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과 교황. 아무런 접점도 없을 것 같은 이들은 어떻게 대한민국의 신드롬이 됐을까.
'명량'은 제목 그대로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이 진두지휘한 명량해전을 다룬 영화다. 영화는 위인 이순신보다는 인간 이순신에 초점을 맞춘다.
12척 밖에 남지 않은 배로 300척이 넘는 왜선과 대적해야 하는 순간, 인간 이순신은 극한의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결국 그는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힘에 희망을 걸어보기로 한다.
이순신에게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힘이란 바로 자기 자신의 희생이다. 전쟁이 시작되고 부하들이 두려움에 떨며 뒤로 물러설 때, 이순신은 홀로 선두에 서서 왜적과 맞선다. 이런 이순신의 리더십은 부하들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고, 조선의 수군은 기적적인 승리를 거둔다.
나라를 위해 죽음까지도 불사하는 책임과 희생의 리더십. 인간 이순신이 난세의 영웅으로 거듭나는 순간, 그는 단순히 조선 시대의 위인이 아니라 현 시대에 필요한 지도자로 각인된다. 난세의 영웅에 목말랐던 관객들이 이순신으로부터 이상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갈증은 대한민국을 침잠하게 한 세월호 참사, 군대 내 사고 등에서 비롯됐다.
끊이지 않는 비극적 사고에도 불구, 대한민국 지도자들은 진정성 있는 책임의 자세와 희생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 슬픔에 빠진 이들에게 위로와 믿음을 주기보다는 관련 사안들을 소모적인 정쟁으로 비화시키며 진흙탕 싸움을 계속해왔다.
이런 상황 속에서 '명량'은 마치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지도자들에 대한 불만과 실망이 컸던 만큼, '명량'에 열광하는 온도는 뜨거워져만 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명량' 신드롬의 원인을 이 같은 민심이 반영된 결과로 보기도 한다.
현재 명량은 누적 관객 수 1,500만을 넘어 2,000만의 고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역대 가장 빠른 속도로 1,000만 관객에 도달한 것을 감안하면 대한민국 영화 사상 최초 2,000만 관객의 역사를 쓸 가능성이 높다.
1,500만의 관객 속에는 대한민국의 지도자들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대기업 CEO와 임원들도 '명량'의 이순신을 만났다. 과연 이들이 이순신에 버금가는 리더십으로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진두지휘할지 두고 볼 일이다.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 100만 명의 인파는 한 목소리로 "비바 파파"(Viva Papa, 교황님 만세)를 외쳤다. 프란치스코 교황 신드롬의 시작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명대로 평소 검소한 생활과 가장 낮은 곳을 살피는 행보로 많은 이들의 귀감이 돼 왔다. 그가 교황명으로 선택한 성 프란치스코는 이탈리아 성인으로 평생을 가난한 이들을 돌보며 살아온 것으로 유명하다.
역대 교황과 달리 도금한 은반지와 주교 시절부터 간직한 철제 십자가 목걸이를 착용하고, 교황의 권위를 상징하는 붉은 벨벳 망토 대신 저렴한 흰색 의복을 걸친 것에서부터 그의 검소한 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낮은 곳을 향하는 교황의 행보는 계속됐다. 서울 공항에서 내려 한국 땅을 밟은 교황은 국산 자동차 쏘울을 의전차량으로 이용했다. 숙소 역시 값비싼 호텔보다는 주한교황청대사관을 선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4박 5일 동안 세월호 유가족들을 비롯, 장애인, 위안부 할머니 등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들과 함께 했다.
특히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을 위로하는데 정성을 쏟았다. 교황이 유족과 생존학생에게서 건네받은 노란 리본은 돌아갈 때까지 그의 가슴에서 나부꼈다.
카퍼레이드 중 차에서 내려 세월호 특별법을 위해 한달 넘게 단식에 임하고 있는 고(故)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 씨의 손을 직접 맞잡는가 하면, 십자가를 메고 38일 동안 800㎞를 걸은 고(故) 이승현 군의 아버지 이호진 씨에게 직접 세례를 주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18일 열린 마지막 미사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제주 강정마을 주민, 밀양 송전탑 주민, 용산참사 피해자 등을 초청해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이들의 상처를 보듬었다.
교황은 돌아갔지만 그의 행보는 여전히 파격적으로 평가 받고 있다. 가장 소외되고 약한 자들과 호흡하는 교황의 실천적인 리더십은 이 시대의 지도자들에게서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모습임이 분명하다.
천주교라는 특정 종교의 수장인 교황에게 대한민국이 열광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비록 지구 반대편에서 와, 짧은 시간 머물다 떠나갔지만 교황은 지도자들이 탁상공론을 일삼는 동안 방치된 국민의 상처를 진정으로 위로하고 어루만졌다.
아직 교황 신드롬은 끝나지 않았다. 교황의 의전차량이었던 쏘울의 판매량은 특별한 마케팅 없이 지난달 판매량보다 62.5%나 증가했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야기를 담은 '헬로! 프란치스코' 사진전도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영웅을 원하는 시대가 만들어 낸 슬픈 신드롬의 끝은 어디일까. 지금 국민들은 과거의 위인도, 외국인 종교 지도자도 아닌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이 신드롬을 끝맺을 그 날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