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중립을 지키기 위해 리본을 떼는 것이 좋겠다고 했을 때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며 "내 위로가 죽은 이에게 생명을 줄 수는 없지만 유가족을 위로하면서 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땅을 떠날 때까지 교황의 가슴에는 노란 리본이 달려있었다.
세월호 특별법의 해법을 찾지 못하는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대목이다.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여야간 재합의안이 유족들에 의해 거부된 뒤 정치권은 특별법 제정을 위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세월호 피로감이 커질 것이라고도 한다.
유족들의 무리한 요구 때문에 특별법 제정이 이뤄지지 못하는 것처럼 몰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세월호 피로감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누가 세월호 피로감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인가?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려는 핵심은 진상규명이다.
엄청난 인재가 발생한 원인이 무엇이고 3백여 명의 실종자 가운데 단 한 명도 구해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 명백히 밝혀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귀감으로 삼자는 것이다.
세월호 특별법은 우리나라가 보다 안전한 사회,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철저한 진상규명을 약속했고 언제든 유족을 만나겠다고도 했고 여야대표를 함께 만난 자리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약속했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이 확실히 달라지도록 국가대혁신에도 나서겠다고 했다.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초기 팽목항에 내려가서 유족들을 직접 만나고 설득할 때는 격앙된 유족들로부터 박수를 받기도 했다.
대통령의 약속대로만 하면 피로할 일이 없다.
하지만 특별법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고 국가대혁신은 구호만 남았다.
유족들의 간절한 면담신청마저 대통령은 외면하고 침묵하고 있다.
세월호 정국이 장기화될 것이라며 세월호 피로감을 얘기하기 이전에 세월호 참사 직후 초심을 다시 떠올리고 약속했던 일을 실천하면 된다.
유족들이 요구하는 특별법의 핵심은 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자는 것이다. 이 법안은 법률전문가인 대한 변협에서 검토하고 동의한 안이기도 하다.
새누리당은 사법체계를 뒤흔드는 일이라며 강력히 반대하고 있지만 진상 규명과 관련한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져 있는 만큼 유족들이 간절히 원하는 법안에 합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기소권과 수사권 부여가 사법체계를 뒤흔들 것이라는 주장은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시각과도 관련이 있다.
세월호 참사의 본질을 단순 교통사고로 비유하거나 피해자가 가해자를 조사하는 일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철저한 진상규명 의지가 있고 세월호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이 달라지도록 안전한 나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확실한 의지만 있다면 수사권과 기소권 문제를 풀 방안은 여러가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합의 과정에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여권이 내심 우려하는 수사권의 정치적 악용도 없을 것이고 오히려 국민의 마음을 얻게 될 것이다.
국가대혁신을 이루는 일은 유족들의 응어리를 풀어주고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 일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그렇게 되면 세월호 피로감이 아니라 세월호라는 위기를 통해 국민이 하나되고 이를 극복하는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꽉 막혀있을 때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