국민입니다. 리더란 변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들이 변화를 만들어내도록 이끄는 사람입니다”.
그 결과 첫 임기 6년을 끝냈을 때 지지율은 88%였다. 퇴임할 때까지 지지율은 80%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국가청렴도 세계 1위, 국가 경쟁력 1위, 학업성취도 국제 비교 1위를 달성했으니 내려 갈 이유가 없었다.
소통의 비결은 ‘내 탓이로소이다’
대통령학으로 유명한 프레드 그린슈타인은 “위대한 대통령은 무엇이 다른가?”에서 대통령의 덕목을 이렇게 꼽는다.
1. 국민과의 의사소통 능력
2. 함께 일할 사람을 제대로 선택하고 조직화하는 능력
3. 정치적 수완
4. 비전을 제시하는 통찰력
5. 국정 전반에 대한 문제 파악 능력
6. 정서관리 능력
대통령은 그런 자리이다. 물론 국민을 일일이 상대하는 게 대통령의 소통은 아니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다. 그러니 거버넌스 리더십(governance leadership)을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 대통령이 국민과 친숙한 걸 보여 주려고 영화관 가고 야구장 가는 건 중요한 게 아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두루 물어보고 상황이 파악되면 각료들을 불러 모으거나 여야대표들을 만나 엉킨 것을 풀어 해결하는 중재와 조정, 협력창출이 대통령의 리더십이다. 그러니 세월호 유가족이든 여야 대표든 아니면 사회 제 세력 대표들이나 원로들이라도 만나서 들어보라. 함께 세월호 특별법 문제를 풀자고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