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에 주어진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유족을 계속 설득하며 기존 여야 합의안을 밀어붙일 수 있다. 아니면 유족의 요구대로 재합의를 파기하고 다시 여당과 협상에 나서는 수도 있다. 문제는 둘 모두 선뜻 택하기 힘든 방안이라는 점. 한 마디로 진퇴양난이다.
기존 합의안을 고수할 경우 자칫 극심한 당내 갈등을 빚을 공산이 크다. 의원들 사이에서는 유족 뜻에 반하는 재합의안 강행에 대한 반대 여론이 우세한 편이다. 더불어 '세월호 특별법이 가장 중요한 민생법안'이라는 종전의 주장을 뒤집는 격이어서 시민사회와 지지자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새정치연합은 21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 비공개로 주요 당직자 회의를 열어 해법을 논의했으나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대신 시간을 갖고 유가족과 소통하는 동시에 당내는 물론 각계각층의 여론을 수렴해 사회적 총의를 모으기로 했다. '전략적 냉각기'를 거치며 현 정국을 뚫고 나갈 출구를 찾겠다는 것이다. 박 원내대표는 일단 본인의 정치적 입지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는 '재합의 파기'보다는 '기존 합의 유지'에 무게를 싣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들이 전격적으로 여야의 재합의를 수용하는 시나리오도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 유족들은 당초 수사권과 기소권을 보장하라는 요구를 하다 단계적으로 수위를 낮춘 바 있다. 양당 원내대표의 재협상 과정에서는 특별검사 추천위원회 국회 몫 4명의 추천권을 진상조사위원회에 보장해 달라는 선까지 물러났다.
그러나 여야 원내대표가 이런 요구에 못 미치는 합의를 하자 오히려 더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섰다. 유족들은 20일 총회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원안을 고수하기로 결정했다.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도로 양보할 리는 만무한 상황이다.
결국 세월호 정국의 당사자 가운데 야당과 유족에게는 현 정국을 타개할 수 있는 주도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남은 건 청와대와 정부여당 뿐이다.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을 움직이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나섰다. 김영근 대변인은 "세월호 참사의 총체적 부실사태를 초래한 박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나서야 할 때임을 상기시킨다"고 밝혔다. 22일로 40일째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유민 아빠' 김영오 씨도 박 대통령에게 거듭 면담을 요청하고 있다.
청와대도 "세월호 특별법은 여야가 합의해서 처리할 문제로 대통령이 나설 일은 아니다"는 입장이다. 박 대통령은 김 씨의 면담 신청을 뒤로 하고 이날 오후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으로는 23년 만에 처음으로 수도방위사령부 지휘소를 방문해 현장상황을 점검했다.
정치권이 이처럼 꼬인 정국을 풀어갈 묘수를 찾지 못하면서 국회 운영 파행은 현실화되고 있다. 올해 처음 도입될 예정이었던 '분리 국감'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새정치연합이 다음주로 예정된 국정감사를 연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어서다. 이미 22일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재외공관 국감은 전면 취소됐다.
특단의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단원고 학생의 특례입학 관련법은 물론, 본회의에 계류중인 93건의 법안 처리도 요원하다. 25일 본회의 개최를 두고 여야는 팽팽히 맞서 있다. 경색이 장기화되는 최악의 경우에는 새해 예산안 심의를 위한 정기국회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