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cm 쿠코치가 가드로 뛰었지, 허재 형은 잘했고"

이상민이 말하는 농구 월드컵에 대한 추억과 후배 향한 조언

19일 진천선수촌에서 열린 남자농구 대표팀과의 연습경기에서 선수들을 지도하는 프로농구 서울 삼성 썬더스의 이상민 감독(오른쪽에서 두번째) [사진 제공/KBL)
한때 한국 남자농구도 세계 무대 진출을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1994년과 1998년 세계선수권 대회(현 농구 월드컵)에 출전했고 1996년에는 아시아를 대표해 미국 애틀랜타올림픽에도 나갔다.

지난 19일 진천선수촌에서 '유재학호' 대표팀과 연습경기를 치른 프로농구 서울 삼성 썬더스의 이상민 감독은 1990년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남자농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주역이다.

이상민 감독에게 농구 월드컵에 대한 추억을 묻자 그는 1994년 이야기를 꺼냈다.

이상민 감독은 "그 때는 우리가 깜짝 잘했다. 호주가 엄청 강한 팀이었는데 20점차로 지다가 결국 2점차로 졌다. 호주 감독의 인터뷰가 압권이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경기를 했는데 이렇게 슛이 잘 들어가는 팀은 처음 본다고"라며 웃었다.

이어 이상민 감독은 "허재 형이 엄청 잘했다. 그래서 그 당시 NBA 토론토로 간다 안 간다 기사도 나왔다"고 덧붙였다.


현재 전주 KCC 이지스의 사령탑을 맡고 있는 허재 감독은 1994년 세계선수권 대회가 배출한 스타 중 한 명이다. 당시 허재 감독은 평균 19.3점을 기록해 대회 평균득점 부문 5위에 올랐다.

세계와의 격차는 컸지만 주눅들지 않고 도전했던 시절이다.

이상민 감독은 "그 때 상대 선수들은 엄청 컸다. 크로아티아에서는 토니 쿠코치가 슈팅가드를 보고 그랬으니까. 디노 라자도 있었고 NBA 선수만 3명이었다"고 회상했다.

토니 쿠코치, 추억의 이름이다. 국내 농구 팬들에게는 1990년대 시카고 불스에서 뛰었던 마이클 조던의 동료로 잘 알려져 있다. 그 당시 쿠코치는 세계 무대에서 미국의 '드림팀'에 맞선 유럽의 간판 스타였다.

신장은 211cm. 포지션을 가리지 않았던 선수다. 당시 대표팀에는 신장 190cm를 넘는 가드가 없었다. 한국과 세계 농구의 높이 차는 그만큼 컸다.

한국은 1994년 대회에서 전체 16개 팀 가운데 13위에 머물렀다. 그래도 3승을 따냈다. 1차 조별리그에서는 크로아티아, 호주, 쿠바에게 전패를 당했지만 앙골라와 이집트(2승)를 꺾었다. 1998년 대회에서는 전패를 당하고 돌아왔다.

이상민 감독은 "신장에서 확실히 위압감을 느꼈다. 던지고 리바운드를 잡고 다시 던지고 또 잡고, 그런 실점이 많았다. 국제대회에 나가면 센터들이 안쓰러울 정도로 많이 힘들어했다. (전)희철이와 (현)주엽이가 안 지려고 몸 싸움을 엄청 했다. 210cm가 넘는 선수가 턴을 하면 그 팔꿈치에 얼굴이 맞으니까, 특히 희철이는 많이 다쳤다"고 말했다.

높이의 차이를 느낀 것은 골밑 뿐만이 아니었다.

이상민 감독은 "장신선수가 가드를 보니까 높이에서 확실히 차이가 났다. 지금은 조성민이나 문태종이나 슛 타이밍이 모두 빠르지만 그 시절에는 슛 타이밍이 느리면 아예 슛을 못 쐈다. 키가 큰 선수가 바로 달라붙었으니까. (문)경은이 형 외에는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한국은 1998년을 끝으로 한동안 세계 무대와 멀어졌다. 지난 해 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 입상하면서 16년 만에 다시 세계 무대에 설 기회를 잡았다. 대표팀은 오는 8월 말 스페인에서 개막하는 FIBA 농구월드컵에 출전한다.

1990년대나 지금이나 한국 농구가 느끼고 있는 벽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도 이상민 감독은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도전 정신이다.

이상민 감독은 "힘과 높이는 정말 어쩔 수가 없다"면서도 "요새 애들은 위축되는 게 없는 것 같다. 플레이가 자유롭다고 해야하나. 우리 때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코트에 들어가면 아무래도 상대를 의식하게 됐는데 나름 기 안 죽고 열심히 했다. 요즘 선수들은 자신감이 넘치니까 자신감을 갖고 배운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면 깜짝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그럴 뻔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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