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위군까지 투입…美 '퍼거슨 사태' 어디까지?

흑백 인종문제 겹쳐 대치 격화…오바마 진정 호소도 무용지물

미국 미주리주의 소도시 퍼거슨시에서 발생한 10대 흑인 청년 총격사망 사건의 파장이 좀체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18일(현지시간)로 사건이 발생한 지 꼭 열흘이 됐지만 성난 주민들과 중무장한 진압 경찰 간 대치가 격화하면서 비상사태 선포 및 야간 통행금지 조치에 이어 주방위군 동원령까지 내려지는 등 사태가 갈수록 확산되는 분위기다.

피해자가 비무장 상태의 흑인 청년이고 총을 쏜 경관이 백인이라는 점에서 애초부터 정치적, 인종적으로 쟁점화될 가능성이 큰 사안인데다 백인 경관 신분 늑장 공개, 수사내용 발표 혼선, 진압경찰 군(軍) 수준 중무장 등 당국의 늑장·과잉 대응이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자칫 '제2의 로드니 킹' 사태로 비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1992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생한 로드니 킹 사태는 과속 운전으로 도주하는 흑인을 붙잡아 무차별 폭행한 경찰이 무죄를 선고받자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킨 사건이다.

◇ 사건 경위와 파장…경찰·유족 진실게임 양상 = 이번 사태는 지난 9일 정오께 고교를 막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할 예정이던 마이클 브라운(18)이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퍼거슨시의 외할머니 집 근처에서 백인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면서 시작됐다.


경찰은 당시 경찰관의 총격으로 브라운이 숨졌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도 총격 사유나 총을 쏜 경관 등 자세한 내용을 전혀 밝히지 않아 유족과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주민들의 항의시위가 폭력·약탈로까지 비화하는 등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사건 발생 4일째인 12일 미 연방수사국(FBI)이 직접 수사에 착수하고, 이틀 뒤인 14일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휴가지인 매사추세츠주 마서스 비니어드에서 특별 기자회견을 열고 철저하고 공정한 수사 약속과 함께 진정과 자제를 호소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자제 당부도 무용지물이 되고 소요사태가 계속 번지자 퍼거슨 경찰 당국은 사건 발생 6일째인 15일 결국 발포자인 대런 윌슨 경관의 신원과 당시 상황을 공개했다.

그러나 경찰이 사건개요를 설명하면서 브라운을 당일 오전 인근 편의점에서 발생한 절도 사건의 용의자로 사실상 지목했다가 다시 몇 시간 만에 '절도 사건과 총격 사건은 무관하다'고 물러서면서 논란을 더욱 키웠다.

유족과 시민들은 경찰이 브라운을 절도 용의자로 몰아 총격 사건의 본질을 회피하려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실제 윌슨 경관은 브라운을 도로 한가운데를 걷고 있다는 이유로 체포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경찰의 정당방위 주장과 달리 브라운이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는 증언도 나오는 상황이다.

지역 주민들의 시위가 계속되자 제이 닉슨 미주리주 주지사는 16일 퍼거슨시에 비상사태(a state of emergency)를 선포하고 야간 통행금지 명령을 내렸다. 그럼에도 사태가 진정되지 않자 닉슨 주지사는 17일 주방위군 동원령까지 내렸다.

이런 가운데 브라운이 최소 6발의 총을 맞았다는 증언이 18일 제기돼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경찰의 '정당방위'와 유족의 '무고한 발포' 주장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경찰의 초기 과잉대응 내지 고의성 여부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가족들이 뉴욕시 수석 검시관을 지낸 마이클 베이든에게 요청해 별도의 부검을 실시한 결과 브라운이 머리에 2발, 오른팔에 4발을 맞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 당국 과잉 대응 논란…'경찰 중무장 제한' 목소리 비등 = 당국이 이번 사건이 '제2의 로드니 킹' 사태 등으로 대형 사회문제화할 것을 우려해 그 가능성을 차단하고자 지나치게 민감하고 과도하게 반응하는 게 되레 사태를 악화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은 사상 처음으로 흑인 대통령까지 배출했음에도 흑백 갈등 및 인종 차별 문제가 여전히 사회적으로 휘발성 큰 '아킬레스건'이다.

실제 퍼거슨시에 투입된 경찰은 지역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이라기보다 전장에 투입된 군인에 가까워 보인다는 게 미국 언론의 대체적 반응이다.

CNN 등에 비친 경찰의 모습은 단순히 복장뿐 아니라 무기와 장비도 군인 수준이다. 연막탄, 최루탄은 물론 섬광수류탄(순간적으로 충격을 주는 폭탄), 소총, 군용트럭 '험비'와 장갑차까지 갖추고 있다.

일부 정치인들은 퍼거슨시 상황을 이라크 등의 전장에 비유하기도 한다.

존 루이스(민주·조지아주) 연방 하원의원은 17일 NBC 방송 '밋 더 프레스' 인터뷰에서 "TV에서 흘러나오는 퍼거슨시의 장면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이라크 바그다드나 다른 전쟁터에 있는 느낌"이라면서 "퍼거슨시는 중국도, 러시아도, 콩고도 아닌 미국의 일부로, 모든 사람이 평화로운 비폭력 집회를 할 권리가 있다"고 비판했다.

공화당 대권주자 중 한 명인 랜드 폴 상원의원(켄터키)도 최근 미 시사주간 타임 기고문에서 "거리 시위에 대처하는 데 있어 경찰의 대응과 군인의 대응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어야 한다"며 경찰의 중무장화 및 과잉 대응 논란을 지적했다.

이처럼 경찰의 중무장이 가능한 것은 지역 경찰에도 기관총과 다른 군수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한 국방부의 무기판매 프로그램 때문으로, 국방부 군수국에 따르면 지난 90년대 이후 40억달러(약 4조800억원) 이상의 군수품이 지역 경찰에 판매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와 관련, 민주당 소속 행크 존슨(조지아) 하원의원은 8월 휴회기가 끝나고 의회에 복귀하면 경찰의 무장을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국방부 군수국의 대(對) 경찰 군사무기 판매를 줄이는 것이 법안의 골자다.

존슨 의원의 발의 계획과는 별개로 미 상원 차원에서 국방부 무기판매 프로그램에 대한 검토작업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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